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 한국과 독일 일상사의 새로운 만남
이상록 외 지음 / 책과함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보통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이 아닌 그 중에 현재의 인간생활에 있어 커다란 의미를 지닌 일’이라는 정의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에는 커다란 전제가 깔려 있다. 역사를 살필 때에는 정치, 경제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사건만을 주목하여야 하며, 그 외의 역사를 바꿀만한 힘이 없는 인간들의 일상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필연적으로 정치, 경제에 있어서의 커다란 변화를 이끌었던 몇몇의 지도자 중심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일상사’는 바로 이러한 역사인식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로 평가 될 수 있다. 정치사, 사회사 중심의 역사를 탈피해 정치, 사회와는 별로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여러 모습들이 ‘일상사’의 연구주제이다. 이러한 ‘일상사’의 역사인식은 그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무가치하게 평가되었던 많은 인간들이 주목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몇몇 사람이 중심이 되는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특히 한국 근현대사의 적용에 있어 주목할 만한 효과를 가진다. ‘민족구성원’모두가 일본의 지배 하에서 신음하고 살았다는 민족중심의 역사를 벗어던지고 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빼앗긴 설움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았던 수많은 피지배층의 일상이 드러난다. 모든 국가구성원이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하거나, 아니면 독재정권의 몰락을 위해 싸웠던 민주화세력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이해되었던 권위주의 정권시기도 일상사의 시각에서는 다르게 해석된다. 하지만 일상사는 이러한 새롭고 획기적인 면과 함께 상당히 위험한 역사인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취지는 역사학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조적이지 못하고 체계가 없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일상사’는 일제시대를 겪었던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치의 지배를 겪었던 독일에서 먼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 책도 독일의 일상사 연구 성과와 한국의 일상사 연구 성과를 교류하자는 차원에서 추진된 학술회의 결과물이다. 식민지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점은 양국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허영란은 친일과 저항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근대’를 열망했던 식민지 조선의 사람들 일상을 살펴보고, 식민지는 일본이 패망하명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이 식민화 되었고 그 영향은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보다 훨씬 더 오래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私刑을 주제로 한 장용경의 글에서도 일상생활에 스며든 식민주의를 고찰한다. 私刑이 갈수록 줄어들고 그에 대한 논란도 줄어든 것은 근대성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유재산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대한 논란이 줄어드는 것은 일본인의 사유재산에 대해서 식민지 조선이 그만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상사연구가 그동안의 역사인식을 바꿀 획기적인 기획이 될지, 아니면 역사인식에 있어서의 작은 일탈에 해당할지는 아직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 책이 일상사에 대한 해답을 전해주지는 못하지만, 한번쯤 일상을 통해 역사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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