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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1. <1Q84>를 만나다
책의 마지막 장,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동안에’를 남겨두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야 했다. 퇴근 무렵의 지하철은 붐볐다. 남은 몇 장과 이미 읽어버린 수백 장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은 채 사람들을 비집고 내렸다. 터져버린 방죽에서 물이 새어 나오듯 이리저리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집으로 가서 나머지 부분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동안 참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였다. 승강장 의자에 앉아 들고 나는 지하철의 울음을 들으며 책을 펼쳐든 건.
<1Q84>의 소문을 들은 것은 친구를 통해서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빠져 있는 그 친구는 언젠가의 전화 통화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하루키가 신작을 낸대.”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고 보니 5년 만의 장편 소설이라는 생각을, 책장에 꽂혀 있는 <해변의 카프카>를 보면서 했다. 더불어, 한때는 하루키의 책들을 보며 밤을 새던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도.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서른한 살의 나는 더 이상 하루키의 팬도, 그의 작품이라면 꼬박꼬박 챙겨 읽는 열성독자도 아니었다. 하루키뿐만이 아니었다. 이십 대에 열광했던 모든 것들, 이를 테면 가슴을 저미는 시(詩)나 재즈 음악, 그리고 사랑에게서 나는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대신에 사회라는 ‘시스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그 어렵다는 정규직으로 이 년을 버텼다. 나는 살아남았다. 전세대출금 이자와 매달 나오는 카드 요금을 훈장처럼 달고. 나는, 아저씨가 되었다. 주식과 펀드, 그리고 금싸라기 땅과 정치 얘기로 수다를 떠는.
그랬기에 그 책, <1Q84>의 소문을 듣고도 예전처럼 피가 끓어오르지 않았다. 새로 나왔다는 재테크 서적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고,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국내 판권이 팔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의 제목이 ‘아이큐 84’가 아니라 조지 오웰의 ‘1984’를 변형해 <1Q84>로 만들었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선, ‘하루키 그 양반 독특한 건 여전하네.’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그 사이, 그러니까 한국에서 <1Q84>가 출간되고 곧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동안 아들이 태어났다. 첫 아기였다. 인형처럼 생긴 아들 녀석은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나, 나는 그 조그만 생명의 뺨을 어루만지는 순간에도 다음 달 나올 카드 요금을 걱정해야 했다. 현실이라는 벽은, 우는 아기를 달래려 일어났을 때 마주친 한밤의 어둠처럼 깊고 견고했다.
무작정 서점으로 향했던 그날은 이틀간의 야근이 끝난 금요일 밤이었다. 회사에서는 야근에 시달렸고, 집에서는 밤낮이 바뀐 아기와 씨름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였다.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불편을 호소할 방법이 없어 끙끙거리다가 끝내 울어버리는 아기처럼,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가 발길이 닿은 곳이 서점이었다. 한가득 쌓인 책들을 오랜만에 보니 서서히 기분이 좋아졌다. 새 책이 풍기는 비릿한 잉크 냄새가 상쾌하기까지 했다. 나는 천천히 서점 안을 둘러봤다. 그때 낯익은 제목의 책이 내 눈길을 끌었다.
<1Q84>.
잊고 있었던, 아니 기억할 여유가 없었던 바로 그 책. 나는 중앙 가판대에 놓인 <1Q84>를 향해 홀린 듯 다가갔다. 두툼한 두 권짜리 책이란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두 권을 손에 들고 가만히 무게를 재봤다. 가격도 확인했다. 그러고도 한동안 책을 뒤적이며 서 있었다. 과연 다 읽을 시간이 될까? 옛날 같은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책 두 권이면 일주일 점심값인데…….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나는 책을 샀다. 책 하나를 두고 갈등하는 내 궁상맞은 처지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위로받고 싶었기에 책을 샀다. 그 옛날, 훅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얇고 가벼운 청춘과 사랑 앞에 힘들어 할 때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며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의 새로운 소설은 과연 아저씨가 된 나에게도 위로가 될까? 일말의 불안을 안고서.
2. <1Q84>를 읽다
아오마메와 덴고. 살 가치가 없는 남자를 죽이는 킬러와 수학선생이자 소설가 지망생. <1Q84>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그 이야기 속에서 ‘공기 번데기’라는 의문의 작품과 그 작품을 쓴 후카에리가 등장한다. 아오마메를 사주하는 노부인, 죽어 마땅한 남자들, 사이비 종교, 그리고 리틀 피플까지, 이야기는 쉴 새 없이 흘러가고 달이 하나인 1984년과 달이 두 개인 1Q84년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아오마메와 덴고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언제나 ‘환상성’이 함께 했다. 일종의 판타지적인 요소는 <상실의 시대>부터 이어온 하루키 문학만의 특색이다. 양사나이가 등장하고, TV 피플이 등장하고, 급기야 <해변의 카프카>에 이르러서는 UFO와 괴인(怪人)까지 나온다. 그러한 환상성, 판타지적 요소가 <1Q84>에서는 한층 강화됐다. 초능력을 행사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뿐만 아니라 리틀 피플이라는 이상한 존재까지. 게다가 이번에는 아예 ‘세계’가 바뀌게 된다. 장르문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하루키는 왜 이렇게 ‘환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하루키의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 속에 들어있다. 하루키는 늘 ‘개인’을 이야기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한 개인이 개별성을 얻고 존엄성을 획득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 그것이 바로 하루키 문학, 하루키 소설의 근간이다. ‘사회’ 대신에 ‘전공투’라는 미시적인 이름을 붙여도 되고, ‘현실’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다. 하루키는 시스템이 가진 불합리함과 부도덕함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환상을 활용한다. 그는 ‘예루살렘 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더 교묘한 거짓말을 함으로써-그러니까 사실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꾸며냄으로써-소설가들은 진실을 새로운 위치로 꺼내고 그것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진실이라는 것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묘사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불가능하죠. 그래서 우리는 진실이 숨어있는 장소에서 나오도록 유혹하거나, 이야기의 차원으로 진실의 위치를 변이하거나, 혹은 이야기의 형태로 대체함으로써 진실의 실마리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1Q84>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종교, 초능력, 두 개의 달, 리틀 피플, 또 다른 세상 등의 환상적인 요소는 아오마메와 덴고를 얽어매고 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의 진실’을 조명하는데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또한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그러한 요소들은 아오마메와 덴고의 외로움을 표현하는데도 효과적이다.
