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나는 너무 쉽게 쓰고 있었다. 자연스럽잖아. 원래 그런 거잖아. 그 말이 생각을 멈추게 한다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설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판단에 가깝다. 괜히 더 묻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반대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 말은 늘 안전하게 쓰인다. 이 책은 그 안전한 단어를 조용히 흔든다. 자연은 답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답처럼 보이게 만든 건 언제나 인간의 말이었다고. 그 문장을 읽고 페이지를 바로 넘기지 못했다. 모성은 본능이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그건 자연의 질서다. 이 말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선택이 이미 지워졌을까. 얼마나 많은 책임이 자연이라는 말 뒤로 사라졌을까. 읽으면서 자꾸 멈추게 됐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마음 한쪽이 불편해져서. 그 불편함이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출산과 돌봄이 개인의 본능이 아니라 함께 살아온 방식이었다는 이야기. 인간은 혼자 버텨온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남아 온 종이라는 말. 그 문장이 오래 남았다. 여자라서 그렇다. 남자라서 그렇다. 그 말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미리 정해왔는지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자연에는 분명 질서가 있다. 하지만 그 질서가 선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중력이 옳고 그름을 말해주지 않듯 생물학도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 책은 확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대신 말을 아끼게 만들고 판단을 늦추게 만든다. 자연스럽다는 말을 입에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고르게 된다. 이 말이 누군가를 설명에서 지워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을 너무 빨리 끝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연을 다시 읽다 보니 인간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정답을 던지는 책이 아니라 태도를 남기는 책. 그래서 읽는 시간보다 덮은 뒤의 시간이 더 길게 남는다. 요즘처럼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날. 생각보다 판단이 먼저 튀어나오는 날. 이 책은 그 자리에 조용히 있다. 괜찮다면 한 번쯤 멈추게 해주는 책으로.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는 이 말을 누군가를 설득할 때보다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더 자주 써왔던 것 같다.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을 때. 더 깊이 생각하기 귀찮을 때. 불편한 질문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을 때. 자연스럽다는 말은 상대를 향한 말 같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먼저 건네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말을 완전히 안 쓰게 된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느리게 쓰게 됐다. 조금 조심해서 입에 올리게 됐다. 그 정도 변화만으로도 이 책은 내 일상에 충분히 들어와 있었다. 자연스럽다는 말 📚 많.관.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