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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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보면,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소설이다. 작가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궁금해하면서 읽게 된다. 이 소설은, 엄밀히 말하자면 소서사를 다루고 있다. 개개인의 사소한 이야기, 역사에 남지 않는 이야기. 하지만 이 사소한, 사람들의 관심 밖에 난 이야기들은 우리의 사회상을 담고 있고, 사회에 대한 비판 내지는 냉소를 전한다. 사소한 이야기를 세밀히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커다란 세상을 본다.


  해설에서는 이렇게 풀고 있다.

"이 소설집에는 어느 하나 분명한 사실로 확신하기 어려운 일들이 가득하지만, 정확한 근거를 찾아내어 사실을 깨우치고 실상을 폭로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이 작가는 미스터리를 반드시 확인해야 할 문제로 의식하지 않는다. 풀어야 할 의문이 세상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의문의 현상을 바라볼 때 확인되지 않은 그것을 한시바삐 확인해야 한다고 여기기보다는 그것이 왜 그토록 확인이 안 되었던 것인가를 곰곰 생각해보려고 하는 쪽인 것 같다. 어쩌면 미스터리란 확인을 기다리는 사안이 아니라 그것이 미확인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봐주기를 요청하는 사안이 아닐까. 미확인된 사안이 꼭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지식과 논리가 부족해서 그리된 것은 아니다. 지식은 편협하고 논리는 옹졸하기 쉽다.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과 상상의 부족으로 거기 있었던 줄도 모르게 잊히는 일들이 더 많을 수 있다. 김희선의 소설들은 미스터리한 사태에 의문을 품고 그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기보다, 먼저 다양한 관심과 상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탐사한 끝에 마침내 어떤 의문에 도착하는 이야기다. 그러고는 '확실하진 않지만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은가'하고 되묻는 이야기다. 이제 보면 알겠지만, 세상에 미스터리는 무진하고 작가의 관심에는 경계가 없으며 그의 상상은 전공 불문이다."


"김희선의 첫 소설집에 실린 아홉 편의 허구들은 의문, 자료, 상상, 익살, 배짱 등을 자유롭게 믹스하여 서글서글하게 빚은 항아리 같다. 각 편의 개성은 항아리에서 울려 나오는 재미난 소리에 달려있을 것이다. 각 요소들을 설득력 있게 조합하는 것이 멋진 항아리를 빚는 재주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무른 흙으로 빚어진 이야기가 단단한 항아리의 울림으로 들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흙을 굽는 불이 있어야 한다. 이 항아리들을 구워낸 불은 아마도 '관심', 오직 관심이다. 지났거나 몰랐거나 잊었거나 외면했거나 잊기 싫은, 숱한 세상일에 대한 관심, 그로부터 이 항아리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숨겨졌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의 실상을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의문을 속 시원히 설명해주지도 않고 진실을 눈앞에 펼쳐놓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예 잊힌 줄도, 은폐된 줄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새삼 환기한다. 의문을 들추고 추문을 들이댄다. 우회적으로 무지를 빈정대고 무관심을 추궁한다. … 언젠가는 이런 미스터리도 그의 손에서 하나의 항아리가 될 것만 같다. 정말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이대로 잊힐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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