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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스티븐 해로드 뷰너 지음, 박윤정 옮김, 오영주 감수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라는 제목은 이 글을 읽어보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우선 제목에서 '잃어버린' 주체는 식물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흔히 데카르트, 뉴턴 이후 기계론적 인식론은 우리와 식물의 소통을 단절시켰을 뿐만 아니라 식물을 비롯한 자연계를 인간의 목적을 수행하는 도구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과 인간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은 식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과학이 지닌 도구성 때문이다.
한편 이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식물의 언어라는 개념이다. 흔히 인간과 다른 동식물을 다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인간이 지닌 언어라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예컨대 [털없는 원숭이]도 인간과 유인원 또는 원숭이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연결시켜주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간의 언어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런데 식물에게도 언어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다시 한번 인간이 만물의 영장 또는 주인이라는 오래된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한다. 한 마디로 인간과 자연계의 단절 또는 최근 점점 더 불게 지고 있는 환경 문제는 바로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인간과 자연, 특히 식물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흔히 의사 또는 유사(quasi) 과학의 영역이라고 하는 약초와 약초를 다루는 사람들을 통해서이다. 현대 의학에서 볼 때 약초과 약초를 다루는 사람들은 헛된 미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약초와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식물의 언어를 듣고 그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 식물들 사이의 언어와 대화는 인간의 환경에 대한 인식과 윤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다. 필자에 따르면 언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식물과 인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인간과 인간의 언어는 다윈이후의 진화론적 사고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즉 인간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원리, 또는 한 마디로 경쟁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해서 타인이나 다른 존재들은 사라져야 할 운명이다. 하지만 식물의 언어는 경쟁이 아닌 공존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이 처한 위험을 주변 존재들에게 그들만의 언어를 통해 알리고 있다.
자연계의 만물들은 서로 대화하고 있다. 그 대화에서 소외된 것은 인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 나오는 약간은 묵시론적이지만 인상 깊은 구절을 적는다.
"인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느 생명체보다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지도 않다. 이를 망각하면, 개인이나 국가, 민족은 파국을 면할 수 없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을 존중해주지 않으면 그들이 인간에게 복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 과학적인 인식론이 인간의 내면에 끼치는 영향은 훨씬 미묘하다. 그러나 자연의 다른 부분에 끼치는 영향만큼 고통스럽다. 우주를 하나의 기계로 보고 인간만을 지성적인 생명체로 보기 시작하면, 인간의 삶 속에 독특한 고립감이 생겨난다. 더불어 전에 몰랐던 힘든 외로움도 파고들기 시작한다.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많은 정서적 병리 현상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