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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때문이야
서영 지음 / 다그림책(키다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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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때문이야>는 결국 '나다움'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이의 눈에 보이는 내가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내가 정말로 소중하다는 걸 이 그림책은 아주 잘 보여주고 있어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야 말로 정말로 중요하다 싶어요.


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작품 속 '멋진 씨'치럼 작은 흠을 발견하고도 흠칫 놀라 자신을 숨기려는 쪽에 가까웠죠. 하지만 <주름 때문이야>를 읽으면서 그 생각을 조금은 버리게 되었어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어야 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그런 깨달음을 얻었죠.


이 그림책은 참 따뜻하고 다정합니다. 그림 역시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작가가 슬쩍 넣어 놓은 깨알 같은 디테일과 재미 포인트를 찾아낸다면 읽는 재미가 두 배로 늘어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작품 <주름 때문이야>를 정말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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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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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있다, 정말로!
 때는 바야흐로 일천구백구십이 년 하고도 어느 여름 날, 초등학교 6학년의 여름 방학이 막 끝날 무렵이었다. 그때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잔치를 벌였다. 개도 잡고 돼지도 잡고, 술도 몇 십 박스나 비우고, 마을 회관에서 거하게 노래판도 벌이는 그야말로 흥겨운 축제였다.
축제 전야로 기억한다. 나와 내 친구 놈은 며칠 남지 않은 방학을 아쉬워하며 한나절 진탕 멱을 감은 후 어둑해서야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흉가’로 향했다. 흉가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불리는 이름이었고, 사실은 주인이 도시로 떠나버려 집만 덩그러니 남은 폐가였다. 창호지 문에 숭숭 구멍이 뚫려 있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한 그 집은 초등학생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들은 그 앞을 지날 때면 호기심에 사로잡혀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발걸음은 빨라지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매번 겪어야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때까지 수다를 떨던 입도 꾹 다문 채 그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내 친구가 말했다.
“야. 저, 저거 시체 아냐?”
친구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과연 시체라 부를만한 것이 마당 한 구석에 떡하니 누워 있었다. 밤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시체 주위로 핏물이 고여 있는 듯도 했다.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린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머릿속에는 도망가야 된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우리 둘은 한 쌍의 변태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 ‘시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그건 바로 다음 순간 일어난 일이 던져 준 공포에 비하면 개미 발톱 수준이었다.

다음 순간, 그러니까 공포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발가락을 꼼지락거린 순간, 시체가 꿈틀 거렸다. 그러더니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날, 축제 전야라 마을 전체가 이상한 흥분에 휩싸여 흥청망청 했던 그 밤에 우리 마을에는 두 소년의 길고 처절한 비명이 스테레오로 울려 퍼졌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흥미로운 제목과 파격적인 설정과 달리 소위 말하는 본격물이다.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정의하는 본격물이란 공정한 트릭과 그 트릭을 파헤치는 추리의 과정이 들어있는 소설인데, 시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산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연쇄살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게다가 일본 작가가 미국을 배경으로 썼다니.

소설은 공포 소설의 분위기를 풍기는 프롤로그부터 무척 인상적이다. 아내의 도끼 만행에 이미 죽은 남자가 벌떡 일어나 도망을 간다니……. 그런데 이 프롤로그 부분을 주위 깊게 읽으면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으리라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네빌 경감은 사뭇 진지하게 행동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시체가 일어나는 상황도 왠지 모르게 코믹하다. 그리고 도망치는 시체를 보고 던지는 이웃 노파의 한 마디, “부부 싸움도 적당히 해야제. 당신 남편 괜찮은 거여? 꼬락서니가 영락없는 시체처럼 허연 얼굴로 도망치던디”에 까지 이르면 이 소설의 정체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렇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심각하거나 골치 아픈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라 느껴질 정도로 시니컬한 농담이 난무하는 매우 유쾌한 소설이다. 작품 중반부터 등장하는 트레이시 경감이 펼치는 몸개그는 그야말로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살아난 시체들의 반응도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시체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잘도 살아나고, 또 시체 주제에 그럴싸한 농담도 곧잘 한다. 진지한 건, 아마도 이 책의 끝에는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어마어마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두 눈 부릅뜨고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들밖에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 예상 밖의 웃음 코드는 소설 전체에서 아주 효과적인 작용을 한다. 소설은 육백 쪽이 훌쩍 넘는 분량 내내 생과 사, 그리고 장례문화 등에 대해서 집요할 정도로 자세히 묘사하고 설명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러한 부분은 사실 이 글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건의 내막을 더욱 비극적이고 상징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된다. 물론 독자들이 꼼꼼하게 읽어나갔을 때의 이야긴데, 작가는 웃음과 농담을 통해서 장황한 설명을 쉽게 읽을 수 있게끔 만든다. 즉, 블랙 코미디의 감성이 짙은 농담과 코믹한 설정은 이 작품을 독자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완충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농담과 해학은 시체가 일어난다는 있을 법하지 않은 설정을 ‘용인’할 수 있게 만든다.

