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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2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84
빅토르 위고 지음, 송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1월
평점 :
책을 읽기 전에 손에 잡히는 책의 무게감을 느껴보고 내용을 생각해 보고 표지 그림을 평가해 본다.
<레미제라블>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하다고 여겼던 책이 갑자기 낯설다. 이렇게 방대한 내용의 소설이었나? 우리에게 익숙한 것에 비해 원작 소설의 방대함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린 시절 한 편의 동화로 알았던 책의 원작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사실은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내용 중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이다.
책의 초반부는 죄인 장발장을 새 삶으로 인도한 미리엘 신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1만 5천 프랑의 주교 봉급 중 개인 비용 1000리브르를 제외한 모든 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할애하는 미리엘 신부의 성품을 장장 200여 페이지에 걸쳐 읽다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미리엘 신부는 자신의 사회적 사명을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행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한다. 그 사명을 이어 받은 한 사람이 장발장인 것이다.
미리엘 신부와의 만남 이후 장발장은 새로운 사람이 된다. 마치 미리엘 신부를 보는 듯 하다. 처음 장발장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행을 베풀었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꼬제뜨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자신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소녀에 대한 헌신은 멈추지 않는다.
장발장은 죽음에 이르러 사회의 법이 아닌 인간적인 용서를 받는다. 그를 끝까지 뒤쫓던 법의 대변인 자베르도 장발장의 인간적 성품과 사회적 죄 값 사이에 놓인 자신의 의무와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극단적인 결과를 선택한다.
<자베르는 그처럼 무시무시하면서도 야비한 데는 없었다. 청렴과 강직과 진지와 결백과 확신과 의무감 등은 나쁘게 이용될 때는 혐오스러운 게 되지만 그래도 웅대함을 잃지 않는다. 인간의 양심만이 갖는 그러한 위엄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면서도 의연하게 존속한다. 그것들은 착오에 빠질 수도 있는 하나의 결점만을 지닌 미덕이다. 자베르는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나, 승리를 뽐내는 모든 무지한 인간처럼 그 포악한 행복 속에서 가엾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자베르의 성격이었기에 그런 결과 이외의 결과를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고의 책을 읽다보면 여러 인간 군상들 개개인의 성품 속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성 에 대한 묘사의 뛰어남에 놀라게 된다.
<세상에는 자기와 아무 관계 없는데도 남의 일을 탐색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선행을 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과 시간과 수고를 낭비해 가면서 애쓰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 까닭없이 다만 자기의 재미만을 위한 것으로, 호기심에 의한 호기심의 만족 외에 다른 목적은 없는 것이다.>
지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이러한 성격 묘사들이 정말 만나본 적이 있는 어떤 이웃에 대한 이야기같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사람의 삶과 죽음 속에 녹아있는 사회, 정치 이야기를 하는 위고, 그 중 공감 가는 부분들을 발췌해보았다.
팡띤느의 이 이야기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그것은 사회가 한 여자 노예를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에게서. 굶주림과 추위와 고독과 버림받음과 궁핍함에서. 비참한 거래이다. 한 조각의 빵과 한 영혼의 바꿈. 빈곤은 팔려고 내놓고 사회는 그것을 사들인다.
감옥에서 사람은 사슬에 매여 있을 뿐이었으나 수도원에서 사람은 자기 신앙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닮았으면서도 그토록 상반되는 두 장소에서, 그토록 다른 두 종류의 사람들이 속죄라는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닫힌 영혼에게는 죽지 않지만 열려 있는 영혼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그 무수한 즐거움과 친해져 이제 예지의 백만장자가 된 마리우스는 금전의 백만장자를 애처롭게 여기게 된다.
그래도 마리우스가 불행하다는 말인가? 아니 불행하지 않다. 생활의 빈궁도 젊은이에게는 결코 비참한 게 아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젊은이라는 것은 건강하고, 힘이 있고, 활발한 걸음걸이와 뜨거운 피를 소용돌이치게 하며, 검은 머리, 싱싱한 뺨, 장미처럼 붉은 입술, 흰 이빨, 맑은 숨결은 어느 때나 늙은 제왕이 부러워할 것이니라.
그러나 생활이 어려워지고도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는 인간이란 그리 흔치 않다. 게다가 어느 경지에까지 이르면 불운과 파렴치는 서로 혼합돼 구별할 수조차 없이 되고, 또 한마디의 말, 즉 비참한 사람들, 레 미제라블이라는 숙명적인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두 명제를 해결하라. 부자를 격려하고 가난한 자를 보호하라. 빈곤을 일소하라. 강자에 의한 약자의 부당한 착취를 없애라. 성공한 자에 대한 실패한 자의 질투를 억누르라. 임금과 노동의 균형을 수학적으로, 그리고 우애를 가지고 조정하라. 자라는 아이들에게 의무 교육을 실시하고 학문이 노동력의 기초가 되게 하라. 손을 놓지 말고 지성을 계발시키라. 강력한 국민인 동시에 행복한 인간 가족이 되라. 소유권을 민주화하라. 그것을 폐지하지 말고 보편화하여 전국민이 예외없이 소유자가 되게 하라.
전 인류의 대협약이 체결되는 날까지는-퇴보적인 과거에 대하여 진보적인 미래의 노력인-전쟁은 아마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전쟁의 무엇을 비난할 것인가? 전쟁이 치욕이 되고 검이 l수가 되는 것은 권리와 진보와 이성과 문명과 진리를 말살하는 경우뿐이다. 그런 경우 내란이든 외란이든 전쟁은 죄악이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미래를 획득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당연한 보상금이오. 혁명은 하나의 세금이오.
아이들이 은혜를 망각한다고 너무 가혹하게 말하는 것도, 항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은 다른 데서 말했듯이 ‘앞날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연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가는 사람은 그림자 쪽을 보고, 오는 사람은 빛 쪽을 보고 있다. 거기에서 노인에게는 숙명적인, 젊은이에게는 본의 아닌 어떤 괴리감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