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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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의 증명'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최진영 작가와 1920년대 근대 여성 작가인 백신애 작가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는 근래에 없던 신선한 기획으로 나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한국 문학을 중점적으로 포스팅하고 있는 블로거로서 백신애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최진영 작가의 신작 단편을 읽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된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충분히 회자되지 못한 백신애 작가의 작품을 재조명하여 100년이 지난 오늘날 가장 사랑받고 있는 최진영 작가의 눈을 통해서 작품들의 의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현대적인 시각을 더한 작품들을 통해 시대적, 문학사적 의미를 생각하며 더 나아가 대중성까지 더한 작품으로의 재탄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책에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힘든 시집살이와 남편의 사상운동, 그리고 외도까지 하게 되어 미쳐버린 여자를 그린 [광인수기], 시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이혼으로 가족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주인공이 집을 나와 우연히 만나게 된 S를 통해 자신을 일깨워 줄 신념과 사랑을 되찾는다는 [혼명에서], 10대 소년과 삼십 대 여성과의 사랑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노을], 그리고 이 소설들을 뼈대로 최진영 작가의 현대적 시각으로 그려낸 표제작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가 실려있다.

백신애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던 1930년대의 소설 문단은 박화성, 최정희, 강경애 등의 여성작가의 등장으로 여성주의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여성의 지위는 최하위로 문단에서 재능이 있더라도 무시당하기 일 수였는데 거기에 분노한 박화성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제발 여류문인은 여자다운 작품만 써라,

여자로만 쓸 수 있는 작품을 써라,

이따위 소리를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글은 쓰는데 그다지 엄격하게 성별을 해서

말할 게 무엇입니까?



당시 여성 작가들은 소외되고 억압받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소설에 녹여 표현하기 시작했다. 강경애 작가의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선비'는 어떠한가. 머슴의 딸로 태어나 최하층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생을 다 겪게 된다.

백신애 작가는 식민지 시대 여성들의 삶의 과정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고 있는 사회적 조건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삶의 방식에 얽매여 스스로 자기 역할을 조절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러므로 정치적, 경제적 기능이 남성에 비해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백신애 작가는 여성의 사회적 존재와 그 기능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남성적인 것과의 격차를 인정하면서도 여성적인 것의 가능성과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작품을 통해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백신애 작가의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문학은 하나의 사회적 도전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소설, 잇다' 참여를 결정한 건 어쩌면 최진영 작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일기를 다룬 '이제야 언니에게'의 출간 인터뷰에서 읽었던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결국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최진영 작가는 여성의 인권 상승을 위해 힘써온 백신애 작가와 가장 어울리는 작가이지 않는가. 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들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다.

최진영 작가의 표제작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우체국 근무하며 딸 석희와 살아가고 있는 이혼녀 순희,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휴학을 하고 낮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저녁엔 편의점과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정규. 둘은 여성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일상화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동시대를 살고 있다. 순희와 정규는 세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지쳐있는 서로를 보듬어주고 기댈 수 있는 존재로 나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백신애 작가의 [아름다운 노을]의 주인공 순희와 정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바뀐 것이 있다면 정규의 성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점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회피가 아닌 사랑의 온기를 담은 따뜻한 희망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나는 현대의 순희에게 사랑의 혼란과 피로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직장과 가정에서 느끼는 피로감만으로도 벅찰 것 같았다.

순희에게 사랑은 편히 쉴 수 있는 의자, 상쾌한 바람, 따뜻한 입김 같은 것이길 바랐다.


최진영 작가의 에세이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성과의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 남성우월주의를 야기할 '남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의 힘을 믿는 여자와 여자의 사랑에 다시 기대고 싶었다는 작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지쳐있는 서로에게 안식처가 될 그런 따뜻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백신애 선생이 활동하던 1930년대부터 최진영 작가의 이 번 소설까지는 약 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사회적, 시대적 변화를 겪으며 여성의 지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인내해야 하는 것에서 오는 분노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남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 소설을, 여성이라는 입장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것은 아마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성 작가들이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바뀔 사회적 인식과 기회의 균등을 외치며 노력해 주었기에 이 시대에 있어서의 근본 문제를 포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요소와 힘을 구비한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나아갈 길을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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