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건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일이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순간도 있죠. 잊었다고 생각한 날에도 문득 그 이름이 떠오르고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잘 지내고 있다가도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꺼지는 날이 있어요. 그게 상실이라는 감정이겠죠. 조선 시대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울었습니다. 절제와 예법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던 선비들도 상실 앞에서는 아무런 방패를 가지지 못했어요. 자식을 잃은 아버지는 세상이 멈춘 것처럼 주저앉았고,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은 숨 쉬는 일조차 버거워졌습니다. 벗을 잃은 친구는 함께 웃던 기억 앞에서 자꾸만 발걸음을 멈췄어요. 그들은 울음을 참지 못했고 그 울음을 글로 남겼습니다. 목이 메어 이어가지 못한 문장. 눈물이 번져 흐려진 글자. 그 기록이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 우리에게 도착했습니다. ::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 는 조선 선비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남긴 44편의 애도문을 담은 책이에요. 고전이라고 해서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조심스럽게 읽게 되는 책이에요. 이 책은 위로하려 들지 않습니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도 않아요. 슬픔을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몰아가지도 않습니다. 그저 사랑이 깊었기에 슬픔도 깊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에요.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이 문장은 과거의 절규이면서 지금 우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잃고 비슷한 말을 속으로 삼켜본 적 있다면 이 문장은 그냥 문장이 아니에요. 이 책을 읽는 동안 고전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누군가의 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식을 부르다 멈춰버린 문장. 아내를 떠올리다 무너진 호흡. 벗의 이름 앞에서 더는 이어가지 못한 마음. 그 모든 감정이 과장 없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더 아픕니다. 그리고 그래서 더 진짜처럼 느껴집니다. 이 책은 슬픔을 지워야 할 감정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조용히 보여줄 뿐입니다. 잊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주 떠올려도 괜찮다고. 눈물이 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비들은 기억하기 위해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건넵니다. 나는 슬픔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은 당장 위로가 필요할 때보다 마음 한켠이 조용히 무너질 때 더 깊게 다가옵니다. 아무 일 없는 날인데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 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지는 밤. 그럴 때 곁에 두고 천천히 읽게 되는 책이에요. 중간에 덮어도 괜찮고, 한 편만 읽어도 괜찮고, 며칠 뒤 다시 돌아와도 늘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고전이지만 지금의 삶과 아주 가까운 책.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는 말 없이 곁에 앉아주는 동반자가 되어주고, 아직 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를 대비해 마음에 남겨두는 언어가 되어줍니다. 천천히 읽어도 되는 책. 눈물이 나면 잠시 멈춰도 되는 책. 사랑이 깊었기에 슬픔도 깊었던 사람들의 기록이 오늘의 우리를 조용히 붙잡아줍니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 많.관.부 :) #이제볼수도들을수도없구나 #조선선비 #애도문 #상실과기억 #고전인문서 #인문에세이 #고전읽기 #책추천 #독서기록 #감성독서 #슬픔의기록 #기억을안고살다 #인문책추천 #에이콘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