작품의 대단원은 그야말로 본격물 그대로다. 모든 등장인물이 한 자리에 모이고 주인공, 여기서는 시체이지만, 그린이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트릭 또한 기발하고 재미있다. 작가는 기괴한 설정을 해 놓고, 그 설정을 십분 활용하여 독자를 감탄하게 만드는 트릭을 생각해 냈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흥미진진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책에서 손을 떼기가 힘들었다. 트레이시 경감 캐릭터는 무척 사랑스러워서 다른 작품에서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작가가 집요하게 쌓아올린 생과 사의 진정한 의미가 작품의 마지막을 더욱 묵직하게 만든다. 제목마저 기괴했던 이 작품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본격물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도, 재미를 획득했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그 속에 성찰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성공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날 우리가 봤던 건 시체가 아니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시체라기보다는 시체가 되기 일보직전의 상태였고, 그 대상 또한 인간이 아니라 돼지였다. 다음 날 쓰려고 망치로 머리를 부순 돼지를 그 폐가 앞마당에 묶어 놓았던 것이다. 그걸 알 리 없는 우리들은 사경을 헤매는 돼지가 ‘시체’일 거라 짐작을 해 버린 것이다.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오래전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날 우리가 어둠과 공포가 절묘하게 맞물린 가운데 돼지를 시체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처럼, 이 책도 세밀한 상황 묘사와 치밀한 설정이 더해져 시체가 살아나는 이상한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죽어버린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세상, 그리하여 더 이상 살인이 의미 없어진 세상, 죽은 사람이 누가 범인인지 직접 지목할 수 있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연쇄살인과 그 기상천외한 해결법이 궁금하신 분은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집어 들기 바란다.
즐거운 ‘오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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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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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단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면, 마음에 품었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질 겁니다. 분명 ‘저 놈이 또 무슨 수작이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속는 셈 치고 딱 오 분 만 들어보세요. 솔직히 우리 사이에 신뢰가 너무 없다는 생각, 하지 않으십니까? 네. 네. 이해합니다. 물론, 제가 신뢰를 쌓을 만 한 사람은 아니었지요. 그건 인정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이렇게 앙금이 남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이 이야기만은 꼭 들으셔야 합니다. 듣고서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지요. 설마,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 말이야 하겠습니까. 
   

