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질문
우찬제 지음 / 열림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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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발전할수록 책의 소중함은 더 절실해진다. 어려서부터 손가락을 움직여 지식을 얻지만 깊은 사유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독서뿐이다. 책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과 세상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글을 통해 전달되는 언어의 매력은 여전히 실재하는 가치라고 믿고 있다. 음악이나 미술이 시대 또는 양식에 구애를 받을 수밖에 없는 반면, 언어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의미를 전달한다.


우리 문단의 가장 활발한 비평가이자, 탁월한 문학 평론가인 우찬제 교수의 신작 <책의 질문>은 그의 숨 가쁜 행보의 집적체로 그의 문학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지식과 성찰, 특유의 사유가 담긴 문장과 책을 읽고 있는 여인이라는 주제로 수록되어 있는 명화들은 <책의 질문>을 읽는 즐거움이다.


그가 꺼내 든 책들은 모두 한 사회를 대표하고 한 시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위대한 책들이다. 그것은 책에 대해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의 시기를 보냈던 우찬제라는 한 사람의 삶에 새겨진 깊고 뚜렷한 흔적이기도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랄까, 레온 크라이츠먼과 괴테,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날카롭고 세밀한 기록들은 문학을 만들고 살아가는 인간이 공유하는 본질과 가치와 방향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일까? - 레온 크라이츠먼 <24시간 사회>

얼핏 보기에 개인의 선호를 반영하는 탄력적 시간 시스템으로 효율적인 측면도 많아 보였지만, 그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도, 상점도, 교실도, 병원도 24시간 문 닫지 않고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지속되는 것 아닌가. 결국 문한 경쟁만이 더 가속화될 것 아닌가. 민족, 도시, 국가, 지역 단위에서 파워 엘리트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 사이의 간극을 더욱 심화하지 않을까. 경쟁 이데올로기와 세계화 추세를 최고의 선으로 추구하는 각국의 파워 엘리트 집단의 기득권 확장에만 기여하지 않을까. 24시간 사회가 오히려 '불안한 현대사회'를 가속화하지 않을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일까? - 괴테 <파우스트>

<파우스트>를 거듭 읽어도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 하게 마련이라고 했던 대목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괴테의 삶의 궤적과 파우스트의 편력에서 우리의 최종적 관심에 값하는 것은, 바로 상승적 발전을 위한 항상적 노력이다. 대립적인 것들을 껴안고 방황하면서도 지혜롭게 노력할 때 자기 삶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항상적 노력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 인간에게는 누구나 두 가지 영훈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잘 조화시켜 나가면서 지혜롭게 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자신 안에 있는 악마를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긍정하고 극복하려는 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살찌울 수 있다는 것."

 

 

호모 사피엔스, 그 얼마나 기기묘묘한가? - 박경리 <토지>

<토지>를 읽다 보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가 하나의 종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종차를 보이는 인간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월선이처럼 가장 선한 인간에서, 조준구나 김두수처럼 가장 약한 인간까지 아주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길상이처럼 노비의 신분에서 상전이었던 서희와 결혼해 몰락한 최씨 가문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독립운동에 동참하고 나중에는 관음탱화를 그리는 예술가로 역동적인 존재 전환을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임이네처럼 시종일관 추악한 탐욕의 화신으로 나오는 인물도 있다. 작가 박경리는 최참판가를 중심으로 하여 주요 인물들이 성격도 잘 그렸지만, 방계의 부정적 인물을 형상화하는 데도 웅숭깊은 장기를 보였다.

 

 

행복을 기다려야만 하는 지겨움을 어쩌면 좋을까? - 김애란 <호텔 니약따>

서리라고도 불리는 갈매나무는 비교적 추위를 잘 견딘다. 북부지방 사람들에게는 세한 시절의 벼리가 될 만한 나무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래서 백석의 화자는 "굳고 정한" 영혼의 푯대처럼 보이는 갈매나무와 그렇지 못한 자신의 차이를 반성하면서, 갈매나무의 영혼으로 자신을 단련시켜 세한의 시절을 견디려 했다. 그러나 김애란이 응시한 젊은 영혼에게는 "갈매나무"라는 장치마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갈매나무마저 품을 수 없는 처지에서 행복을 마냥 욕망해야 하는데, 그에 반비례하여 비행운만 가중되는 형국이라면, 정녕 문제가 아닐 수 없겠다.

 

 

우리, 용서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 이청준 <벌레 이야기>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느닷없이 괴한에게 유괴되어 살해된다. 당연하게도 아이의 어머니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휩싸인다. 상처는 깊어지고 삶의 정처를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기독교 신앙에 감화되어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면서 범인을 용서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녀는 교도소에서 범인을 면회한 다음 더 절망하여 파국의 길로 치닫게 된다. 도대체 그 면회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녀는 어렵게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찾아갔던 터였다. 그런데 막상 범인을 만나고 보니, 그는 이미 용서를 받은 상태였다. 교도소에는 주님을 영접하고 용서받은 범인은 놀랍도록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창동 감독이 <밀양>으로 제목을 바꿔 영화화하기도 했던 이청준의 소설<벌레 이야기>의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용서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이미 용서받고 있었기에 자신은 용서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내가 아직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이 소설은 인간의 윤리와 용서의 문제를 신앙과 실존의 측면에서 심원하게 숙고한 작품이어서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어쨌든 용서의 문제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복잡한 난제임을 거듭 환기한다. 용서의 종교적 맥락만 강조되면 인간관계에서의 비인간화 및 인간적 가능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고뇌한다.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보다 창의적 질문 하나가 시대를 바꾸기도 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삶 속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질문들로 문학이라 불리는 그 작품들을 통해 그 작가의 존재를 여미어 기리는 일, 이는 어쩌면 책을 읽는 이들뿐만 아니라 문학을 통해 삶의 진리와 인간의 가치를 깨우치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심장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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