덴고의 인생은 일견 부러울 게 없는 듯 보인다. 안정적인 수입에다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까지, 그리고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연상의 연인도. 덴고는 딱히 어려운 일 없이 매일을 살아간다. 아오마메도 비슷하다. 위험한 일에 몸담고 있지만,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생각에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 수입도 좋다. 직업을 가지고 즐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외로운 존재들이다. 그들이 외로운 이유는 ‘결핍’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오마메는 덴고에게 덴고는 아오마메에게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외롭다. 이십 년 전, 단 한 번 손을 잡은 이후로 사랑에 빠져버린 두 사람. 그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얼마나 환상적인가!
사랑은 하루키가 제시하는 유일한 해답이다. 그는 이 거대한 시스템의 벽 앞에서 개인이 살아남고 존엄성을 획득하고 개별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라고 말한다. 거창한 사랑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 살과 살을 부비고,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목말라하는 사랑. 하루키는 아오마메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1권, 408쪽.)
아오마메는 덴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덴고는 소설의 마지막에 마음먹는다. 아오마메를 찾기로.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반드시 찾기로. 모호한 상황과 환상이 겹치는 <1Q84>에서 유일하게 뚜렷한 이야기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사랑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 <1Q84>는 ‘당신이 없었다면 어찌 살았을까’ 싶은 두 남녀의 거대하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다. 세계가 바뀔 정도의 사랑 이야기.
3. <1Q84>를 기억하다
책장을 덮고, 나는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덴고의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지하철이 들어오며 승강장 안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상하게도 아내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스물두 살 때 우리는 만났다. 동갑내기였다. 아내는 바이올린을 켜는 여자였고, 나는 대학도 나오지 않은 군인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난했다.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연애는 사치였고, 사랑은 신기루였다. 나는 그때 가난이라는 질기고도 엄혹한 시스템에 갇혀 있었다. 내가 속한 세계는 어둡고 습했다.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가난은.
그래서 나는 그녀를 피했다. 사랑이 두려웠고, 두려운 그 사랑이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이 또한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기꺼이 내 손을 잡고, 내가 속한 ‘가난’이라는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나는 안다. 내 앞에서 웃기 위해 수백 번 울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7년이 흘렀고, 우리는, 그녀와 나는 믿을 수 없게도 결혼을 했다. 그녀는 ‘아내’가 되었다. 나는 결혼 후에도 몇 번이나 혼자 잠들지 못한 밤에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아내”라고 중얼거려봤다. 그러면 내가 속한 세상이 출렁이는 걸 느꼈다. 여전히 가난에 속해 있지만 그 벽은 점점 옅어졌다. 내가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부자가 아니라 마음의 부자. 나는 넘칠 만큼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
그랬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사회생활에 찌들어가면서 나는 점점 사랑을 잃어갔다. 아내라는 단어에 더 이상 감동하지 않았다. 가난의 시스템을 벗어나면서, 현실과 사회, 직장과 생활이라는 먹먹한 시스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동안 아내는 힘들어했다. 아들을 낳고부터는 밤잠을 설치며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삶에 지쳐갔다. 언젠가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애기를 낳고부터 이상한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아.”
나는 승강장 계단을 올랐다. 눈앞이 흐려졌다. 아오마메가 그랬던 것처럼, 덴고가 그랬던 것처럼 몸보다도 마음이 먼저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우리가 사랑한 구 년이라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시간. 혹독한 현실과 냉혹한 가난도 갈라놓지 못했던, 우리, 사랑. 나는 마음먹었다. 옛날처럼, 아니 옛날보다 더 아내를 사랑하기로. 그 옛날 내가 속한 가난의 세계에 아내가 기꺼이 뛰어든 것처럼 지금, 나도 뛰어들겠다고. 그녀의 이상한 세계로.
당신이 없었다면, 어찌 살았을까…….
가방 속에서 다 읽은 <1Q84>가 달그락달그락 달음질쳤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지하철역 밖으로 성큼 뛰쳐나갔다. 아내가 사는 세상이 거기 있었고, 다행이 달은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