  오케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뭐 물이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네? 빨리 시작하라고요? 아이쿠. 알겠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된 사연인가 하니, 참!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잠시 제 독서 편력에 대해 설명해야겠군요. 책 따위는 안 읽을 놈이 웬 독서 편력, 이라고 생각하셨죠? 사실 저도 불과 삼 개월 전까지는 책과 담을 쌓은 놈이었습니다. 책을 읽기 보다는 텔레비전 야구 중계나 아내의 어깨 너머로 보는 드라마를 더 즐겼죠. 가끔 읽는 책이라고 해 봐야 밤에 잠이 안 올 때 펼쳐드는 개역 개정판 성경이 전부였습니다. 혹시 불면증 있지 않으십니까? 그럴 땐 성경이 최곱니다. 저는 뭐 “주께서 가라사대 궁창이 있으라.” 부분만 읽어도 바로 잠이 쏟아지거든요. 네? 기독교시라고요? 그것도 독실한? 하하. 그럼 할 수 없지요.
  아무튼 책 하고는 담, 아니 아예 댐을 쌓아버린 제가 변하게 된 건 이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긋지긋한 전세난에 허덕이다가 도심 외곽으로 밀려난 게 바로 삼 개월 전이지요. 덕분에 원래 집보다 사십 분 이상 차이가 나게 되었죠. 다행이 지하철이 있어서 출근에는 큰 불편이 없었습니다만, 문제는 긴 시간 지하철을 타는 동안 아무 것도 할 게 없더라는 겁니다. 처음에는 휴대전화 오락으로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더군요. 삼십 분 이상 하면 눈이 뻑뻑한 게 영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남들 다 하는 것처럼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죠. 가는귀가 먹더군요. 부르는 소리를 몇 번 못 알아들었던 건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이어폰 다음에는 무료 신문이었습니다. 신문사 별로 다 모아놓고 읽었는데, 이 기사가 저 기사 같고, 저 기사가 또 요 기사 같아서 곧 신물이 났습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이 ‘책이라도 한 번 읽어볼까’였습니다. 저와 달리 아내는 독서광입니다. 남들 다 산다는 옷은 제쳐두고 책만 줄기차게 주문하더군요. 전 그 책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 일단 관심을 가지고 보니 정말 많더군요. 책장에도 모자라 집 안 구석구석에 책을 쌓아놓았더라고요. 한 마디 해 주려다가 참았죠. 남편이 속 좁게 그럴 순 없지 않습니까? 아무튼 그 많은 책 중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걸 짚었습니다. 제목이 무려 ‘야동 수집가’더군요. 오호라. 마누라가 이런 것도 보네. 뭐, 이런 심정으로다가요.
  저는 지하철에서 책을 펼쳤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야동이라 적힌 제목을 떡하니 보여줄 순 없어서 왼손으로 슬쩍 가리면서 읽었죠. 시작부터 아주 삼삼하더군요. 꽤 하드 고어 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 나왔습니다. 생각만 해도 볼이 발개지는 그런 장면 있잖습니까, 응응하고 옹옹해서 아잉으로 끝나는 그런 장면들. 하나도 나오지 않더군요. 나오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애를 죽이는 범죄자가 등장하고, 그걸 잡으러 다니는 사람이 나오고, 아무튼 복잡하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표지를 확인해 봤더니, 에라이 젠장, ‘야동 수집가’가 아니라 ‘아동 수집가’였습디다. 대 실망을 하면서 책을 덮으려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그 나쁜 놈은 어떻게 됐단 말이야? 뭐, 이런 심정이었죠.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씨, 참 재미있더군요. 세상에 책이 재미있었다 말입니다. 저로선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습니다. 그 후였습니다. 아내의 책을 하나 둘, 슬금슬금 읽기 시작한 건.

