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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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학을 읽으면서 좋은 작품은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책을 읽고 나면 혹시 읽은 책이 영화화 되지는 않았는지 찾아보게 된다. 책의 내용과 영화의 내용이 얼마나 닮았는지, 혹은 어느 부분을 각색했는지 비교하다보면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것보다 훨씬 그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라도 원작의 내용을 알고 보면 공감과 비판을 함께 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영화를 본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고전의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도 크지만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영화로 다시 만나보는 것은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아직 책과 관련된 많은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원작보다 훌륭했다고 생각되는 영화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원작을 충실히 쫒아가거나 내용의 일부분만 부각시켜 만든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꼭 찾아보게 되는 것은 글로 읽으며 머리속으로 그렸던 장면들이 감독에 의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장면들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설사 책의 좋은 내용은 무시한 채 감각적인 장면만 부각시킨 작품이더라도 누군가는 영화의 내용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실망했을테지만 나는 원작의 훌륭함을 알고 있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책을 읽고 나면 어느새 책과 관련된 영화를 찾게된다.

 

   그런면에서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유명한 영화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원작 소설이라는 이 책을 보면서 책 읽기를 마치고 볼 영화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연 내가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알렉스와 친구들이 저지르는 이유 없는 잔인한 폭력 묘사에 도중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짜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격는 질풍노도에 의한 반항, 반발, 기성층에 대한 분노라고 하기에는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은 도를 넘어선다. 작가의 묘사대로라면 그들은 단지 본능적 악을 실행하는 작은 악마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전반부에 묘사되는 이러한 불쾌함을 참아내며 글을 읽다보면 후반부에 가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제기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정부의 '루드비코 요법'의 실험대상이 됨으로써 또 다른 폭력으로 인해 폭력에 무기력해진 주인공 알렉스 또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온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작가는 올바른 악의 교화 방법이란 무엇인지, 악의 소멸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의지를 말살시켜도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함이 폭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정의 여지가 없는 알렉스의 악의로 가득 찬 잔인하고 불쾌한 폭력, 그 폭력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보여준 국가적 폭력의 영상들에 대한 묘사가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전에 글에서 외면하고 싶게 만들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잔인한 것 보다는 즐겁고 유쾌한 것들, 보고 나면 행복한 것들만 보고 싶다.

   그러면서도 나는 책을 읽고 난 뒤의 불쾌감이 사라질 때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찾아 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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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
찰스 디킨스 지음, 장남수 옮김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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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위대한 유산>에 비하면 좀 더 해학적이고 대놓고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등장인   물들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대조시켜 놓고 자신이 읽는 이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을 정확하게 콕 짚어 말하고 있는 점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또 다른 그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파종, 수확, 저장의 3부로 나누어진 이야기의 도입부에 들어서면 씨씨가 탁월하게 실제적인 그래드그라인드 일가에 합류하게 된 과정을 그야말로 광대가 관객에게 익살맞게 이야기하듯 과장되고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이때만 해도 곡마단이라는 특이한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풍부한 상상력의 어린 소녀 씨씨가 주인공의 자리에 등장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가엾은 씨씨가 자신과 정 반대의 교육과 환경 속에서 성장한 그래드그라인드의 자식들과 함께 성장해가면서 겪을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순간 씨씨는 사라진다. 대신 사실적이고 계산적인 교육을 받았던 루이자가 결혼을 하면서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하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고, 남편 바운더비와 제임스 하트하우스라는 인물에 의해 자신이 갇혀 있던 틀에서 뛰쳐나오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도대체 씨씨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궁금할 때쯤 기다렸다는 듯 씨씨가 이야기의 마무리를 위해 나타난다. 너무나 친절하게도 아버지 그래드그라인드에 의해 봉인되었던 따듯한 인간성이 무엇인지 루이자에게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혼란에 처해있던 상황을 해결사처럼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마치 계산된 것처럼 대기하고 있다가 필요한 모든 상황에 알맞게 등장해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지금처럼 영화나 텔레비전, 컴퓨터를 즐기던 시대가 아니었던 당시 사람들은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디킨스의 소설을 읽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고, 디킨스는 다른 어떤 작가보다도 소설의 오락 기능을 중요시하며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산업화로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있는 영국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관심을 갖기를 바랐던 디킨스는 획일적이고 공리적인 교육의 폐단뿐 아니라 고용주와 고용인의 불합리한 관계에 대해서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고용주 바운더비, 일손 스티븐과 레이첼, 노동조합 대표 슬랙브릿지의 사이의 이해관계를 보다 보면 그것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이다.

