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회학의 쟁점들
김환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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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기술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국가의 성장 동력이 되는 동시에 인류문명 진보의 척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국가는 곧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한국에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공계 학생 육성을 위해 각종 장학금과 특혜가 신설되고, 기업에서도 우수한 이공계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힘을 기울인다. 바야흐로 과학기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기술 지배현상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핵물리학의 급속한 발전은 결국 핵무기라는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외에도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수많은 질병과 환경오염을 낳았다.

그렇다면 이제 성장과 진보의 도구라는 과학기술의 환상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정립해야 하지는 않을까. 이 책도 바로 그러한 목적에서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과학기술사회학(STS)이라는 학문영역이다. STS의 인식은 과학이 보편적이고 탈 맥락적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거부한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사회적 과정의 결과물, 즉 인간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또한 과학기술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있는 그대로의 과학'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들의 작업은 '사회적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라고 불리우며 과학기술이라는 '암흑상자'를 열기위해 노력한다. 저자는 STS의 이론적 흐름을 살펴보는 1장에서 STS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머튼의 기능주의 사회학, 과학지식사회학(SSK), 기술 사회학, 행위자-연결망 이론(ANT)등을 살펴본다. 여기에 더해 STS에 많은 기여를 한 부르디외의 이론을 설명하고, ANT이론을 중심으로 구성주의 과학사회학의 변천을 되 집는다. 이론적 논의가 중심이 되는 장이라 이해하기에 약간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바탕이 되는 이론들이기에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론들은 과학기술의 '암흑상자'를 해체하며 과학기술과 상관없다고 생각되어오던 민주주의의 문제와 윤리의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 저자는 과학기술이 가져온 여러 폐해를 지적하며 과학기술이 가져온 이런 결과를 결코 사회의 다수 구성원인 시민은 인정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시민은 단지 과학기술의 수동적 수용자가 되었을 뿐인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분명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일이며, 이러한 과학기술의 독점은 이윤의 발생이라는 논리와 군사력이라는 권력과 만났을 때 더욱 심해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구성주의에 입각한 과학기술적 전문성과 시민적 전문성의 결합을 주장하고 이러한 결합이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는 사례로 합의회의, 과학상점, 참여설계 등을 설명한다. 이러한 과학의 민주주의를 위해 과학의 윤리화라는 문제도 거론된다. 과학의 영역이 과거와 다르게 생명의 근본적인 문제,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기에 과학에 있어서의 윤리 문제는 과학의 민주화를 위해 필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적 과학기술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과학기술의 정책 결정과 폭넓은 사회적 구성에 반영되도록 노력할 때 과학 기술은 보다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제 과학기술이 현대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정보화분야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정보사회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은 기술이 사회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술 결정론적 사고였다고 비판하고 사회적 맥락에 따른 기술의 변화를 고찰하는 사회적 구성론의 입장에서 정보사회를 분석한다. 이에 따르면 기술이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집단의 참여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유동적인 결론이 나온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정보사회에서 삶의 질 향상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분권화, 연계성, 부응성,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공분야와 민간분야에서의 현황을 살펴본 후, 한국 사회가 정보사회가 요청하는 사회, 제도적 개혁을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정보사회의 기술적 측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 비해,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불충분하다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특히 한국사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부족한 근원적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뿌리 깊은 '두 문화'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생명윤리 기본법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두 문화'문제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라는 두 문화에 있어서 자기 문화 중심주의에 빠져 있으며, 두 문화 사이의 의사소통이 부재하고, 공통적으로 일반 대중의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두 문화' 문제는 여기에 더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분리로 더욱 심한 의사소통의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 인문과학의 벽을 허물기 위한 해결책으로 STS를 고급,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기 위한 해결책으로는 문화연구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더욱더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창출되는 다문화주의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반을 다진다면 과학기술에 대한 탈신성화와 사회적 성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학은 보편, 타당한 진리라는 근대 계몽주의의 기획, 과학기술로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산업화 시기 성장위주의 국가주의 논리, 신자유주의 시대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자본의 논리가 합쳐져 과학기술은 도저히 비판 불가능한 성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살펴본 것처럼 과학은 그 탄생부터 사회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었고, 사용에 있어서도 사회와 분리해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에 대한 사회적 고찰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문다는 의도를 가진 책들이 간간히 출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두 문화'의 융합은 과학에 관심 있는 인문학자, 인문학에 관심 있는 과학자의 대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학사회학의 여러 쟁점들을 살핀 이 책은 과학이라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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