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
정원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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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항상 우리 주변에는 차별과 배제가 존재해 왔었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 곁에는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노키즈존, 인종차별, 주거지차별 등의 문제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의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지 모르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똑똑한데 가끔 뭘 몰라>에서도 어른들의 차별과 부당함이 담겨 있었다. 점심시간 베트남계 혼혈이었던 하리에게 "하리는 김치도 잘 먹네, 한국 사람 다됐네."라는 말을 남기던 선생님의 시선에서도,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하던 베이커리 카페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아이가 한 사람으로서 품격을 지닌 존재로 온전하게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할 사회에 어른 중심의 사회로 변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정원 작가의 작품에서는 오늘날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이를 키우기 점점 더 위험한 사회가 되었고, 아동을 대하는 가치와 관점에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회, 지금 우리 사회의 아동관점은 아직도 비민주적이고 아동정책은 여전히 어른 중심의 사회이다. 아이들은 미래의 주역이란 의무를 위해 지금의 자기 권리를 누리지 모샇고 어른이 시키는 대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성공 여부를 떠나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혼혈인들은 온전히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동남아나 중국에서 시집 온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들과 같이 살고 있다. 그들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들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그들은 여전히 소수이고 한국인들 특유의 친화성과 인정, 이러한 사회적 미덕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나라에 같이 살고 있는 이웃인 국내 혼혈인들에 대해서는 어떤 사회적 시선을 느낄 수 없다.

사회의 특정 이들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그것도 아아들과 같이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배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때, 그 사회의 어떤 누구도 언젠가 특정한 이유로 차별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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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1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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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도쿄의 풍경을 좋아한다. 명승지와 교토 사람들의 일상이 담긴 식당과 찻집, 꿈을 품고 있는 활기찬 사람들, 그리고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조차 가슴에 스며든다. 단순한 관광지를 벗어나 아날로그 문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가장 아날로그답다고 인정하는 곳이 바로 교토이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속에도 아름다운 교토를 배경으로 한다. 흐드러진 벚꽃 속의 신사와 불각, 하얗게 분칠하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게이코, 손님을 태우고 골목을 누비는 인력거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교토의 신비함이 베여있다.

"기온 야사카 신사 일대는 완전히 밤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야사카 신사 돌계단 아래부터 시조 길을 따라 요란한 조명이 늘어서 있다. 시조에서 남쪽으로 뻗은 하나미고지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거기서 서쪽으로 벗어나 인적 드문 골목을 걸었다. 큰길에서 벗어난 기온 부근은 한적했다. 내가 자전거 페달을 밝을 때마다 요리집 불빛이 꿈속처럼 흐릿하게 빛나며 뒤로 휙휙 물러섰다." p73

그의 대표 작품인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와 <야행>의 교토의 배경처럼 <유정천 가족> 역시 교토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교토 시모가모 신사 옆 다다스 숲에 사는 시모가모 가문의 삼남 야사부로는 둔갑술에 능한 너구리이다. 그는 너구리계의 위대한 수장이었던 아버지가 인간들에게 잡혀 너구리전골로 생을 마감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쫓으며 인간과 텐구, 너구리가 공존하는 교토의 거리를 활보하며 살아간다.

"큰형은 호랑이 모습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통복 차림을 한 젊은 도련님 스타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로등 아래 서있는 나와 동생을 잠시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더니 다리 쪽으로 가서 휘익, 하고 휘파람을 크게 불었다. 그러자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자동 인력거가 나타났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큰형의 보물이다. 인력거꾼은 일찍이 교토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자동인형 기술자가 발명한 가짜 인력거꾼인데, 이제는 움직임이 예전만 못하지만 큰형이 아버지의 유물인 그것을 계속 수리하면서 애용하고 있었다." p98

사건의 전개와 모티브로 한 이야기들을 활용하는 방법, 관계 형성 등 사건을 풀어나가는 작가 특유의 재치와 이야기 구성이 눈길을 끈다. 너구리 가족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고, 새로운 것에만 관심을 두던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적인 아름다움을 전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과 작별하면서 우리 아버지는 느긋한 그 피를 정확하게 넷으로 나누어 주었다. 큰형은 책임감만 이어받았고, 작은형은 느긋한 성격만 물려받았으며, 동생은 순진함만 물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스러움만, 완전히 제각각인 형제들을 이어주는 것은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사랑과 위대한 아버지와의 이별이다."p220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속에는 그가 사랑하는 교토를 향한 마음이 담겨 있다. 오래된 것들이 낡고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니라 시간의 힘을 증명하는 것임을, 꿈과 일상이 하나가 된 듯한 교토라는 배경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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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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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p451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태어났을 때는 자신의 몸조차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존재로서 철저히 타인에게 의지하여 생존하여야 하며, 이후 점차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간다. 처음부터 타인에게 의존하여 자라기 때문에 타인의 영향을 받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완성시켜 나가는 존재이다. 물론 유전적으로 영향을 받아 개인의 한 부분이 형성되어 있지만 이후 성장 과정에서 타인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인간은 성장해 나간다.