  혹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바둑 입문서 같은 걸 들고 계신 걸 몇 번 보긴 했는데, 아마 좋아하시리라 믿습니다. 딱히 좋아하시진 않더라도 댁에 세계문학전집 한 질 쯤은 있겠지요. 십 몇 년 전엔 그런 걸 외판원이 팔고 다녔죠. 네, 저도 그 세대긴 합니다. 참!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아. 책 읽는 걸 좋아하냐고 물었죠? 전 삼 개 월 전과 달리 지금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네!”라고 대답할 겁니다.
  야동, 아니 아동 수집가를 시작으로 저는 책, 그 중에서도 미스터리 스릴러에 빠져버렸습니다. 한 번 손에 쥐면 눈을 떼지 못하겠더라고요. 모든 책들이 말이지요. 처음에는 영미권 작품들을 섭렵했고, 뒤늦게, 그러니까 두 달 전부터 일본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아내의 권유였죠. 아내는 훌륭한 독서 지도사였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죠.
  “여보. 그 책은 몇 명 안 죽어.”
  “그건 고작 내장으로 줄넘기 하는 정도란 말이야.”
  “요걸 읽으면 내가 인간이란 사실이 싫어지지. 후후후.”
  일본 미스터리도 참 재미있더군요. 특히 무심한 듯 덤덤한 문체로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살살 긁는 게 딱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급기야 각종 카페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카페가 뭔지는 아시죠? 차 마시는 곳 말고, 거긴 다방이죠, 아무튼 카페란 건……, 네? 아신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 카페에서도 열심히 활동을 했는데, 한 달 전쯤이었나요, 엄청난 책이 나온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둘이 보다 한 명이 죽어도 모를 정도라는 거지요. 어떻습니까? 이쯤 되면 구미가 당기지 않았겠습니까? 좋아하시는 낚시에 비유를 해 보자면, 엄청난 낚시터가 있는데 입질이 너무 많이 와서 둘이 낚시하다 한 명이 빠져죽어도 모른다, 뭐 이정도겠지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가 들려드리고 싶었던 이야기인데요, 그 책, 그러니까 엄청나다고 소문난 그 책의 이름은 <고백>이었습니다. 제목이 참 간단하다고 생각하셨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2009년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비해서 무척 단순한 제목이었습니다. 우리 끼리 하는 이야긴데, 자고로 제목이야 말로 강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용의자 X의 고백’이나 ‘제물의 고백’ 혹은 ‘도착의 고백’ 정도는 돼야지요.
  아무튼 제목 때문에 조금 깔보며 펼쳐든 이 책은, 그러나 정말로 엄청난 놈이었습니다. 거의 최홍만 급이었지요. 뭐, 그만큼 대단하단 이야기입니다. 제목 그대로 누군가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각 장별로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라는 이름이 붙은 일종의 연작장편소설입니다.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가 썼다더군요. 각 장이 모두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그러니까 ‘고백’입니다. 저희들 쪽에선, 그러니까 이런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은 ‘스포질’이라고 책 내용을 말하는 걸 꽤 조심하는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조금 말씀드리지요.
  유코라는 이름의 선생이, 일본 야동에 많이 나오는 이름이지요. 허허. 아무튼 그 선생이 중학교 종업식에서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자기 딸을 죽인 범인이 여기에 있다는 거지요. 선생은 무심하게 우유 이야기로 시작해서 누가 범인인지 서서히 까발리기 시작합니다. 어떻습니까? 요 정도만 들어도 ‘긴장잔뜩 궁금팽배’지 않습니까? 선생은 과연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선생의 딸은 어떻게 죽게 된 걸까요. 책장을 넘길수록 끔찍한 진실이 드러나고 충격적인 반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가 와락, 이런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달려들게 됩니다.
  이 책은 제 모자란 머리로도 무척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기특해 하실 건 없습니다. 그래봐야 늘 말씀하시듯 아메바 수준인데요. 제가 생각이 많았던 건, 기기 막히게 잘 넘어가는 부드러운 문체와 흥미진진한 내용 속에 작가가 묵직한 주제를 담아놓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꽤 능숙하게요. 그러니 저 같은 놈도 ‘생각’이란 걸 했지요. 먼저, 과연 소년범의 처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 따위의 고민을 좀 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청소년 범죄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과연 고놈들을 어떻게 처벌하면, 피해자들의 울분도 풀고 그 새파란 것들도 개과천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말입니다, 동네에서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주위 어른들이 다 야단을 치셨습니다. 혼꾸멍이 나는 거죠. 그래도 그분들을 원망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 야단 속에 애정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그 어린 나이에도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즘 아이들에겐 ‘야단’이 부족한 게 아닌 가 싶습니다. 매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야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말입니다. 만약 주위의 누구라도 그런 야단을 쳤다면 <고백>에 등장하는 두 꼬마 범죄자가 사건을 일으키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을 했던 거죠. 어울리지 않게 너무 진지했나요? 저도 이런 진득한 면이 있는 남자입니다. 후후. 네? 이야기나 빨리 마치라고요? 손목시계를 확인하시는 걸 보니 바쁘신가 보군요. 
   

