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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카타콤
이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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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이라고 들어봤어?
'무덤 사이에'라는 뜻이다. 저기 서양에서 이런 곳을 부르는 말이다.
도시 아래 지하.
밝음 저쪽에 가려진 어둠 가운데서 방황하다 역사의 표면에 떠오르지 못하고 삶답지 못한 삶을 살다가 흐리마리 사리지는 사람들. 도시 문명의 그늘 속에서 좌절과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뿌리 뽑힌 사람들이 찾는 세계를 다룬 이봄 작가의 '서울 카타콤'은 불행한 인생의 탈출구로 결혼을 선택했지만 아이의 유산, 남편의 구타를 피해 도망치다 다리까지 절게 된 주인공이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는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간다.
우리는 그냥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에 치여서 숭숭 떨어지다 가라앉은 거다.
윗물에서 조용히 사라진, 바닥에 깔린 모래랑 흙 같은 찌꺼기,
그래, 그런 거.
그곳에는 현실의 삶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어고 그들과 동화되어 하루하루 살아가게 된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보내는 주인공 앞에 아버지로부터 구타당하고 있는 선아와 승우 그리고 우연히 그 소동에 휘말리게 되는 화연을 보게 된다. 제 한 몸도 추스르지 못하던 주인공은 어느새 아이들을 돌보며 의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고 잊고 있었던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딛고 그 위에서 치열히 살아가고 있을까.
하지만 사회적 관계로부터, 혈연관계로부터 단절된 채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그들에게도 분쟁은 발생한다. 얼마 안 되는 돈을 가지고 폭력을 가하고 서로를 죽이려 달려들며 지하공간의 붕괴라는 혼란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도록 만든 '그 무엇'은 무엇일까.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문제일 것이다.
이 소설이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주인공의 의식 변화에 담겨 있다. 자신의 아이가 유산이 되었어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 주인공이 화연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선아와 승우의 목숨을 구하는 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한때 자신이 가졌던 희망을 아이들에게 맡김으로써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작가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상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되는 것 중에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며 억압받고 고통받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인물들을 대변하는 의도에서 그렇게 설정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어둠의 공간. 그 '어둠'이 현실 혹은 삶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의미의 부정적 측면들을 암시하는 것임을 생각하기에는 어렵지 않은 일이고, 그렇게 볼 때 그 속에서 삶답게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계층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는 너무도 명백하다. 이봄 작가가 보여준 <서울 카타콤>은 어둡고 희망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애착과 건강한 삶에 대한 염원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