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을 읽었다. 누구든 사랑해본 이라면, 누군가를 맹렬히 마음에 담아본 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가슴이 일그러질 법한 이야기다. 특히 보편적인 짝사랑의 반투명지를 말없이 겹쳐보이는 마지막 장이 그렇다. 그거, 극도로 처절한, 사랑이구나. 몰랐어.

나는 왜 사랑에 급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추면서 연예인을 사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했고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렇게 초라해지고 싶을까하고. 하지만 앞뒤가 바뀐 것이었나 보다. 사랑하니까,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려서 자신이 그 사람 한 명에 대해 1/1000명만큼의 가치밖에 가지지 못해도 수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앞에서 내가 조금 작아지고 초라해져도 괜찮잖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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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을 포기한 것은 그날 거대한 신도시의 건물 사이를 돌다가, 막차를 놓칠까 반쯤 뛰다가, 명목상 심어둔 것처럼 드문드문 떨어져 서 있던 가로등 아래에서 흩날리는 가짜 눈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때 코트 자락을 너무 세게 털어서, 무언가 같이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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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구성된 책의 의미, 권위를 벗어나 책이라는 사물과 직접 마주하고 냄새맡고 애무할 것.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서의 독서 행위를 즐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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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 예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앎과 무지, 경험과 관념, 실존과 텍스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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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대화는 이러했다. 그것은 세태의 어둠을 밝혀줄 언어의 영원한 승리이자,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는 금과옥조와도 같은 침묵이었다. 늘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온갖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만큼, 우리는 결코 이 시대에 기만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 세계가 우리의 말에 담겨 있으며, 온 세상이 우리의 침묵으로 밝혀진다. 우리는 현명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현명함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나서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이 우울함은 무슨 까닭일까? 손님들이 가고 집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건만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이 침묵은? 단지 설거지 걱정 때문일까? 게다가…… 저녁 모임을 마치고 수십 킬로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침묵이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흠뻑 취해 있던 그 현명함의 열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신호등 앞에 멈춰 서 있는 차 속의 부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침묵은 마치 긴밤의 취기가 서서히 가시는 떨떠름한 뒷맛처럼, 혹은 마취가 풀려날 때의 감각처럼, 의식이 깨어나면서 조금씩 제 자신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 느낌 같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한 대화 속에 진정한 우리는 없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고통스런 자각인 것이다. 우리는 거기 없었다. 거기엔 우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있었으며, 논지 또한 확고했으나─게다가 그 논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주장한 바가 전적으로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기 없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현명함이라는 자기 최면을 부단히 연마하느라 또 하루 저녁을 탕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서서히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36-37)

아! 그러고 보니 늘 화젯거리가 궁하기 마련인 별 볼일 없는 사람들 간의 별 볼일 없는 모임에서는 으레 독서가 대화를 이어주는 주제의 지위로 격상되곤 한다. 아니, 독서가 의사소통의 전략으로 전락했다고 해야 할지도! 책 속의 그 숱한 소리 없는 아우성과 고지식한 무상성이란 결국, 어느 덜 떨어진 위인에게 내숭형 숙녀를 낚을 빌미가 되어줄 뿐이다. "혹시 셀린의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읽어보지 않으셨는지요?"
설령 이보다 심하지는 않을지라도 절망적이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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