 

   그 때도 지금도 미래에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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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2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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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줄거리는 극히 드라마적이면서도 교훈적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가난한 아이 핍이 성장하는 동안 뜻하지 않은 유산으로 부와 지위를 얻게 되면서 인간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결국은 주어진 주변상황에 자신을 내맡기는 대신 자신의 의지로 인간 본연의 진실함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요즘에 비하면 아이들을 크게 존중하지 않던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부모 잃은 핍이 누나에게 구박 받는 장면을 읽노라면 마음 한편이 짠해진다. 누나가 둔기로 머리를 맞아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동정보다는 핍이나 조를 위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을 대하는 누나의 태도는 젊은 나이에, 더구나 자신의 아이도 없는 처지임에도 너무한다싶다.

   그에 비해 매형 조는 핍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핍의 멘토 역할을 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던 부와 지위를 얻게 된 핍은 그를 외면하고자 하는 마음을 스스로 합리화시킨다.

   조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도 한편 합리화 시켜버리는 핍의 모습이 아마도 가장 솔직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도덕적으로는 조와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부의 있고 없음을 떠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핍과 같은 심리상태에 빠질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에게서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유산을 받았음을 알게 된 핍은 또 한 번 갈등하게 되지만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결정은 너무도 교훈적인 결말일 뿐 결코 현실적이지는 않다.

   핍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펌블추크나 재거스, 웨믹과 같은 인물들이다. 사람 자체보다는 부의 있고 없음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는 펌블추크와 같은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어버렸다. 아마도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핍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웨믹이나 재거스처럼 굴러들어온 유산을 놓쳐버리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나무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뻔 한 교훈을 보면서 나는 조의 한결같은 마음에 눈물 짖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는 항상 어린 핍을 배려하는 조의 말과 행동은 순간순간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듯 가슴으로는 느끼면서 막상 행동함에 있어서는 착하게 사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나도 손해 보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똑똑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모순된 삶 속에 살고 있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핍처럼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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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다시 읽고 싶은 명작 2
엔도 슈사쿠 지음, 김윤성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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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신은 언제나 침묵해왔다.

신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신의 말이라 떠들어 대는 것은 항상 인간들이었다.

때로는 스스로의 이익 때문에, 때로는 국가의 명분 때문에 인간들은 신을 이용해왔다.

신의 계시라느니, 신의 말씀이라느니 떠들어댄다.

결국은 다수의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소수의 이익을 위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신의 이름을 앞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왔다.

누구를 위한 신인가!

신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 것일까?

신을 위해서라면 한낱 인간의 목숨쯤은 아무것도 아닌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신의 존재가 역사 속에서 무수한 피바람을 일으켜 온 것은 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침묵하고 있던 신의 대변인을 자처한 인간들 때문이었다.

 

 

신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침묵할 것이다.

침묵하는 신이 진정 인간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 끝없이 고민하고 찾아가야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 이면에 깔린 기본 바탕은 사랑이다.

그 어떤 신이든 인간에게 증오와 살육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사랑을 바탕으로 신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신의 이름으로 기본 바탕인 사랑마저 왜곡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을 저버리지 않는 신

그런 신을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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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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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이의 우울한 성장소설.

   가난한 농촌의 3대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우울했다.

   욕설과 폭력, 불륜, 패륜...

   행복을 느끼며 사는 날보다 우울한 삶이 많았던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은 읽는 사람마저 함께 우울하게 만들었다. 주인공과 몇 몇 인물을 제외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드물다. 아마도 시대가,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외면하고 싶다.

 

   우리의 옛날도 다르지 않았다.

   인권이니 평등이니 하는 말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그러는 요즘에도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패륜과 불륜이 쏟아져 나온다. 오히려 쑨유차이 집안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외면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슬픈 멜로나 궁상스런 영화 보다는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오락영화를 보고 싶어지는 것처럼.

 

   내용도 단편 모음집 같은 구성도 썩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소설을 읽고 못 읽었던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를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 위화라는 작가의 맛깔나는 글쓰기 솜씨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같은 사람이 썼다고 하기에는 허삼관 매혈기는 가랑비 속의 외침과 같은 재료를 가지고 너무도 상반되는 요리를 만들어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자가 우울함만 주었다면 후자는 해학적인 웃음과 감동의 눈물을 주었다.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웃음과 동시에 눈물을 훔치게 했던 허삼관 매혈기....

   오늘 이야기해야 하는 책은 가랑비 속의 외침임에도 뒤늦게 읽은 허삼과 매혈기에 대한

감동을 늘어 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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