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무섭다

어린 시절, 전설의 고향만 봐도 오금이 저려 쩔쩔매던 그 시절엔 왜 그토록 귀신 이야기가 좋았던 걸까요? 화장실 가기가 두려워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를 걸 알면서도, 뒤숭숭한 꿈에 잠을 설칠 걸 뻔히 알면서도 여름밤만 되면 할머니 앞에서 귀신 이야기 타령을 했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그때 들었던 귀신 이야기는 하얗게 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단지 오슬오슬 소름 돋던 그때의 긴장감만이 아련하게 남아있지요.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 내용 때문에 무서웠던 건 아니었나 봅니다. 어둑한 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소리, 할머니의 낮은 음성처럼 심장을 옥죄는 분위기가 무서움의 근원이었지요.  

스티븐 킹의 신작 <듀마 키>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가 일품입니다. 공포의 근원은 ‘분위기’입니다. 그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귀신 이야기처럼 공포를 유발하는 각종 장치들이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펄쩍펄쩍 널을 뛰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티븐 킹의 장기야 말로 분위기로 이어가는 공포 소설이죠. 초능력을 쓰는 왕따 소녀 이야기나, 어린 시절의 악몽에 시달리는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점점 미쳐가는 가장의 이야기 모두 공포 소설이라고 하기엔 밋밋한 소재에서 출발해 종국에는 압도적인 공포 분위기를 선사합니다. 물론 킹의 이야기 중에도 좀 더 직접적인 공포, 예를 들면 사지를 절단하고 괴물이 등장해서 우걱우걱 사람을 먹어치우는 이야기가 있긴 합니다만 탁월한 묘사를 통해 획득하는 끈적끈적한 공포야말로 그를 호러의 제왕이라고 부르는 이유이지요. 그리고 이 책 <듀마 키>는 파도가 자갈을 건드리는 소리에서, 무성하게 자란 풀숲에서 불쑥불쑥 공포를 던집니다. 씨줄과 날줄로 탄탄하게 짠 탈출구 없는 진짜 공포를요.

 

에드거 프리맨틀. 한 때는 잘나가는 건축업자였으나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오른팔을 잃어버린 지금은 인생의 패배자일 뿐입니다. 그의 오른팔과 함께 아내도, 지위도, 명예도, 그리고 삶의 의욕도 모두 사라져버린 프리맨틀은 듀마 키라는 섬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섬에서 새로운 인생을 발견합니다. 바로 화가로서의 인생이죠. 하지만 살벌할 정도로 빛나는 그림 그리는 재능은 어쩐지 불안해 보입니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프리맨틀은 자신의 재능과 듀마 키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 나갑니다.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비밀을…….

<듀마 키>가 던지는 공포의 근간은 1권 전체를 할애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프리맨틀의 삶과 듀마 키에 대한 묘사입니다. 스티븐 킹은 공포라는 불꽃을 피우기 위해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들로 차곡차곡 제단을 쌓습니다. 사고를 당한 후 서서히 무너져가는 프리맨틀의 모습, 가족들과의 관계, 와이어먼과 나누는 우정,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그림 그리는 모습 등은 2권에서부터 시작되는 섬뜩한 공포를 위한 포석입니다. 장담하건데 1권을 꼼꼼히 읽을수록 마지막에 맞이하는 공포는 더욱 극대화 될 것입니다.

<듀마 키>를 읽는 내내,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랬던 것처럼 자꾸만 등 뒤를 살펴야 했습니다. 어느새 검은 그림자 하나가 쑥 다가와 나를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파도가 철썩이며 죽은 자들이 걸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항상 악몽에 시달리건 만, 이상하게도 그의 신작만 나오면 열렬한 독자가 되고 맙니다. 그것 참,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아니, 프리맨틀아 자기 오른팔 긁는 소리입니다. 물론, 잘린 오른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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