이창래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 소설 <타국에서의 일 년>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동양인의 피가 아주 조금 섞이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가지고 있던 백인 남성의 성장 이야기다. 이 소설은 퐁 로우와 만나 하와이, 홍콩, 마카오 등의 비즈니스 여행으로 보낸 일 년과 그의 연인인 싱글맘 밸과 그의 아들 빅터 주니어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흔히 사람들은 순간을 살라고 조언한다. 끊임없이 미래나 과거를 보려 들지 말고, 그 모든 걸 더해 보지도 말고, 현재라는 풍성하게 무르익은 과일을 맛보라고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면 인간은 그 순간에 머물게 된다. 중독자처럼 자신을 속이고 포기해 버린다. 그 모든 달콤함이 썩는 것 외에는 변화도 일으킬 수 없게 될 때까지." p29

친구의 부탁으로 골프 캐디를 하다가 만난 중국계 사업가인 퐁 로우를 만나고 틸러의 좋은 인상에 퐁은 그가 거느리고 있는 여러 가게에서 시식을 하고 평을 남겨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퐁은 틸러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그에게 자신의 사업에 필요한 비즈니스 여행의 동반을 부탁한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퐁과의 여행은 틸러에게 커다란 아픔으로 남는다. 모든 것을 버려둔 채 퐁에게 모든 것을 맡긴 틸러의 타국에서의 일 년으로 후 틸러는 밸이라는 자신과 전혀 다른 낯선 여자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나는 퐁을 잘 몰랐지만, 그의 말투와 움직임에는 충실함이 있었다. 동네를 자기 마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로지르는 태도에서 확신이 느껴졌다. 그는 테라스의 갈라진 모든 틈을 새로 피어난 모든 수국 꽃송이를 소유한 듯했다. 흩날리는 나뭇잎 한 장이나 자갈 한 개도 예외 없이 그 모든 게 퐁이라는 사람의 존재 안에 섞여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p65

"오랜만에 처음으로, 나는 완전한 만족감을 느꼈다. 혼자 있었는데도 내가 딱히 내 자리를 찾은 것은 아니라도 최소한 지속적인 상황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존재 방법을 찾았으니까." p550

이창래 작가의 소설 속에서 그려내는 인물들은 대게 화해롭지 못하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하고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여기에서 인간과 인간의 근본적인 괴리와 최근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직접적인 인간관계 측면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비대면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환경이 변화한 문제, 그로 인해 매우 이기적인 관계만을 추구하거나 인간관계에서 경험하는 상처들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들의 모습이 그렇다.

"나는 핀으로 꽂힌 귀뚜라미였다. 비즈는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말이다. 나는 반박했다. "노력은 했지." 내 노력으로 뭐가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기서든, 타국에서든 모든 일이 잦아든 지금은 내가 좀 괜찮아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과거의 자도 구동 모드로 전화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그 디폴트 상태의 소년, 그 디폴트 상태의 영혼이 되지 않을 것이다. 피도, 사랑도 묽어진 녀석. 자기의 머릿속에서만 노래를 보를 수 있는 녀석." p685

나의 타국에서의 긴 유학 생활 동안 하던 고민들과 일던 분노, 받은 상처와 고마움 같은 감정들로 무엇이 달라졌을까? 일본어가 서툴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책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몸수색을 받아야 했던 안 좋은 기억도, 형편이 좋지 않은 유학생들에게는 유난히 차갑게 굴던 교수의 구역질 나는 편견, 마지막 학기 학비를 낼 수 없어 귀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나에게 아무런 조건도, 기한도 없이 큰돈을 빌려준 아르바이트 가게의 일본인 점장님의 친절도 지금의 나로 성장하기까지의 하나의 과정이었을까?

삶의 이유와 감각을 잃어버린 타국에서의 일 년을 통해 틸러는 또 다른 타인으로 그것을 회복하려는 변화의 과정을 담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을 형성해 나간다. 인간이란 한없이 연약하고 무른 존재이므로 끊임없이 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그 되찾을 길 없는 타인과의 유대와 상실이 꼭 비관적이고 슬픈 것만은 아닌 것을, 그 상실 속에 참으로 깊은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성찰해 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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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2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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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말피 공작부인이다." - 존 웹스터 <말피의 공작부인>, 4막 2장

2부에서는 마이크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엠마의 본격적인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용의자로 지목된 엠마의 모든 사생활이 밝혀지고 그녀가 쌓아왔던 명성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건 쟁점을 정리하는 자리에서부터 엠마 측과 상대측 검사 소나는 날선 공방을 펼치고, 끝내 엠마 측이 불리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최근 불륜이나 바람, 갑질 등 위법적 행위는 아니지만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논란도 자주 발생한다. 그 예로 한 정치인이 유부녀와 호텔방에 있는 몰래 촬영한 영상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법적 책임은 없으나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도 공인은 대중의 비난을 받는다. 대중의 외면이나 비난, 해당 업계에서의 퇴출까지도 그 책임으로 간주되지만 공인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공인으로서의 엠마의 삶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미즈 웹스터는 마이크 스톡스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여러 건의 기사를 함께 만들었고, 술과 식사를 함께하던 사이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수백 건의 문자가 오갔다는 점도 추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사건이 있기 3주 전인 11월 17일, 두 사람이 저녁 식사를 함께 했고 이후 호텔에 들어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도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쫓고 있는 그에게 화가 났습니다. 명예가 실추될까 우려했습니다. 저희는 자신의 명성을 유지할 수 없을까 봐 고민하던 그녀가 그를 민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p27

