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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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책을 읽기 오래 전 이 이야기를 에니메이션으로 먼저 봤었다. 그것도 자막이 없어 정확한 내용보다는 그림이 보여주는 그대로의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터라 이 책을 읽기 전만해도 이 이야기가 원래 내용 없이 그림으로만 그려진 에니메이션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에니메이션이 아닌 소설이 먼저 나온 것이라는 사실과 이 소설이 에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부드럽고 흐드러진 분위기와는 상반된 간결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진 인상을 준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렇지만 내용면에서는 에니메이션과 책이 다르지 않았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이 바로 작가 장 지오노가 읽는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의 핵심이다.

  

   작가는 읽는 이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너무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앞에서 정리한 이야기를 뒷부분에서 또 한번 이야기하고 있다.

   “한 사람이 오직 정신적, 육체적 힘만으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이룩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대한 혼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었던들 이러한 결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해낸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품게 된다.”   


   이 책은 마치 실화를 서술하듯이(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의 시점에서 엘레아르 부피에라는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일생동안 소리없이 하는 일을 옆에서 관찰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한 사람의 참된 삶의 목표로 인해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된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엘레아르 부피에라는 평범한 농부가 아무런 대가나 욕심없이 황폐한 대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고, 두번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계속 되어진 나무심기는 결국에는 울창한 숲을 이루어 자연은 물론이고 메마르고 이기적이던 사람들의 마음조차 바꿔 놓는다는 지극히 간결한 이야기다.

  

    이 간결한 사실 안에서 작가는 신적인 인물로까지 묘사하면서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않고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 주인공을 위대한 혼과 고결한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 칭송하고 있다.

   물론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나 또한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하는 교훈에서 벗어나 말없이 자신이 정한 목표를 실천해 나갔던 엘레아르 부피에라는 농부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보고자한다.

   “지난날 그는 평야지대에 농장을 하나 가지고 자신의 꿈을 가꾸며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나서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 뒤 그는 고독 속으로 물러나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곳의 땅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달리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으므로 이런 상태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위의 이야기 그대로 자신의 꿈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농부 부피에가 고독한 삶 속에서 또 다시 찾은 삶의 목표는 나무 심는 일이였다. 자신의 주변에서 사는 동안 가장 보람 있는 일을 찾았던 것이리라.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고독한 삶 속에서 목표를 이루어 나가며 얻을 수 있는 성취감으로 스스로에게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애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주변의 자연과 인간들마저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아마도 가장 행복했던 것은 자신이 세운 목표로 엄청난 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삶을 헛되이 살지 않았던 죽는 순간까지 평화롭게 눈을 감을 수 있었던 주인공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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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도둑 준모 낮은산 작은숲 4
오승희 지음, 최정인 그림 / 낮은산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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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하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아이 준모는 학교에서 항상 상을 받는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그 중에서도 그림을 잘 그려서 항상 그림상을 받는 예린이를 보면 더 주눅이 든다.

   상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은연중에 예린이와 비교하여 평범한 준모를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면 자신도 상을 받아서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나름대로 엄마가 시키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처럼 상을 타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선생님의 오해와 착오로 예린이의 그림으로 준모가 상을 받게 된다. 자신의 그림이 아닌 예린이의 그림으로 상을 받게 된 준모가 마음 아파하며 잘못된 상황을 해결해 보려 하다가 결국은 엄마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게 되고 엄마도 그 일로 인하여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써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말로는 그까짓 상 쯤 하면서도 아이가 상을 받고 못 받고에 부모 스스로가 더 신경써가며 아이들이 상을 받도록 부추기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심지어 그림이나 글짓기는 아이 대신 부모가 해 주기도 한다.   그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린 아이들은 마치 그것이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게 되고 결국 부모를 자신과 동일시해서 자신의 과제를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떠맡기게 된다. 이런 상황은 아이보다 부모에게 더 책임이 있다. 그야말로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요하게 여기는 잘못된 평가방식을 아이에게 심어주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아이 스스로가 학교생활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부모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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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자 - 스웨덴문학 다림세계문학 8
야콥 베겔리우스 지음, 잉에르 뤼덴 그림, 홍재웅 옮김 / 다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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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페란자.

   사람의 이름인지, 지명인지, 도무지 이 책의 내용과 아무 관계도 없을 것만 같았던 책의 제목이 할리돈과 강아지의 하룻밤 방황이 끝나갈 무렵 등장한다. 할리돈이 사라진 선장님이 타고 떠나고 싶어 했을거라 생각한 배의 이름으로, 그리고 떠돌이 개에게 주어지는 이름으로...


   그 외엔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 부딪히며 일어나는 이야기뿐이다.

   외로운 할리돈.

   외로운 떠돌이 강아지.

   외로운 선장님.

