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서른 살이라고 말하셨어요. 그 순간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았어요. 입 안에 맴도는 말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유도 알고 상황도 알고 마음으로도 이해하려 하는데 그래도 가슴 한쪽이 살짝 시린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달라진 모습. 달라지지 않은 온기. 두 가지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속에서 얽히고 풀리기를 반복했어요. 예전의 할머니는 참 멋졌어요. 고운 스카프. 은은한 향수. 또박또박 울리던 구두 소리. 햇빛 아래서 환하게 웃던 얼굴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할머니’라는 단어와 늘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 할머니는 가끔 길을 잊어요. 집 안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조용히 서서 둘러보실 때도 있어요. 차를 여러 번 드셨는데 또 권해 주시고 또 건네주시고 또 마시라고 하세요. 그때마다 웃어드리고 싶은 마음과 살짝 당황스러운 마음이 서로 부딪힐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정말 놀라운 건 옛날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또렷해지고 표정이 따뜻해지면서 기억이 하나 둘 살아난다는 거예요. 그럴 때면 ‘아, 할머니는 여전히 여기 계시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와요. 할머니가 주간 보호 센터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할머니의 하루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머리도 짧아지고 옷도 편안해지고 센터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엔 그 모습이 내 마음에 낯설게 남았어요. 뭔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슬쩍 스며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됐어요. 예전의 멋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아도 할머니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요. 그래서 오늘은 내가 직접 할머니의 옷을 골라드렸어요. 옷장 앞에 서서 하나씩 펼치고 색깔을 비교하고 재질을 만지고 할머니가 좋아하실까, 편하실까, 어떤 날에 어떤 옷을 입으면 좋을까 생각하며 천천히 골랐어요. 옷 한 벌에 이렇게 많은 마음을 담는 건 처음이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사랑은 누군가를 특별히 꾸며줄 때 생기는 게 아니라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이해하려고 할 때 더 깊어지기도 한다는 걸요. 우리의 하루는 어쩌면 조금 서툴고 조금 삐걺 있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늘 자리 잡고 있어요. 기억이 흔들릴 때도 있고 표현이 어색할 때도 있지만 그게 우리의 사랑을 흐릿하게 만들지는 않아요.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요.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요.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도 괜찮아요.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할머니와 나에게 가장 따뜻한 시간 같으니까요. 오늘도 할머니와 나의 하루는 조금 달라졌지만 그래도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이 이 모든 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줘요. 오늘도 함께라서 참 다행인 날이에요. 할머니는 서른 살 📚 많.관.부 :) #할머니는서른살 #봄소풍출판사 #보물찾기시리즈 #어린이동화 #초등도서 #감성글귀 #책스타그램 #육아맘그램 #초등맘 #가족이야기 #치매이해 #아이와함께읽기 #감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