  그럼, 또 생각해 본 건 사람들 마음속에 숨은 ‘악의’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겁니다. 각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펼쳐놓는 고백 속에는 여러 가지 악의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참 무섭습니다. 그렇다고 오줌을 찔끔 거릴 정도는 아니었고요. 각자의 작은 악의들이 모여서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거죠. 인간 내면의 어두운 부분, 그걸 감싸고 있는 보호막이 너무 얇아서 조금만 충격을 줘도 빠져 나오고 마는 그 악의를 <고백>은 무척 섬뜩하게 보여줍니다.

  제법 어려운 이야기를 잘난 척하면서 들려드렸습니다만, 다른 걸 다 떠나서 <고백>은 기똥차게 재미있습니다. 내용도 짧아요. 책장도 금방 넘어가죠. 그래서였습니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2장까지 읽고, 출근하는 길에 거의 다 읽게 된 건요. 그런데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 오는데 딱 한 장, 그러니까 맨 마지막 6장이 남은 겁니다. 아무리 빨리 읽어도 무리겠더라고요. 저는 잠시 갈등을 했습니다. 네? 그 순간에 갈등을 해 하느냐고요? 애서가들은 말입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책이 제일 중요한 법입니다. 때로는 출근보다 말입니다.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6장을 남겨놓고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똥을 누고 밑을 안 닦은 느낌이라면, 혹시 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승강장 의자에 앉아 나머지 부분을 읽어버렸습니다. 아!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의 그 포만감이라니! 곧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지각을 한 겁니다. 늦게 출근하다 부장님 눈에 딱 걸린 건 그것대로 재수 없는 일이긴 했습니다만, 제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주십사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장님께선 오랜만에 낚싯대에 어마어마한 입질이 왔는데 그걸 팽개치고 출근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뭐라고요? 당장 나가라고요? 그리고 시말서를 쓰라고요? 네? 일단 그 전에 책부터 빌려달라고요? 후후. 부장님. 맨 입으로는 안 되죠. 잠깐. 재떨이는 던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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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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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Q84>를 만나다

책의 마지막 장,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동안에’를 남겨두고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야 했다. 퇴근 무렵의 지하철은 붐볐다. 남은 몇 장과 이미 읽어버린 수백 장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은 채 사람들을 비집고 내렸다. 터져버린 방죽에서 물이 새어 나오듯 이리저리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집으로 가서 나머지 부분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동안 참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였다. 승강장 의자에 앉아 들고 나는 지하철의 울음을 들으며 책을 펼쳐든 건.

<1Q84>의 소문을 들은 것은 친구를 통해서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빠져 있는 그 친구는 언젠가의 전화 통화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하루키가 신작을 낸대.”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고 보니 5년 만의 장편 소설이라는 생각을, 책장에 꽂혀 있는 <해변의 카프카>를 보면서 했다. 더불어, 한때는 하루키의 책들을 보며 밤을 새던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도.

결혼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서른한 살의 나는 더 이상 하루키의 팬도, 그의 작품이라면 꼬박꼬박 챙겨 읽는 열성독자도 아니었다. 하루키뿐만이 아니었다. 이십 대에 열광했던 모든 것들, 이를 테면 가슴을 저미는 시(詩)나 재즈 음악, 그리고 사랑에게서 나는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대신에 사회라는 ‘시스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직장에 다니게 되었고, 그 어렵다는 정규직으로 이 년을 버텼다. 나는 살아남았다. 전세대출금 이자와 매달 나오는 카드 요금을 훈장처럼 달고. 나는, 아저씨가 되었다. 주식과 펀드, 그리고 금싸라기 땅과 정치 얘기로 수다를 떠는.

그랬기에 그 책, <1Q84>의 소문을 듣고도 예전처럼 피가 끓어오르지 않았다. 새로 나왔다는 재테크 서적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고,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국내 판권이 팔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때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의 제목이 ‘아이큐 84’가 아니라 조지 오웰의 ‘1984’를 변형해 <1Q84>로 만들었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선, ‘하루키 그 양반 독특한 건 여전하네.’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그 사이, 그러니까 한국에서 <1Q84>가 출간되고 곧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동안 아들이 태어났다. 첫 아기였다. 인형처럼 생긴 아들 녀석은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나, 나는 그 조그만 생명의 뺨을 어루만지는 순간에도 다음 달 나올 카드 요금을 걱정해야 했다. 현실이라는 벽은, 우는 아기를 달래려 일어났을 때 마주친 한밤의 어둠처럼 깊고 견고했다.

