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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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언어로 이루어지는 모든 감각들은 그 자체로서는 하나의 의미의 훌륭한 작품이다. 그것의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닫혀진 감각의 문을 열고 거기에 들어가는 자신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닫혀 있던 감각 속에 감히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그 세계로의 표현이 감미롭고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 것인가를 쉽게 이해할 것이다.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쳐든 햇빛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겨울철, 침실 창유리에 새빨간 빛이 뿌려지면 사람들은 동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잠결에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절망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가서 종이에 올빼미나 다른 육식동물을 그려 창문에 붙인 다음, 주방으로 가서 향기로우면서도 조금 씁쓸한 커피를 끓이는 것이다."

 

<감각의 박물학>에서 말하는 우리의 신체는 하나의 생태계와도 같아서 거기에 흐르고 있는 피는 조류와 비슷하며 우리의 몸과 감각은 태고의 모습에서 거의 변한 게 없다고 한다. 그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감촉, 맛, 냄새, 소리, 빛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단어는 인류의 문화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고 그것을 민속과 과학이라는 장르를 덧붙여 풀어나가고 있다.

 

"한 영혼이 세상에서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보는 것이다.

선명하게 본 것은 모두 시이고 예언이며 종교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 중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연이 가진 색깔은 한결같이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색이다. 바람 부는 날은 바다가 흔들리고 바닷가 언덕 풀도 흔들리고 하늘도 흔들려 강렬하게 색으로 다가온다. 그 흔들림이 또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그런 바닷바람 속을 거닐다 보면 바람이 맑아 뒤에 두고 온 세상 풍경이 절로 잊힐 때도 있다. 푸른색을 펼쳐 놓은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와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에 드러내는 바다는 또 다른 바다의 모습이다. 비 오는 바다의 하늘을 흑백으로 바뀌고 검푸른 바다 빛만 존재한다. 모든 색을 흡수하고 모노톤으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바다를 느끼는 모든 감각을 사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바다에서 불어는 바람을 뒤로 초가을이면 잘잘하게 피기 시작하는 보랏빛 해국들과 해당화들이 나의 모든 감각들을 유혹한다. 나는 이런 바다 풍경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을 줄곧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 곁에 함께 가는 이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면 얼마나 서운하고 두려워지는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의 언어인 이 책은 인간의 신체와 과학 간에 감각이라고 할 만한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앞에도 말했듯이 감각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일이란 결코 간단하거나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을 향한 이러한 간절한 시선의 밑바닥에는 일종의 '실존'이라고 할 만한 어떤 정서가 깃들어 있다. 감각이라는 아름다움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가능한 생물학적 에고이즘이 아닐까.

 

후각[Smell]

냄새에 대한 감각은 지극히 정확할 수 있지만, 어떤 냄새를 맡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반들거리는 새 책의 종이 냄새나, 등사기에서 갓 빠져나와 석유 내가 가시지 않은 인쇄물 냄새, 혹은 사체, 혹은 향수 박하니 층층나무, 라일락 같은 꽃이 뿜어내는 냄새의 미묘한 차이. 냄새는 침묵의 감각이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어휘가 부족한 우리는 말문이 막힌 채, 불명료한 쾌감과 자극의 바다에서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빛이 있을 때만 보고, 입속에 뭔가를 밀어 넣어야 맛을 느끼고,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와 접촉해야 감촉을 느끼고, 일정 정도 이상이 되는 소리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숨 쉴 때마다 냄새 맡는다. 눈을 가리면 보이지 않고 귀를 막으면 들리지 않지만, 코를 막고 더 이상 냄새를 맡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을 것이다. 어원학적으로 말하면, 호흡은 중성적이거나 온화한 것이 아니다. 호흡은 '익은 공기'다 인간의 몸에서는 끊임없이 불을 때고 있다. 인간의 세포에는 아궁이가 있어서, 숨을 쉴 때 몸을 통해 들어온 세계를 살짝 익힌 다음, 약간 변화된 그것을 다시 내보낸다. p19

촉각[Touch]

모든 동물은 만지고, 쓰다듬고, 찌르는 것에 반응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든, 생명 그 자체는 신체 접촉, 즉 서로를 접촉하고 관계를 맺게 해주는 화학물질 없이는 진화할 수 없다. 신체 접촉을 주고받지 못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가 다 병이 들거나 접촉 결핍증에 걸릴 것이다. 태아에게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은 촉각으로, 신생아는 눈을 뜨거나 세상에 대해 알기도 전에 자동적으로 촉각을 통해 느낀다. 우리는 태어나면 보거나 말할 수는 없어도 본능적으로 신체 접촉을 시작한다. 입술의 촉각 수용체 덕분에 젖을 빨 수 있으며, 따뜻한 것을 향해 손을 내밀어 움켜쥘 수 있다. 신체 접촉은 나와 타자의 차이, 나의 외부에 누군가, 엄마가 있을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엄마와 아기는 신체 접촉을 굉장히 많이 한다. 엄마를 만지고 엄마의 손길을 받는, 최초로 경험하는 따스함은 헌신적인 사랑의 기억을 평생토록 남는다. p141

