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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한의원
이소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3월
평점 :
"9개월 동안 오른쪽 손톱을 깍지 못했다. 바로 오른팔에 붙은 유령 때문에!"
살다 보면 한 번쯤은 큰 사고를 당하거나 누군가에 의한 폭행, 작게는 넘어지는 것과 같은 일로 다치게 되어 끔찍한 통증으로 고생했던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개인적 차이는 있겠지만 그 고통은 심리적 트라우마로 남아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어깨 통증으로 1년 가까이 고생하고 있는 중이다. 병원에서는 뼈와 근육에 이상이 없다고 이상하게도 참기 힘든 통증으로 불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다 보니 매달 출간 예정인 한국문학 신작 리스트를 둘러보게 된다. 그러던 중 [알래스카 한의원]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소설을 보게 되었고 출간 전 영화 판권 계약이 완료된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진 리터칭 작업을 하는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이지는 얼마 전 자신의 선배이자, 회사 대표인 박대표의 강아지를 산책 시키던 중 불법 콜택시에 오른팔이 치이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병원으로 실려간 이지는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타박상 외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게 되지만 오른쪽 팔에는 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후 여러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했지만 통증은 여전했고 그것은 의학적으로 명확한 치료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복합통증 증후군'이었다. 불행은 연속으로 온다고, 통증으로 인해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지는 회사에서 해고까지 당하게 된다.
"호르몬과 신경 전달 세포들이 어떤 고통을 기억했다가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음에도, 작은 자극에라도 노출되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다."
치료를 위한 검색 도중 우연히 '싱잉볼 치유 모임'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헬로키티 가면을 쓴 소녀에게 알래스카에 있는 한의원에서 복합통증 증후군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지는 알래스카에 있는 한의원에 바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한의사 고담이었고 그에게서 자신은 치료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지만 치료한 적은 없다는 말을 들려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이지는 무작정 알래스카의 한의원으로 떠나게 된다.
"내가 아는 이누이트가 있는데, 이 땅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부족에 따르면 가장 좋은 죽음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하면서 죽는 거래요. 그래야 다음 생에 그것을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고통스러운 감정과 마주한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가슴 깊이 숨겨둔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시간이라는 간이 처방으로 엷어지게 할 수는 있어도 사라지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유약한 존재. 인생 전부를 걸고라도 자신의 상처와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값진 삶이지 않을까?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업을 해온 이소영 작가라서 그런지 공간과 인물들이 상상이 되는 디테일을 가진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고, 그런 경험들도 이 소설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이지를 둘러싼 인물들이 펼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호두앤유픽쳐스에서 준비 중이라는데 이지가 걸었던 트랩 라인 안쪽의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경을 어떻게 표현할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언제 상영될지 모르는 영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오랜만에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