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평점 :
유년 시절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다. 전공자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중년층이 접할 음악을 어린 나이부터 들으면서 어느덧 30년을 넘게 들어오고 있다. 오랜 시간을 들어오면서 주로 듣는 레퍼토리가 있다면 성악곡(종교음악, 가곡), 교향곡, 그리고 실내악과 독주곡 위주이다. 그중에서도 피아노를 포함한 실내악과 독주곡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그만큼 나의 음악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는 대표적 피아노 작품 선택하여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참조할 수 있도록 정리한 매우 포괄적인 피아노 문헌이다. 건반 음악을 위한 작품의 역사에 있어서 각 작곡가들의 위치를 잘 대표할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을 제공하고 있다. 인류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을 바흐부터 아르보 패르트까지 그녀가 엄선한 세기별 대표적인 작곡가들의 곡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골드베르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꼽을 것이다. 물론 나도 글렌 굴드의 음반을 좋아한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하프시코드로 연주할 의도로 만들어진 곡은 연주자가 본연의 소리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몇 년 전부터는 셀린느 프리쉬의 하프시코드 연주를 즐겨듣고 있다. 어떤 면에서 피아노 음보다는 거슬릴 수 있는 하프시코드지만 프리쉬의 음반은 동글동글한 음으로 거부감이 없어 자주 듣게 되는 음반이다.
리스트의 애호가가 아니면 잘 모를 수 있는 <잿빛 구름>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리스트는 최초의 현대적 관점에서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작곡가이자 사색가이며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연주자로, 피아노 연주에서의 거의 모든 미래적 다양성을 구체화시켰다. 그는 종종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마치 자신의 곡인 듯 그의 고유한 방식으로 편곡하려고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지만(쇼팽은 자신의 작품 중 하나가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어졌다는 것을 듣고 매우 불쾌해했다.) 악보와 작곡가의 지시는 대단히 충실히 따랐으며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느껴질 때는 더욱 그러했다. 리스트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위였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 도입부를 연상케 하는 <쟃빛 구름>은 리스트의 후기 피아노 소품 중 <우울한 곤돌라>와 함께 가장 유명한 곡이다. 리스트 피아노 전곡 녹음으로 유명한 레슬리 하워드의 음반을 즐겨 듣는데 그의 연주 스타일과 <잿빛 구름>의 우울함이 잘 어울리는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드뷔시는 아라우의 <달빛> 연주를 처음으로 듣고 드뷔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리스트 이래 가장 독창적인 피아노 음악 작곡가로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 맞먹는 섬세한 감정을 몇 겹의 음들을 동시에 사용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였고 새로운 페달의 사용으로 그의 작품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연주자인 저자 입장에서의 전주곡 제2권에 대한 전체의 해설은 저자가 얼마나 드뷔시의 곡에 애착을 가지고 진지한 입장에서 연주해 왔는지 느끼게 해주는 흥미로운 글이었다. 개인적인 추천 음반은 샤플랭의 음반을 추천한다. 바부제나 플라네, 로제의 음반도 충분히 명반이지만 예민한 감각, 극도로 섬세한 터치는 샤플랭의 음반을 추천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하기를 바란다.
프로코피예프는 피아노곡을 가장 많이 작곡한 현대 작곡가 중의 하나이다. 그의 초기 작품은 후기 낭만파에 속하며, 그 시기에 이미 무르익은 자질은 근작에 속하는 소나타 7번에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쟁 소나타로 불리는 그의 6~8번 특히 피아노 소나타 7번은 전쟁 소나타 중 가강 유명한 곡이다. 저자는 7번의 초연을 맡은 리히테르의 에피소드와 그녀가 생각하는 피아노 소나타 7번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설명하고 있다. 리히테르의 연주 외에도 최근에 발매된 스티븐 오스본의 히페리온 음반도 굉장히 좋게 들었고, 프레데릭 치우의 아르모니아 문디의 음반도 깊이 있는 연주가 아닐까 한다.
클래식 음반 판매율의 최하위를 차지하는 건 현대음악이다. 현대음악은 익숙해질 수 있는 음악은 아니며 확실한 의지 없이는 친숙해지기 힘들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현대 음악 작곡가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고레츠키와 패르트다. 에스토니아 작곡가인 아르보 패르트는 ECM에서 발매된 <알리나를 위하여>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곡가가 되었다. 종의 울림을 연상케 하는 이 연주는 명상적일 만큼 단조롭지만 아름답게 다가온다. 흔치 않은 <알리나를 위하여>에 대한 연주자의 위치에서 전해지는 곡의 해석과 느낌은 이 책의 수많은 매력 중 하나이다.
수전 톰스의 <피아노의 시간>은 그녀가 엄선한 피아노 음악 레퍼터리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각 시대의 전반적인 피아노음악의 상황, 대표적인 작곡가들의 작품들, 그 스타일의 특징 등을 상당히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경험이 담긴 흥미로운 해설과 QR코드의 삽입으로 바로 들어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이 책의 커다란 장점이라고 하겠다. 이 책은 피아노 음악을 입문하려는 이들, 학문적으로 공부하려는 이들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