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이 지나간다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3년 8월
평점 :
사람들에게 숨김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삶과 가능한 숨기고 싶은 모습이 공존한다. 지극히 당연한, 본능적인 일이다. 내면의 갈등, 어둠과의 싸움은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것은 특별히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있는 자들에게서 두드러지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작중 인물이 품고 있는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나 불안 등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저자의 이번 소설은 '비밀'에 관한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야행>에서는 죽은 남편의 수첩을 보며 비밀 없는 평범한 삶에 허무함을 느끼고, <밤의 마침>에서는 한순간 실수였다고 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치명적일 수 있는 비밀이 추문으로 폭로되는 것을 거짓으로 막아내고, <비밀의 호의>에서는 50년 전 여동생이 자신의 방에서 잔 후 나흘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주위에 다그침에도 침묵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흘간은 적어도 한 사람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수첩을 보며 가졌던 긴장감,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기대감과 혹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남편을 의심한 죄책감에서 벗어났다. 일생 성실하고 가족에 충실했던 남편에게 감사했다. 남편이 아무런 비밀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세상을 떠난 남편이 애틋하고 그리웠다.
하지만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실망감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편 역시 이렇다 할 비밀이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열정이나 정념 같은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마저 더욱 시시해지고 심드렁해지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야행 P25
절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비밀,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무언가. 숨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문제의 차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 비밀.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원천적으로 타자와 공유가 불가능한 비밀에서 보이는 것은 인간이기에 한없이 허무하고 고독하다는 사실과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겠지만 소설이란 무의미에 맞서 삶의 의미를 발굴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미화라는 강박 그 자체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 이 둘 사이의 쉽게 잡히지 않는 균형을 찾아가면서 요약이나 개념화의 욕망 밖으로 버려지고 흘러나가는 삶의 순간들을 쉼 없이 붙잡고 있는 작가들의 노력이 놀랍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