   상황은 달라도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롭다. 카페의 엘라 아주머니도 외롭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경찰서를 홀로 지키던 경찰관도 외롭고 심지어 도박에 빠져 “행운의 원숭이”라 부르며 할리돈을 잡으려하던 늙은 신사도 외롭고 절름발이 개장수도 외롭고 술에 취해 정거장 의자에 누워 자던 선원도 외롭다. 쓸쓸하고 어둡고 추운 겨울의 하룻밤 동안 선장님을 찾아 헤매는 할리돈과 강아지를 따라 우리는 끝없는 외로움을 만나게 된다.


   비약적이지만 굶주림의 극한에서 얻게 되는 빵의 맛을 잊을 수 없듯 외로움과 두려움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희망의 단어 에스페란자는 한없는 안도감을 준다. 그리고 처음으로 깊이 잠든 할리돈의 곁에서 추위와 외로움에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작품해설에서 설명해 주듯이 에스페란자란 희망을 뜻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반대의 뜻도 가지고 있고 채워지지 않은 불완전함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한 완전함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한다. 외로운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 개개인이 품고 있는 희망이란 결국 완전함이면서 불완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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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셀리반 - 러시아문학 다림세계문학 9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다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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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셀리반>은 19세기의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청소년들에게 재미있는 읽을거리와 교훈을 선사하기 위해 쓴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들은 사회주의, 공산당, 영화 007 속에서 그려지는 악당들……, 대부분 이런 것들이다 보니 동화나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러시아라는 나라와는 왠지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괴물은 셀리반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 자신이었던 거지. 너희들의 의심이 셀리반의 선한 양심을 볼 수 없게 가로막았던 거야. 셀리반의 얼굴이 어둡게 보인 것도 너희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지.”라고 주인공에게 말해주었던 예핌신부님의 말처럼 나 또한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단편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러시아의 모든 것을 평가하려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나의 선입견과 달리 흥미진진한 전개로 읽는 동안 너무 재미있었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정확하게 꼬집는 풍자적인 표현들에 나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깊은 교훈을 주는 동화였다. 셀리반을 괴물로 만든 것은 주변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도 어느 부분 정말 셀리반이 괴물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게 하는 표현들이 일반적인 내용의 전개가 모두 들여다보이는 동화와 달리 책을 읽는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주었다.  


   외바퀴 손수레에 누더기를 걸친 병든 여인을 태우고 가는 셀리반을 보고 어떡하다 그렇게 되었는지 묻는 사람에게 셀리반이 “이 땅의 차가움 때문이오. 라고 내뱉듯 하는 말은 시대를 넘어 개인주의화로 이웃에게 점점 차가워져 가는 요즈음의 모습에 대한 질타처럼 다가와 왠지 씁쓸하기도 했다.


   편견으로 주변을 제대로 바로보지 못하거나 심지어 대중심리에 휩쓸려 약자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어 ‘왕따’를 만들어 내는 이 시대의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에게도 자신이 괴물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면서 또 하나의 <괴물 셀리반>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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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이사 10대를 위한 책뽀 시리즈 1
마리안네 일머 엡니허 지음, 김세은 옮김, 라파엘라 라착 그림 / 리잼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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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우선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것에 비추어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되어 있나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주인공도 나의 어린 시절만큼이나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사를 많이 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예상과는 전혀 엉뚱하게 엄마의 이혼, 할머니와 엄마의 갈등과 화해로 인해 3개월 만에 다시 제자리로 이사하게 된 로비의 이야기였다.

 

   세월에 따라 세상도 변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가난한 형편에 단칸방에 살면서도 서로 의지했고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그런 단칸방에서도 리어카에 간단한 이삿짐을 실고 새로운 집을 찾아 때때마다 이사를 다녀야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어른들에게는 지긋 지긋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이사가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집과 만나는 설렘도 느끼게 해 주었었다.

   그러나 요즘의 이사 풍속도 중엔 한 집에서 두 집으로 갈라지는 이사도 적지 않게 많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화를 읽다보면 유독 이혼가정과 그 속에서 마음 아파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눈에 띈다. 또한 새 아빠와 새 엄마의 이미지도 예전 동화처럼 나쁜 엄마 나쁜 아빠가 아닌 이혼으로 생긴 상처를 감싸줄 수 있는 새로운 가족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다.


   세상은 예전보다 살기 좋아졌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정서적으로 황폐해져 가고만 있다. 로비의 아빠처럼 술주정뱅이에 문제가 있는 아빠일 때는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이혼의 근본적 원인이야 당사자들 밖에는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 성격 차이니 생활고니 해서 쉽게 헤어지고 헤어지면서는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다행히 로비의 엄마는 로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아이에겐 부모의 빈 자리가 너무 크다.

   “엄마는 아무것도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엄마는 엄마 자신한테만 신경 쓰니까요!”

   이것은 비단 이혼한 가정뿐 아니라 이혼하지 않은 가정의 아이에게서도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치솟는 물가와 아이들 학원비에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열쇠와 핸드폰을 챙겨들고 학교와 학원을 맴돌고 있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아이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말이기도 하다. 진정 아이가 부모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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