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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평점 :
우리에게 소개된 대부분의 과학적 지식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지금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난 발견과 발전의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누락되고 배제되었던 숨겨진 사람들과 이야기들.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는 지금껏 과학 교육의 시스템적 문제로 서구 열강 위주의 과학사에만 집중돼 조명 받지 못했던, 하지만 과학사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업적을 이룩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윈, 뉴턴, 아인슈타인 등의 유명 과학자들의 위대한 업적의 소개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학자들이 수행했던 중요한 역할을 소개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유명 과학자들도 전 세계의 여러 사람들과 협동을 통해 오늘날의 과학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오늘의 <과학의 반쪽사> 완독 후 실려 있는 수많은 업적 중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거나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을 짤막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한 1700년대 도쿠가와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1700년대의 일본의 통치자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우연히 삼촌이 한 네덜란드 상인에게 받은 책을 발견했는데 요한 존스턴의 <네발 동물의 자연사>였다. 호화로운 삽화가 실려 있는 이 책에서 가장 매료되었던 동물은 코끼리였다. 자기 소유의 코끼리를 원했던 도쿠가와는 일본과 우호적인 무역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하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아시아 코끼리를 들여오기로 합의했고 나가사키에 도착한 코끼리는 교토로 옮겨진 다음 에도의 도쿠가와에게 전해졌다. 그 후 도쿠가와와 그의 후계자들은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외뢰 동물을 들여왔다. 이국적인 동물에 대한 도쿠가와의 관심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일본의 경제적, 정치적 미래에 대해 우려했고, 자연 세계의 탐구가 번영의 열쇠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도쿠가와는 나라의 번영을 위해 값비싼 외래종 대신 대체할 만한 자국의 종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만물의 분류'라는 제목이 붙은 조사는 3590개의 항목을 포함했고 이것은 동식물뿐 아니라 광석, 금속 원석까지 포함된 조사였다. 일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천연자원을 소유하고 있었고 특히 유럽 무역 회사들이 탐내는 구리와 장뇌유가 풍부했다.
18세기 초에는 중국 자연사 연구의 가장 좋은 점과 일본의 식물에 대한 최신 연구를 결합해 책을 저술한 일본의 박물학자 가이바라 에키켄은 도쿠가와 막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였다. 당시 다른 학자들은 중국 학자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 만족하고 있었고 특히 일본에 서식하지 않는 외래종을 많이 다루고 있는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그는 일본에서 실제 볼 수 있는 종을 정리하기 위해 일본 전역을 여행하며 800곳이 넘는 마을의 자연환경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힘겨운 여행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야마토 본초>를 출간했다. 그의 <야마토 본초>는 이시진의 <본초강목>을 그대로 반영하되, 단순히 중국어 텍스트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적인 다양성을 반영했고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358종을 추가했다.
지난 140년간 벌어졌던 논쟁들을 뒤돌아볼 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다윈주의적 패러다임의 견고함이다. 다윈주의적 이론과 경쟁했던 세 가지 주요 이론, 즉 변환주의, 라마르크주의 정향 진화론은 1940년 무렵 완전히 반박되었으며,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그 후 60년 동안 다윈주의를 대할 만한 어떤 이론도 제기되지 않았다. 1859년 <종의 기원>이 출간된 후 19세기 러시아 과학자들은 다윈의 주장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생물의 진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학의 선구자 기억되고 있는 메치니코프도 다윈의 진화론을 적극 받아들인 진화 사상가이다. 1860년대에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 찰스 다윈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종의 기원>의 독일어 번역본을 구입하고 열정적으로 탐구했다. 다윈의 자연선택이 하나의 종 내 개체들 사이의 투쟁이라고 강조했고, 메치니코프의 관점 역시 생명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자원 경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생존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진화에 대한 메치니코프의 관점을 형성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자 구조를 발견한 것은 영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펀드가 이룩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비유럽 과학자들이 현대 과학의 역사에서 배제된 대표적인 사례로 1911년 러더퍼드의 영향력 있는 논문이 나오기 전 이미 정확히 같은 주제에 대한 일련의 나가오카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물리학에 중요한 공헌을 한 인물로 물질 자체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변화를 가져다준 인물이었다. 수 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물질의 본질에 대해 확실히 밝히지 못하였고 물질의 기본 구조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나가오카는 이 논쟁을 잠재우고 그 과정에서 원자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그는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원자가 거대한 하나의 양전자 입자 주위를 도는 음전하 전자 무리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의 과학적 업적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문화와 과학 분야가 모임에 의해 물리학과 화학 분야의 결합으로 얻은 성과였다. 이것은 전 세계 문화 교류를 바탕으로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과학적 돌파구가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사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업적들은 서양 강국만이 이룩한 결과물이 아니며, 지금껏 그랬던 적도 없었다. 지금까지 표면적인 부분만을 보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의 반쪽사>는 기존의 통념을 깨트리고를 전 세계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 현대 과학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 세계의 형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정확한 근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