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은 언제나 서늘하다 - 시골 소년의 기묘한 에세이
강민구 지음 / 채륜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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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에서 자란 소년은 완전히 시골도 아닌, 완전히 도시도 아닌

중간지대에 있었다.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때로는

섬뜩하기도, 때로는 슬프기도, 때로는 즐겁기도 했다.



어둠이 짙어오고 집집마다 나지막한 불이 밝혀지면 시골 마을의 고요한 밤이 시작된다. 저녁을 먹고 사랑마루로 나오면 바깥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다.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밤하늘의 별들이 마당 가득 쏟아져 내리고 숲속에서 우는 가느다란 풀벌레 소리가 한층 가까이 들리는 고요한 사방. 가로등도 없고 불빛 흔치 않던 시절의 그런 밤은 온전한 어둠의 시간이었다.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워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마당에 나서기라도 할 때면 어디선가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에 겁이 나 엄마를 부르던 유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강민구 영화감독의 '깊은 강은 언제나 서늘하다'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겪었던 기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자전적 에세이다. 세 개의 장에 나뉘어 담긴 50개의 에피소드는 유년 시절 일상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지금 생각해 보면 기이하고 놀라웠던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유년의 추억을 풀어나가고 있다.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면 무서웠던 이야기는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강하게 각인되어 우리의 기억 깊은 곳에 공포라는 단어로 자리 잡고 있다. 비 오는 날 손을 흔들던 여인, 망자가 꿈에서 당신을 부른다면, 어릴 적 내가 본 인생의 파노라마, 물고기 눈을 파내던 한 소녀, 잠자리 사냥 등 무섭고 잔인했던 나의 유년의 기억들과 겹쳐지면서 어릴 적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아니. 내가 글쎄 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났는데 어머니가

너무 고우신 모습으로 나타나신 거야. 그래서 따라가서 재미있게 놀았는데...



에피소드의 이해를 돕는 삽화는 깔끔하고 과하지 않게 배치되어 있고, 강민구 영화감독 기억 속에 남겨진 이야기들은 꾸며낸 이야기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담으로 냄새, 색깔, 피부로 드러나는 감각적인 소재들은 표현하려는 대상, 그 대상과는 다른 어떤 것을 지칭하면서 시간을 되돌리기에 충분했다. 우리 일상에서 있을법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아름다운 기담은 잊혀 가는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며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톺아보게 하는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저녁, 선잠을 탓하며 서재에 선다. 나는 그동안 꾸득꾸득한 삶을 부지런히 꿰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잊고 있었던 그 옛날 상엿집이 있던 야트막한 언덕 아래 내가 살던 동네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노을빛 풍경이 스쳐간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그 시간 그 세월을 만나고 있었다. 저마다 햇빛을 받고도 다른 빛깔로 웅성거리는 그곳에서 나는 한참 동안 떠나지 못했다. 우리의 유년의 기억을 그리워한다. 사라진 것, 부재한 것을 아는 순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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