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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미야지 나오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1월
평점 :
트라우마, 젠더, 섹슈얼리티를 테마로 연구하며, 한편으로는 성폭력 피해자의 상담자이기도 한 저자의 모습은 정신과 의사라는 완벽한 모습 이면의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교수에 의사이며, 하버드에서 유학을 하고, 박사 학위를 따고, 책도 여러 권 낸 완벽한 듯 보이는 모습 뒤에 감춰진 의사가 되어도, 의료가 진보해도, 단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중년 여성의 모습에 인간미가 있는 따뜻함을 느끼며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일상적인 시선에서 쓰인 개인적인 풍경들을 소재로 한 그녀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라던가, 서비스업에 관련된 감정노동, 스테레오그램을 예로 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 특히 오키나와 섬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자마미 섬에서 일어난 '신비한 애도'가 가슴에 와닿았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상점에서 구입한 아와모리 소주 병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깨어지게 되고 검은 호랑나비가 날아다니는 작은 사당 옆에서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위해 합장을 하였고 도쿄로 돌아와 조선에서 오키나와로 끌려온 종군 위안부에 관한 책을 읽다가 소주 병을 떨어뜨린 그 장소가 조선의 여성들을 의한 사당 뒤쪽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사연은 한국인으로서 미소 짓게 만드는 사연이었다.
전문의 역시 인간이기에 자아의 상실뿐만 아니라 자존감에 타격을 입어 상처받기 쉽다. 내담자가 비판적이며, 모든 상황에 불평을 터트리거나 능력 있는 상담자가 아니라고 말할 때 상담자는 상처를 받는다. 그런 상처받음에도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평범함에 대한 두려움을 받아들이며 전문의로서 내린 자신의 판단을 믿으며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상냥함으로 나아가고자 분투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상처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 상처의 언저리를 가만히 어루만질 것. 몸 구석구석을 보살필 것. 딱지와 흉터를 감싸고 보듬어 줄 것. 더 깊은 상처를 입지 않도록 치료하고, 호기심의 눈길로부터 가려주고 그렇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 상처와 함께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갈 것.
인간은 스스로를 완벽하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완벽하게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배워 나아갈 뿐이다. 전문의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다양한 모습에 직면하며 겸허한 태도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약함을 껴안은 채 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가 바라는 따뜻한 세상으로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