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악녀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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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떠올리며 신약성서 마가복음 6장 17~29절에 기록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가 떠오른다. 헤롯 왕이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결혼하자 요한은 이를 유대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비난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려 했지만 선지자로 추앙받던 요한을 두려워한 헤롯의 반대로 죽이지 못한다. 요한의 죽임만을 생각하던 어느 날, 헤롯의 생일이 되어 연회가 벌어졌을 때 헤로디아가 어린 딸 살로메를 불러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게 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였고, 같이 크게 기뻐했던 헤롯은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는 맹세를 하게 된다. 헤로디아의 지시를 받은 살로메는 요한의 목을 원했고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던 헤롯은 결국 요한을 참수하고 만다.

성경에서의 살로메는 어머니인 헤로디아의 지시를 받고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과 슈트라우스의 오페라에서는 요한에게 반해 그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의지로 헤롯을 유혹하는 팜 파탈로 묘사되고 있다.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악녀란 어떤 존재들일까? 시부사와 다쓰히코가 정의한 문고판 후기를 보면 악녀란 "미모와 권력을 가지고 악의 극한까지 간 여성, 혹은 애욕과 범죄로 스스로를 망가뜨린 여성이라고 칭하고 있다. 악녀를 칭하는 기준 정확히 구분 짓기는 힘들지만 후세에 오래 전해질 만큼의 강한 인상을 남기며 남성의 운명을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악행을 저지른 여성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동, 서양을 합쳐 12명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루크레치아 보르자 엘리자베스 여왕, 메리 스튜어트, 마리 앙투아네트, 클레오파트라, 측천무후 등 다양한 시대와 국가의 여성의 삶을 그만의 스타일로 풀어내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비였고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었다는 매리 스튜어트를 둘러싼 얽힌 비극적인 비운의 삶과 폭군 네로의 어머니로서 그의 인생 전반부를 공포로 지배했던 아그리피나와 남존여비 봉건사회에서 일개 여성이 지존의 자리에 올라 모든 남자들의 무릎을 굻게 만들었던 측천무후의 이야기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극단적인 로맨티시스트 기질을 지닌 메리라는 이름의 이 여성을 과연 '악녀'라고 불러야 할지 무척이나 의문스럽다. 어떤 사람은 그녀를 순교자로 찬미하고, 어떤 사람은 그녀를 남편을 살해한 음탕한 여성이라고 비난한다. 많은 역사가나 시인에게 이토록 다양하게 묘사되는 여인도 드물 것이다. p78

대부분의 전제군주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그리피나 역시 자신의 지위가 언제든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상 신음했다. 황제에게는 메살리나가 낳은 브리타니쿠스라는 적자가 존재했다. 아그리피나의 친아들 네로는 황제에게는 남의 자식이나 매한가지였다. 장래에 대한 그녀의 불안감이 싹을 틔우고 있었던 이유다. p136

무후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강인한 의지력과 정치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미신에 대한 맹신이 존재하던 시대에 미륵의 화신이라느니, 주 왕실의 자손이라느니 하면서 어리석은 백성을 감쪽같이 미혹시켰기 때문이다. 화려한 의식이나 사원 건립도 보기에 따라서는 백성을 홀리는 선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이 예상을 뛰어넘은 효력을 발휘해 결국 그녀는 전대미문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p198

때로는 개혁의 주체로 때로는 정의의 집행자로 번번이 자행돼온 극단적인 행동들의 실체는 무엇일까? 인간이 문명을 이룬 이래 계속해서 나타난 수많은 폭정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깔려 있을까? 지금까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연적으로 행해야 했던 수많은 정치적 행위들의 밑바탕에는 자신들 이외의 사람은 새로운 세상과 함께할 수 없는 정화의 대상일 뿐이다.

저자가 풀어내고 있는 악녀들은 찬미와 증오를 동시에 받고 있으며 저자 또한 여전히 논쟁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단순 선과 악의 개념을 초월해 한 시대를 뒤흔든 여성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졌던 건 권력이 갖는 양면성인 것인가? 인간에게 권력욕이 있는 한 폭정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권력자는 잠재적인 폭군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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