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정확히 3천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인쇄술이 없고, 필사할 중세 수도사도 없던 아주 먼 옛날, 책을 참으로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열 권만 갖고 있어도 그 사람은 아주 부자 축에 속했죠. 책이 귀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책의 겉표지를 온갖 보석과 질 좋은 가죽으로 치장했습니다. 그야말로, 책은 부의 상징이었지요. 가장 큰 왕실 도서관 장서 수가 백여 권에 머물 정도라면,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있을까요?

귀하디 귀한 책이라, 혹시나 누가 들고갈까 고민한 사람들은, 스웨터를 선물 상자에 넣 듯 책들 상자 안에 고이 뉘어 놓았습니다. 당시에 책표지를 보석과 금박이로 휘황찬란하게 치장했으므로, 책의 앞표지가 하늘을 보도록 넣고는, 크고 무거운 상자에 자물쇠를 채워 보관했습니다. 책 한 권 당 상자 하나. 시간이 지나, 이제 상자에 넣기엔 방이 너무 좁았습니다. 여전히 책은 귀하고. 해서 책을 책상에 수평으로 뉘어놓고, 방문을 잠궜습니다. 이것이 책꽂이 칸이 수평으로 되어 있는 이유이자, 서고 탄생의 비밀입니다. 책을 뉘어놓고 방을 잠그자~!! 또, 책상에 놓으면 누군가 가져갈 수 있으니, 책이 도망가지 못하게 책상에 묶어두어야 했지요 이것이 바로 '사슬에 묶인 책'입니다.

바로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 도서관의 책 들은 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지금도 영국의 오래된 대학 도서관에 가면, 사슬이 묶여있는 책장을 볼 수 있지요. 사슬은 책 어디에 달았을까요? 그들은 사슬을 책 뒷표지에 달고, 여전히 책은 수평으로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사슬에 묶인 책을 보았지요. 사슬은 책상아래 수평 봉에 연결되었고, 수평봉엔 사슬을 떼 갈 수없도록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그야말로 이중 삼중 철통보완입니다. 중세 수도원, 필사를 담당하는 수도사의 활약으로 책이 점점 많아지자, 책을 수평으로 놓기에는 자리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책상에 오늘날의 책꽂이처럼 단을 만들어 위로 올리는 방법으로 책은 사슬을 매단채 바로 서게 되었습니다. 네~! 바로 그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책장은 처음에는 '책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처음에 책등을 안쪽으로 하여 책을 넣어 꽂았다는 겁니다. 종이를 제본하여 묶어놓는 책등을 밖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책등에 제목을 달지도 않았습니다. 제목은 앞표지에 적고, 앞표지 안쪽에 끈을 달아, 오늘날 서지표처럼, 책 앞마구리로 작은 종이를 내려 제목을 확인했습니다.

책 등에 제목을 쓰고, 장식을 하게 된 건 오랜 후의 일입니다. 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사슬을 떼어버려도 될 만큼 많은 책이 쏟아지게 되었고, 지금이 된 것이지요.

주절주절 얘기가 너무 길었나요?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까닭은 이 '책'을 통해 책과 그것을 감싸는 책장이라는 구조물을 새롭게 생각해보자 말을 건네기 위해서 입니다. 길쭉한 직사각형에 일자로 줄 몇 개 그어놓은 책장을 너무나 간단하고, 흔해빠진 구조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런 간단한 모양새를 갖추기위해 3천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책을 좋아하는 우리는 좀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의 주인공은 책이 아니라 바로 '책을 꽂는' 책장, 책꽂이 입니다.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

3천년 후, 책장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요? 사슬에 묶인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인지요. 집 안에 넘치게 쌓아두고, 귀찮아서 안 읽고, 심지어 졸릴 때 베개로, 물건을 괼 때 등 일상에서 지겹게 마주하는 이 종이묶음이 오늘날 우리 곁에 친숙하게 널부러져 있는 것은 아마도 축복일 것입니다.

4센티미터 두께의 누런 재생지에 깨알같은 검은 글씨가 빼곡히 차 있는 이 책을 읽기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인 반면, 좀 두껍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한 책을 찾는 발걸음이라면 꼭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