"존 웹스터의 복수를 그린 이 비극 작품은 프로그램 북만이 아니라 책도 있었다. 나는 <말피의 공작부인>을 읽으면서 공작부인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의 성적 자율성을 조롱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음한한 미망인. 매춘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오빠들은 물론 스스로의 신분과 권력에도 짓눌리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비난받았고 명예는 더럽혀졌지만 그럼에도 자의식만은 그대로 짓눌리기를 거부했다. 나는 여전히 말피의 공작부인이다. 그녀는 이렇게 선포했다." p47

"명예라는 건 가장 위태로운 무언가다. 오랜 시간 쌓아도 단 몇 초 만에 무너질 수 있다." p250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부분이 밝혀지고 죽은 마이크가 알리려 했던 또 다른 진실이 밝혀진다. 재판이 끝나고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은 깊은 여운을 주었다. 죽은 마이크가 알고 있었던 진실과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엠마의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우리는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단어가 젠더 간의 갈등이나 여성 혐오에 대한 이슈가 아닌가 싶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남성의 정체성이 불안해질 때 나타난다는 여성 혐오는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그들을 타자화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오랜 시간 정치부 기자로 활동한 저자 세라 본 역시 세계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이 문제를 의식해 여성 혐오의 미러링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의식의 개편을 부탁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써 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 방영 예정작인 <레퓨테이션>의 시청 전 원작을 읽고 시청하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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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1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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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명예를 잃고 말았구나.

내가 죽고 난 후에도 영원할 그 명예를 잃고 말았고,

이제는 짐승 같은 것만 남았구나." -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셀로>, 2막 3장

인간의 욕망과 욕심의 종류는 헤아일 수없이 많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재물욕과 명예욕이 아닐까? 실제 재물은 잃어버리거나 놓아버리면 자기를 떠나게 된다. 다시 말해 재물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버리고 싶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명예라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한 잃어버릴 수도 없고 놓아버릴 수도 없다.

상류층 특권층의 어두운 부분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된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을 아내와 함께 흥미롭게 보곤 했다. 개인적으로 시에나 밀러의 팬이었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시청했지만 정치인 특권층의 범죄 스릴러를 감정과 심리적 요소들까지 섬세하게 그려내며 진실을 해부해 가는 탄탄한 스토리로 더욱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의 원작자 세라 본의 신작 <레퓨테이션:명예>는 그녀가 가디언에 입사해 11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권의 권력, 특권, 경찰 수사, 형사 사건 재판 취재 같은 그녀만이 쓸 수 있는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다.

주인공 엠마 웹스터는 포츠머스 지역을 대표하는 하원 의원으로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젊은 여성 정치인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여성 인권 문제 등을 발언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기 상승과 함께 그녀를 비하하는 사람들도 함께 늘어났다. 매일 불안에 떠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명예를 지키려 지금껏 달려온 엠마는 정치인으로 완벽하게 보여도 사실, 커리어를 쌓느라 결혼 생활은 파탄 나고, 딸과의 관계는 서먹하며 일에 쫓겨 자기 삶이란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하룻밤을 보낸 정치부 기자 마이크의 사망으로 그녀는 정치인으로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훗날 나는, 아이가 다른 여자아이의 명예를 훼손한 일이 그리하여 자신의 명예까지 위험하게 만든 일이 내 명예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불러온 또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이크와의 하룻밤처럼, 모두 연결된 사슬 속 한 고리였다."p159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엠마는 잘해나가는 것 이상으로 활짝 피어났고, 그 삶에 도취되어 있었다. 독주자로 설 만큼은 아니지만 세미프로 실력은 갖춘 청중의 박수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연주자인 캐럴라인은 그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엠마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것이다.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목소리를, 제아무리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그녀에게 권력의 맛을 알려준 목소리를 말이다." p203

"다른 신문사와 방송사도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속속 전했다. 사무실 TV 화면 하단에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들이 이어졌다. 하원 의원들 집에서 타블로이드지 기자 무의식 상태로 발견, 여성 하원 의원들 집을 침입한 기자 입원, 타블로이드지 기자 세 여성 하원 의원 집에 무단 침입. 잠깐씩 자막이 겹치기도 했지만, 금세 바로잡혔다. 이런 상황이 긍정적으로도 작용할 수 있을까? 티핑 포인트가 될 수도 있을까? 언론과 대중이 공인들을 정치인, 유명 인사 그리고 해리와 메건도 빼놓을 수 없으니 왕족까지 개인적으로도, 또 소셜 미디어상에서 지나치게 괴롭히고 있다는 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p256~257

옳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반대편에 선 사람들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다.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자는 누구인지, 그녀는 어떻게 이 위기를 모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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