무작정 서점으로 향했던 그날은 이틀간의 야근이 끝난 금요일 밤이었다. 회사에서는 야근에 시달렸고, 집에서는 밤낮이 바뀐 아기와 씨름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였다.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불편을 호소할 방법이 없어 끙끙거리다가 끝내 울어버리는 아기처럼,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가 발길이 닿은 곳이 서점이었다. 한가득 쌓인 책들을 오랜만에 보니 서서히 기분이 좋아졌다. 새 책이 풍기는 비릿한 잉크 냄새가 상쾌하기까지 했다. 나는 천천히 서점 안을 둘러봤다. 그때 낯익은 제목의 책이 내 눈길을 끌었다.

<1Q84>.

잊고 있었던, 아니 기억할 여유가 없었던 바로 그 책. 나는 중앙 가판대에 놓인 <1Q84>를 향해 홀린 듯 다가갔다. 두툼한 두 권짜리 책이란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두 권을 손에 들고 가만히 무게를 재봤다. 가격도 확인했다. 그러고도 한동안 책을 뒤적이며 서 있었다. 과연 다 읽을 시간이 될까? 옛날 같은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책 두 권이면 일주일 점심값인데…….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나는 책을 샀다. 책 하나를 두고 갈등하는 내 궁상맞은 처지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위로받고 싶었기에 책을 샀다. 그 옛날, 훅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얇고 가벼운 청춘과 사랑 앞에 힘들어 할 때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며 위안을 얻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의 새로운 소설은 과연 아저씨가 된 나에게도 위로가 될까? 일말의 불안을 안고서.

2. <1Q84>를 읽다

아오마메와 덴고. 살 가치가 없는 남자를 죽이는 킬러와 수학선생이자 소설가 지망생. <1Q84>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그 이야기 속에서 ‘공기 번데기’라는 의문의 작품과 그 작품을 쓴 후카에리가 등장한다. 아오마메를 사주하는 노부인, 죽어 마땅한 남자들, 사이비 종교, 그리고 리틀 피플까지, 이야기는 쉴 새 없이 흘러가고 달이 하나인 1984년과 달이 두 개인 1Q84년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아오마메와 덴고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언제나 ‘환상성’이 함께 했다. 일종의 판타지적인 요소는 <상실의 시대>부터 이어온 하루키 문학만의 특색이다. 양사나이가 등장하고, TV 피플이 등장하고, 급기야 <해변의 카프카>에 이르러서는 UFO와 괴인(怪人)까지 나온다. 그러한 환상성, 판타지적 요소가 <1Q84>에서는 한층 강화됐다. 초능력을 행사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뿐만 아니라 리틀 피플이라는 이상한 존재까지. 게다가 이번에는 아예 ‘세계’가 바뀌게 된다. 장르문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하루키는 왜 이렇게 ‘환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하루키의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 속에 들어있다. 하루키는 늘 ‘개인’을 이야기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한 개인이 개별성을 얻고 존엄성을 획득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 그것이 바로 하루키 문학, 하루키 소설의 근간이다. ‘사회’ 대신에 ‘전공투’라는 미시적인 이름을 붙여도 되고, ‘현실’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여도 상관없다. 하루키는 시스템이 가진 불합리함과 부도덕함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환상을 활용한다. 그는 ‘예루살렘 상’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더 교묘한 거짓말을 함으로써-그러니까 사실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꾸며냄으로써-소설가들은 진실을 새로운 위치로 꺼내고 그것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진실이라는 것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묘사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불가능하죠. 그래서 우리는 진실이 숨어있는 장소에서 나오도록 유혹하거나, 이야기의 차원으로 진실의 위치를 변이하거나, 혹은 이야기의 형태로 대체함으로써 진실의 실마리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1Q84>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종교, 초능력, 두 개의 달, 리틀 피플, 또 다른 세상 등의 환상적인 요소는 아오마메와 덴고를 얽어매고 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의 진실’을 조명하는데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또한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그러한 요소들은 아오마메와 덴고의 외로움을 표현하는데도 효과적이다.

