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대화는 이러했다. 그것은 세태의 어둠을 밝혀줄 언어의 영원한 승리이자,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는 금과옥조와도 같은 침묵이었다. 늘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온갖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만큼, 우리는 결코 이 시대에 기만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 세계가 우리의 말에 담겨 있으며, 온 세상이 우리의 침묵으로 밝혀진다. 우리는 현명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현명함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나서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이 우울함은 무슨 까닭일까? 손님들이 가고 집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건만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이 침묵은? 단지 설거지 걱정 때문일까? 게다가…… 저녁 모임을 마치고 수십 킬로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침묵이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흠뻑 취해 있던 그 현명함의 열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신호등 앞에 멈춰 서 있는 차 속의 부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침묵은 마치 긴밤의 취기가 서서히 가시는 떨떠름한 뒷맛처럼, 혹은 마취가 풀려날 때의 감각처럼, 의식이 깨어나면서 조금씩 제 자신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 느낌 같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한 대화 속에 진정한 우리는 없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고통스런 자각인 것이다. 우리는 거기 없었다. 거기엔 우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있었으며, 논지 또한 확고했으나─게다가 그 논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주장한 바가 전적으로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기 없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현명함이라는 자기 최면을 부단히 연마하느라 또 하루 저녁을 탕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서서히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36-37)

아! 그러고 보니 늘 화젯거리가 궁하기 마련인 별 볼일 없는 사람들 간의 별 볼일 없는 모임에서는 으레 독서가 대화를 이어주는 주제의 지위로 격상되곤 한다. 아니, 독서가 의사소통의 전략으로 전락했다고 해야 할지도! 책 속의 그 숱한 소리 없는 아우성과 고지식한 무상성이란 결국, 어느 덜 떨어진 위인에게 내숭형 숙녀를 낚을 빌미가 되어줄 뿐이다. "혹시 셀린의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읽어보지 않으셨는지요?"
설령 이보다 심하지는 않을지라도 절망적이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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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일순간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며, 무의식적으로 본의와 다른 표현을 내뱉고, 자신조차 그 단어를 왜 뱉었는지 의심하며, 타인들은 그의 말과 존재를 의심한다. 상황은 겹겹이 아귀를 물고 악화된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우유부단하고 마음이 약한 이들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궁지에 내몰린 주인공들은 타인들의 삿대질과 다그침 앞에 뒷걸음질치며 존재의 구석에, 벽에 부딪치고, 그렇게 존재의 존재를 확인할 것을 요구받는다.

2. 찰나의 미묘한,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감정이랄 수도 없는 정신의 틈을 묘사하는 부분들이 탁월하다.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 그 어디쯤을 이렇게 텍스트로 길어올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복합적인 층들이 일순간 찾아오는 모순 덩어리라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잠깐 건너가려다 푸스슥 꺼지는 찰나라서 감정이라 부르기도 힘든 그 잠깐의 내면을 어떻게 이렇게 풀어내는지.

3. 많은 단편들이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야기와 인물, 상징들은 평행선으로, 삼각형으로, 액자식으로, 한바퀴 돌아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곡선으로 그려져 있다. 단편이 끝날 때마다 단편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오래 생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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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은 벼슬길에서 빠져나와 은거하며 서재의 벽에 "번거로움에서 벗어나는 데는 고요함만한 것이 없고, 졸렬함을 벗어나는 데는 부지런함만한 것이 없다"는 구절을 써붙이고 끊임없이 독서에 매진했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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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대답하되, 해질 대로 해진 식상한 관용어구들을 마치 자신의 획기적인 발명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뻔뻔스럽게 늘어놓는 볼멘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공연히 그 양극의 틈바구니에 잘못 끼어들어 비참해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그들의 신념, 그 신념의 견고함이 한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고산지대,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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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1961년판 서문, p.17-18)

믿음 없는 마음의 허전함을 달래려고, 힘껏 산다, 때의 한점 한점을 핏방울처럼 진하게 산다, 수없이 고꾸라져서 수없이 정강이를 벗기더라도 말쑥한 정강이를 가지고 늙느니보다는 낫다,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어보지만 어떻게 하면 힘껏 살 수 있는지 도무지 캄캄했고, 피처럼 진한 시간은 어디 숨어 있는지 꼬리도 찾을 수 없을 뿐, 정강이를 벗기자면 걸려서 넘어갈 돌부리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의 발부리에 걸리는 것이라곤 영미가 기르는 고양이밖에 없다. (광장, p.38)

그때마다 그래온 것처럼, 이번에도 잊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문득 무언가를 잊었다는 것을 깨달은 느낌이 든다. 무엇인가는 언제나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실은 아무것도 잊은 것은 없다. 그러 줄을 알면서도 이 느낌은 틀림없이 일어난다. 아주 언짢다. (광장, p.21)

선량한 시민은 오히려 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창을 닫고 있어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시장으로 가는 때만 할 수 없이 그는 자기 방문을 엽니다. 한 줌 쌀과 한 포기 시래기를 사기 위해서. (광장, p.56)

그는 밀실에만은 한 떨기 백합을 마련하기를 원합니다. 그의 마지막 숨을 구멍이기 때문이지요. 저희들에겐 좋은 아버지였어요. 국고금을 덜컥한 정치인을 아버지로 가진 인텔리 따님의 말이 풍기는 수수께끼는 여기 있는 겁니다. 오, 좋은 아버지.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각기의 밀실은 신분에 맞춰서 그런대로 푸짐합니다. 개미처럼 물어다 가꾸니깐요.
좋은 아버지, 불란서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광장, p.57)

