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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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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성자들의 눈길 아래에서 우리는 한 번도 죄인이 아니어본 적이 없어서, 저 죄태는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영웅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한 번도 명확히 정의되어본 적이 없는 비겁이 글들에 의해 정의되고 그리하여 우리는 인간인 것의 자부심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인 것이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인간인 것은 우리를 진실로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피곤해 있다.’

 

   인간인 것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 엄마이며 아내인 인간이라는 것이 나를 더욱 피곤하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에 나는 피곤해 있다. 투덜거리며 사는 삶은 계속 피곤할 뿐이므로 피곤마저 행복을 위한 불가피한 부분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인생이 단순해지기를 바라는 요즘이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시간과 더불어 경험을 쌓아가면서 맹목적 궁금증들을 버리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 부질없는 질문일 뿐이다. 복잡한 생각의 그물 속을 헤매어 봐야 명료한 답변 하나 얻기가 쉽지 않다는 걸 나이가 더하는 만큼 경험했다.

 

   그런 내게 개똥철학이나 한답시고 여고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읽었던 기억이 있는 이 책이 쉬울 리가 없다. 내 기억 속에 책의 줄거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 시절의 어린 나는 완독하기 쉽지 않다는 이 책을 완독은 했었나보다. 책의 제목을 들으면서 외설스럽다는 단어가 생각나는 것은 역시 깊이 있게 읽기보다는 글의 표면만 홅지 않았었나 생각된다.

   지금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글의 줄거리를 잡고 뜻을 헤아려 가자니 불교와 도교, 삼위일체의 신과 힌두교와 연금술, 동서고금의 신화와 상징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진 사상과 철학을 소설로 풀어낸 작가가 나를 피곤하게 했다. 명확히 정의 되어질 수 없는 윤곽 없는 감정이나 현상들이 언어에 의해 정의되고 그리하여 나는 정의의 홍수 속에서 복잡해졌고 단순하고자하는 나의 하찮음에 인간인 것의 자부심을 잃어버린다.

 

   지금 사는 내 하나의 삶도 이해하기 힘들어 단순해지고자 하는 내게 삶을 극복한 죽음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구태여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적 사상을 쫒아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고 답도 없는 철학적 물음으로 나를 괴롭히고 싶지도 않다. 철학적 사고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나 감정들에 대해 조금 배웠다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옳다 생각하는 수많은 정의를 내려왔다. 그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결국 이 소설도 많은 배움을 바탕으로 많이 고민한 한 작가의 또 다른 삶과 죽음 종교에 대한 철학일 뿐, 글 속에 나오는 말처럼 그것은 그것을 하도록 정해진 자들이 하면 되고 나는 내 나름대로 내린 단순한 정의 안에 살고 싶다.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이상 살아 왔고 살고 있고 살아 가야한다. 이왕이면 행복하다는 감정 속에 살아가기 위해 내게 주어진 삶에 나름 노력하려한다.

   내게 있어 종교의 근본은 ‘사랑과 평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돼지도 않는 덜 떨어진 사상과 이념으로 종교를 세분화하는 것에는 넌덜머리가 난다.

   덜어내고 덜어내고 살다가 가볍게 맞이하는 죽음, 거기까지가 끝이다. 내세나 천당이나 극락과 같은 것들은 그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그 시점부터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어렵고 힘들었던 책을 한번쯤 머리 싸안고 읽어 냈다 해서 억울할 것 까지는 없었다.

  단순한 논리의 삶에 질릴 때 쯤 복잡한 생각으로 한바탕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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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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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라호마 시골의 붉은색 땅과 회색 땅에 마지막 비가 부드럽게 내렸다. 부드럽게 내리며 땅을 적셨던 마지막 비를 뒤로 뜨거운 태양과 함께 흙먼지가 내려앉았고 남자들의 한숨이 내려앉았고 가족들의 생계에 먹구름이 내려앉았다.