덴고의 인생은 일견 부러울 게 없는 듯 보인다. 안정적인 수입에다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까지, 그리고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연상의 연인도. 덴고는 딱히 어려운 일 없이 매일을 살아간다. 아오마메도 비슷하다. 위험한 일에 몸담고 있지만,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생각에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 수입도 좋다. 직업을 가지고 즐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외로운 존재들이다. 그들이 외로운 이유는 ‘결핍’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오마메는 덴고에게 덴고는 아오마메에게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외롭다. 이십 년 전, 단 한 번 손을 잡은 이후로 사랑에 빠져버린 두 사람. 그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얼마나 환상적인가!

사랑은 하루키가 제시하는 유일한 해답이다. 그는 이 거대한 시스템의 벽 앞에서 개인이 살아남고 존엄성을 획득하고 개별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라고 말한다. 거창한 사랑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 살과 살을 부비고,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목말라하는 사랑. 하루키는 아오마메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1권, 408쪽.)

아오마메는 덴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덴고는 소설의 마지막에 마음먹는다. 아오마메를 찾기로.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반드시 찾기로. 모호한 상황과 환상이 겹치는 <1Q84>에서 유일하게 뚜렷한 이야기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사랑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 <1Q84>는 ‘당신이 없었다면 어찌 살았을까’ 싶은 두 남녀의 거대하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다. 세계가 바뀔 정도의 사랑 이야기.


3. <1Q84>를 기억하다

책장을 덮고, 나는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덴고의 마지막 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지하철이 들어오며 승강장 안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상하게도 아내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스물두 살 때 우리는 만났다. 동갑내기였다. 아내는 바이올린을 켜는 여자였고, 나는 대학도 나오지 않은 군인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난했다.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연애는 사치였고, 사랑은 신기루였다. 나는 그때 가난이라는 질기고도 엄혹한 시스템에 갇혀 있었다. 내가 속한 세계는 어둡고 습했다.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가난은.

그래서 나는 그녀를 피했다. 사랑이 두려웠고, 두려운 그 사랑이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이 또한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기꺼이 내 손을 잡고, 내가 속한 ‘가난’이라는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나는 안다. 내 앞에서 웃기 위해 수백 번 울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7년이 흘렀고, 우리는, 그녀와 나는 믿을 수 없게도 결혼을 했다. 그녀는 ‘아내’가 되었다. 나는 결혼 후에도 몇 번이나 혼자 잠들지 못한 밤에 그녀의 얼굴을 보며 “아내”라고 중얼거려봤다. 그러면 내가 속한 세상이 출렁이는 걸 느꼈다. 여전히 가난에 속해 있지만 그 벽은 점점 옅어졌다. 내가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부자가 아니라 마음의 부자. 나는 넘칠 만큼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

그랬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사회생활에 찌들어가면서 나는 점점 사랑을 잃어갔다. 아내라는 단어에 더 이상 감동하지 않았다. 가난의 시스템을 벗어나면서, 현실과 사회, 직장과 생활이라는 먹먹한 시스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동안 아내는 힘들어했다. 아들을 낳고부터는 밤잠을 설치며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 삶에 지쳐갔다. 언젠가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애기를 낳고부터 이상한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아.”

나는 승강장 계단을 올랐다. 눈앞이 흐려졌다. 아오마메가 그랬던 것처럼, 덴고가 그랬던 것처럼 몸보다도 마음이 먼저 아내에게로 달려갔다. 우리가 사랑한 구 년이라는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시간. 혹독한 현실과 냉혹한 가난도 갈라놓지 못했던, 우리, 사랑. 나는 마음먹었다. 옛날처럼, 아니 옛날보다 더 아내를 사랑하기로. 그 옛날 내가 속한 가난의 세계에 아내가 기꺼이 뛰어든 것처럼 지금, 나도 뛰어들겠다고. 그녀의 이상한 세계로.