허황스럽던 몸가짐이 탁 꺾이고, 며칠 사이로 퍽이나 약해진 느낌이다. 몸이 저절로 무언가를 배운 모양이다. 여태껏 기대어오던 게 무엇이든지간에, 나는 믿을 수 없는 걸 믿어온 게 아닌가. 적어도 나의 방 자물쇠는 장난감이었던 모양이다. (광장, p.73-74)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저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광장, p.79)

철학이란 물건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면, 정말 알고 있는 것보다 목소리를 더 높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높은 가락만 들리는 판에서는 싸울 뜻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광장, p.82)

마음은 몸을 따른다. 몸이 없었던들, 무얼 가지고, 사람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보고지라는 소원이, 우상을 만들었다면,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 그렇게 보면 햇빛에 반짝이는 구름과, 바다와 뫼, 하늘, 항구에 들락날락하는 배들이며, 기차와 궤도, 나라와 빌딩, 모조리, 그 어떤 우람한 외로움이 던지는 그림자가 아닐까. 커다란 외로움이 던지는. 이 누린ㄴ 그 큰 외로움의 몸일 거야. 그 몸이 늙어서, 더는 그 큰 외로움의 바람을 짊어지지 못할 때, 그는 뱄던 외로움의 씨를 낳지. 그래서 삶이 태어난 거야. 삶이란, 잊어버린다는 일을 배우지 못한 외로움의 아들. 속였기 때문에 또 다른 속임의 대상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오입쟁이의 계집들, 그게 삶이야. 이거다 싶게 만드는 계집을 만났을 때만, 오입쟁이는 고단한 옷치장을 그치고 파자마로 갈아입을 것이며, 으뜸가는 아이를 낳았을 때만, 외로움은 씨뿌리기를 그칠 것이며, 공간은 몸푸는 괴로움을 벗을 거야. 삶이란, 끝가는 데를 모르는 욕정 탓에 괴로운, 애 잘 낳는 여자의 아랫배 같은 것. (광장, p.86)

어떤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는 생각은, 이긴 사람의 느낌이다. 과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얼마만큼이나 해칠 수 있을까, 남의 앞길을 끝판으로 망쳐놓았다는 생각이 죄악감이라면, 그는 하느님의 자리를 도둑질하는 것이 된다. 사람은 사람의 팔자를 망치지 못한다. 다만 자기의 앞길을 망칠 뿐이다. 어떤 뜻에서건 나와의 사귐은, 윤애에게 한 가지 겪음이었을 거다. 그 겪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얕보는 일이다. (광장, p.91)

밖에 나가서 아버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나이가 자기 아내와 철든 아이들에게 보이는 너그러움. 그러면 아버지는 무슨 죄를 밖에서 지었다는 건가. 혁명을 판다는 죄, 이상과 현실을 바꾸면서 짐짓 살아가는 죄. 그걸 스스로 모를 리 없는 아버지가 계면쩍아 하는 몸가짐일 것이다. (광장, p.114)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옛날 그는 S서 뒷동산에서 퉁퉁 부어 오른 입언저리를 혓바닥으로 핥으면서 이 소리를 들었다. 그의 마음의 방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이번 것은 더 큰 울림이었다. 그러나 먼 소리였다. 무디게 울리는 소리. 광장에서 동상이 넘어지는 소리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 엎드려서 울고 싶었으나, 울기 위해서는 그는 네 개의 벽이 아직도 성한 그의 방으로 가야 했다. 아니 그의 마음이 방이 아니다. 마음에의방은 벌써 무너진지 오랬으므로. 그의 둥글게 안으로 굽힌 두 팔 넓이의 광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광장, p.127-128)

순간 그의 주먹이 태식의 얼굴을 갈겼다. 수갑이 채인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쓰러지는 태식을, 발길로 걷어찼다. 태식의 얼굴은 금시 피투성이가 됐다. 그 핏빛은, 몇 해 전 바로 이 건물에서, 형사의 주먹에 맞아서 흘렸던, 제 피를 떠올렸다. 그때 형사가 하던 것처럼, 태식의 멱살을 잡아일으켜, 또 한 번 얼굴을 갈겼다. 제 몸에 그 형사가 옮아앉은 것 같은 환각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의 몸을 짓이기는 버릇은 이처럼 몸에서 몸으로 옮아가는 것이구나. 몸의 길. (광장, p.148)

도식이란 그것이 뛰어날수록 본뜨기 쉽다 싶다. (광장, p.167)

준다고 바다를 마실 수는 없는 일. 사람이 마시기는 한 사발의 물. 준다는 것도 허황하고 가지거니 함도 철없는 일. 바다와 한 잔의 물. 그 사이에 놓인 골짜기와 눈물과 땀과 피. 그것을 셈할 줄 모르는 데 잘못이 있었다. (광장, p.173)

우리가 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그들은 갈보들의 더러운 배 위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더러운 고깃덩이를 하룻밤 살 수 있는 품삯을 주는 자들에게 아쉬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인의 죽 대신에, 노예의 떡을 택한 것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싸우는 겁니까? 대체 누굴 위한 희생입니까. 기막힌 짝사랑. 계집은 싫다는데 무슨 유토피압니까? 짝사랑까진 좋아도, 잘못하면 강간이 됩니다. 그래서야 억울해서 살겠습니까? 챈 것도 기막힌데, 고소를 당해서야 쓰겠어요? (구운몽, p.286)

이런 광장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뿐입니다. (광장,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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