미각[Taste]

다른 감각들은 혼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지만, 미각은 대단히 사회적이다. 혼자 식사하는 것을 꺼리는 인간에게 음식은 대단히 사회적이 구성 요소다. 반투족은 음식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고 이들은 그때부터 '오트밀죽의 씨족'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개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므로 '빵을 함께 나누는 것'은 외부인을 가족과 연결시켜주는 상징적 행위가 된다. 세계 어디를 가나 중요한 사업은 식사를 하는 동안 이루어진다. 결혼식은 피로연으로 끝나고, 친구들은 기념 만찬 자리에서 재회한다. 아이들의 생일을 알려주는 것은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다. 종교 집회에서는 경외와 봉헌의 음식을 바친다. 길손들은 한 끼 식사를 대접받는다. 브리야 사바랭이 말한 그대로다. "사랑, 우정, 사업, 투기, 권력, 끈질긴 요구, 후원, 야심, 음모 등 모든 사회적 교류가 식탁 주위에서 이루어진다. " p221

청각[Hearing]

자궁 속에서의 휴식만큼 편안한 것은 없다. 정신 병동처럼 사방에 쿠션을 댄 방이었다. 우리는 욕망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신생아는 엄마 젖을 빨거나 그저 가만히 안겨 있는 동안 자궁의 끊이지 않는 박동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인생은 지속되고 살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는 자신이 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자신의 심장이 멈출까 봐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이의 심장이 침묵할까 봐 두려워한다. 아침에 연인과 함께 침대에 누워 찰싹 달라붙은 두 개의 숟가락처럼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졸고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심장 뛰는 소리와 체온을 온몸으로 느끼며 평화로움을 만끽한다. P311

시각[Vision]

본다는 것은 아주 단순하게 시작되었다. 고대의 바다에서, 생명체의 피부에는 빛에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 이 부위는 빛과 어둠을 구별할 수 있었고, 빛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기능은 아주 유용했고 눈이 발달하면서 물체의 움직임과 형태, 마침내는 세세한 모습과 색채까지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눈은 대양에서 생겨난 탓에 항상 소금물에 젖어 있어야 한다. 이제는 오직 그 풍부한 화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캄브리아기 삼엽충의 눈이 역사상 가장 오래된 눈이다. 지금 나는 작은 삼엽충 화석을 넣은 목걸이를 걸고 있다. 5억 년 전, 늪지에서 번성했던 삼엽충은 한 쌍의 겹눈으로 주로 측면을 보았고 불행히도 위쪽은 보지 못했다. 한편 가장 새로운 눈은 인간의 발명품으로, 전자 눈, 반사망원경, 미세 수술이나 안과 검진, 심각한 시각장애에 사용하는 다중 렌즈 등이다. 식물에는 눈이 없지만, 로렌 아이슬리는 진균류 필로볼러스에 눈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에는 포자낭을 제어하는, 빛에 민감함 부위가 있어서, 가능한 가장 밝은 곳을 향한다는 것이다. p401

공감각[Synesthesia]

시간이 흐르면서, 신생아는 모든 감각적 인상을 분류하고 길들이는 법을 배우는데 그중에는 이름이 있는 것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이름 없이 남는 것들도 많다. 언어화되지 않는 것들은 명확하게 규정하기 힘들고 기억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아기방의 아늑함과 어렴풋함은 상식의 정밀한 범위 안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감각의 혼합은 그치지 않는다. '프랜시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구운 콩의 맛을 느끼거나, 거친 표면을 만질 때 노란색을 보거나, 시간의 흐름을 냄새 맡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 감각을 자극하면 다른 감각이 자극을 받는다. 'synesthe-sia(공감각)'는 그리스어의 'syn(함께)'과 'aisthanesthai(지각하다)'를 더한 말이다. 지각의 두꺼운 천은 여러 겹의 실을 섞어서 짠 것이다. 비슷한 말로 'synthesis'(종합)'가 있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개념을 합쳐서 짠 생각의 천이고, 원래는 고대 로마인들이 입던 가벼운 무명천을 가리켰다.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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