   자연재해의 피해는 갑작스럽지도 않았고 서서히 그들의 삶을 지치게 만들었으나 그들은 어떻게든 다시 그 땅에 작물을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여태껏 조상대대로 그래왔듯이 그들에겐 함께 살아온 땅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작 그들이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트랙터를 앞세우고 밀고 들어온 얼굴도 없는 은행의 자본력이었다. 얼굴이 없듯이 감정도 목소리도 없는 거대 은행은 그들의 애원이나 사정 따위 들어줄 귀도 없었다.

 

   이제 쫓겨나듯 자신들의 고향 오클라호마에서 떠나 구원의 땅 캘리포니아로 향한 한 가족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오직 가족이 함께 먹고 살기 위해 희망을 안고 떠난 여정에서 그들이 계속 만난 것은 끊임없는 대자본가의 횡포였다. 거기에 더해 조금 형편이 나아질만하면 야속하게도 자연재해가 잇따른다.

 

   이 쯤 되니 글을 읽는 나조차도 하늘에 대고 욕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엎친 데 덮치고 점입가경이라더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을 만큼 모든 상황이 톰의 가족을 대표로한 힘없는 농민들의 숨통을 조여든다.

   하지만 내가 끝끝내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톰 조드의 엄마 때문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고난을 헤쳐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한 가족의 정신적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직도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 생각되는 나로서는 그녀의 행동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기에 때론 모성애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초인적인 모습에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가 보여준 강인한 모습에서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한 가닥의 희망을 보았기에 지친 이 가족의 힘든 여정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젊은 톰 조드의 가슴 속에서는 케이시가 심어 놓은 작은 포도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라날 수밖에 없었던 분노의 포도이다.

   이것이 어떻게 열매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다만 어느 한 시대 어느 한 곳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분노의 포도는 여기저기서 계속 싹이 트고 자라났다. 때론 짓밟히고 때론 결실을 맺기도 했겠지만 때가 되면 다시 지고 긴 시간 땅 속에서 또 다시 움틀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 인간에게 존재했던 탐욕이 사유재산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인지 사유재산이라는 제도가 인간에게 탐욕을 부추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탐욕은 세계 어느 곳, 어느 시대에나 자신을 제외한 타인의 희생은 강요하며 채워지길 원했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곳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다.

 

   내게 <분노의 포도>는 <에덴의 동쪽>에 이은 두 번째 존 스타인벡 소설이다. 에덴의 동쪽이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동서양의 다각적 시각으로 나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면 분노의 포도는 어렵고 힘들어도 외면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느끼는 가족애과 인간애에 대한 서글픈 감동을 주었다. 각기 다른 두 번의 감동을 내게 선물한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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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 전12권 세트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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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에 홍루몽 12권을 모두 읽고 책을 덮으면서 큰 숨을 들이 쉬었더랬다.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한편으론 허무한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읽어낸 뿌듯함과 동시에 그 긴 이야기의 끝이 행복하지 않아서인지 아쉽게 책을 덮었던 것 같다.

 

   그리고 긴긴 겨울방학... 악착같이 읽어내려던 책들을 손에서 내려놓고 마음 가는대로 잠깐씩만 책을 보았다. 생각만하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어야한다는 강박관념도 접어두고 책 속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온통 나의 시간을 다 내어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고 지루하고 지루했던 시간들도 지나고 오전의 시간을 나에게 남겨두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마냥 기다렸던 나만의 시간을 놓고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뭘 해야 하는지.

   이제 새삼 뭔가를 써내려니 막막하기도 하고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다.

   그래서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홍루몽에 대한 잔상들을 두서없이 써 보려한다.

 

-크게 느낄 수 없었던 등장인물들의 수

   등장인물만 500여명이 넘는다는 홍루몽은 우리나라 삼국유사처럼 여러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킨 설화집 형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보옥, 임대옥, 설보채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 귀족 집안의 이야기였다. 물론 도입부에서는 가계도를 복사해서 옆에 놓고 인물들이 혼동되지 않도록 도움을 받아가며 읽었으나 초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등장인물의 수는 30에서 많아야 50여명 밖에 되지 않아 이야기의 흐름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다.