당신이 없었다면, 어찌 살았을까…….

가방 속에서 다 읽은 <1Q84>가 달그락달그락 달음질쳤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지하철역 밖으로 성큼 뛰쳐나갔다. 아내가 사는 세상이 거기 있었고, 다행이 달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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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무섭다

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만 봐도 오금이 저려 쩔쩔매던 그 시절엔 왜 그토록 귀신 이야기가 좋았던 걸까요? 화장실 가기가 두려워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를 걸 알면서도, 뒤숭숭한 꿈에 잠을 설칠 걸 뻔히 알면서도 여름밤만 되면 할머니 앞에서 귀신 이야기 타령을 했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그때 들었던 귀신 이야기는 하얗게 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단지 오슬오슬 소름 돋던 그때의 긴장감만이 아련하게 남아있지요.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 내용 때문에 무서웠던 건 아니었나 봅니다. 어둑한 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소리, 할머니의 낮은 음성처럼 심장을 옥죄는 분위기가 무서움의 근원이었지요.  

스티븐 킹의 신작 <듀마 키>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가 일품입니다. 공포의 근원은 ‘분위기’입니다. 그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귀신 이야기처럼 공포를 유발하는 각종 장치들이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펄쩍펄쩍 널을 뛰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티븐 킹의 장기야 말로 분위기로 이어가는 공포 소설이죠. 초능력을 쓰는 왕따 소녀 이야기나, 어린 시절의 악몽에 시달리는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점점 미쳐가는 가장의 이야기 모두 공포 소설이라고 하기엔 밋밋한 소재에서 출발해 종국에는 압도적인 공포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물론 킹의 이야기 중에도 좀 더 직접적인 공포, 예를 들면 사지를 절단하고 괴물이 등장해서 우걱우걱 사람을 먹어치우는 이야기가 있긴 합니다만 탁월한 묘사를 통해 획득하는 끈적끈적한 공포야말로 그를 호러의 제왕이라고 부르는 이유이지요. 그리고 이 책 <듀마 키>는 파도가 자갈을 건드리는 소리에서, 무성하게 자란 풀숲에서 불쑥불쑥 공포를 던집니다. 씨줄과 날줄로 탄탄하게 짠 탈출구 없는 진짜 공포를요.

 

에드거 프리맨틀. 한 때는 잘나가는 건축업자였으나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오른팔을 잃어버린 지금은 인생의 패배자일 뿐입니다. 그의 오른팔과 함께 아내도, 지위도, 명예도, 그리고 삶의 의욕도 모두 사라져버린 프리맨틀은 듀마 키라는 섬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섬에서 새로운 인생을 발견합니다. 바로 화가로서의 인생이죠. 하지만 살벌할 정도로 빛나는 그림 그리는 재능은 어쩐지 불안해 보입니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프리맨틀은 자신의 재능과 듀마 키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 나갑니다.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비밀을…….

<듀마 키>가 던지는 공포의 근간은 1권 전체를 할애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프리맨틀의 삶과 듀마 키에 대한 묘사입니다. 스티븐 킹은 공포라는 불꽃을 피우기 위해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들로 차곡차곡 제단을 쌓습니다. 사고를 당한 후 서서히 무너져가는 프리맨틀의 모습, 가족들과의 관계, 와이어먼과 나누는 우정,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그림 그리는 모습 등은 2권에서부터 시작되는 섬뜩한 공포를 위한 포석입니다. 장담하건데 1권을 꼼꼼히 읽을수록 마지막에 맞이하는 공포는 더욱 극대화 될 것입니다.

<듀마 키>를 읽는 내내,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자꾸만 등 뒤를 살펴야 했습니다. 어느새 검은 그림자 하나가 쑥 다가와 나를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파도가 철썩이며 죽은 자들이 걸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항상 악몽에 시달리건 만, 이상하게도 그의 신작만 나오면 열렬한 독자가 되고 맙니다. 그것 참,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아니, 프리맨틀아 자기 오른팔 긁는 소리입니다. 물론, 잘린 오른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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