-시대 변화의 접점에 서 있는 가보옥

   가보옥이라는 인물은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철없고 여자를 좋아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인물이다. 그의 말 속에서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예리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겉치레를 중요시하는 그 시대의 풍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작가가 그 시대에 작가가 느꼈던 부조리한 사회 모습을 가보옥을 통해 이야기 한 것이리라

-인간상의 종합세트

   홍루몽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겹치는 캐릭터는 거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말과 행동 속에서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었던 한시에 대한 아쉬움

   한자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한시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어 홍루몽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시들이 품고 있는 풍취를 제대로 느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인간사의 허무함

   인간관계의 인연과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전개된 이야기이다 보니 이야기의 끝은 왠지 허무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로써 내세는 아직 먼 이야기일 뿐이다. 아니, 나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의 삶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기 위해 도를 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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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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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이라고 한다. 비행기로 한 두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가까운 나라이다 보니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네들과 우리는 참 많이 다르다.

   근래 들어 한류바람이니 독도 문제 등을 보며 느끼는 그네들의 특성 중 하나는 <집착>의 문화다.

   무언가에 열중하면 끊임없이 파고들고 그것을 기록하고 보관하고 공유한다. 심지어 잘 짜인 각본을 만들어 타인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까지 한다. 그것이 장점이 되어 많은 전문 서적을 남기고 경제 성장을 이루고 과학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마루타, 가미가제, 오타쿠(나쁜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지메와 같은 것들이 함께하고 우리 또한 어느새 그것들을 일부 공유하고 있다.

 

   이 책은 가깝고도 먼 일본의 작가가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가해국의 한 개인으로써 집단 폭력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혹은 집단에 희생된 개인의 의지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나는 나라 뺏긴 아픔을 교육 받은 피해국의 한 개인에게 주입된 피해의식을 가지고 읽었다.

 

   책의 내용과 관계없이 일본인의 글 속에서 조선인 부락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왠지 모를 거부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해 책을 읽는 내내 불쾌함을 삭일 수 없었다. 일본인들의 사회 속에서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공격 대상이 되는 상황이 마치 내가 당하기라도 하 듯 감정이입이 되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교육과 사회분위기를 통해서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품게 된 나로서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제 3자의 입장에서 편하게 바라볼 수는 없었다.

 

   이런 유쾌하지 못한 감정에 더해 책의 내용은 시종일관 암울하기만 했다.

   주인공 스스로도 주위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변태적인 친구의 자살 모습, 자신에게 벌어진 불행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공유한 사람과의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엮어나가며 풀어나가려는 아내,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마을 주민들과 그들의 희생자, 집단폭력의 희생자를 시대적 영웅의 모습으로 포장해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고, 근친상간의 죄책감을 근친상간으로 풀어내는 동생 다카시, 주인공 미쓰 사부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무기력해져 집단폭력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외면하기만 한다.

   주인공을 포함한 마을사람 모두가 헤어 나오지 못할 원죄의 그물에 갇힌 듯 엉킨 실타래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더욱 얽혀들기만 하다가 극으로 치닫는다.

 

   동생의 자살로 인해 폭력이 종결되고 주인공 미쓰 사부로 또한 외면했던 과거와 현실을 직시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글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역사의 저 먼 곳으로부터 뿌리를 두고 끊임없이 자행되는 크고 작은 폭력, 죄책감, 피해의식……. 이러한 일들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있을까?

   이러한 일들은 각성하고 회유하고 반성해보지만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도덕 문제에서 골라내 듯 쉽게 답을 찾기가 어렵다.

 

   읽는 내내 마음은 개운치 못했지만 자국의 폭력성을 문제 삼아 제시 해준 작가의 도덕심은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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