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오래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서구 사회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특권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의무 또한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지위와 사회적 의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서구 사회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한 사회의 일원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이 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현 사회를 들여다볼 때 이 말이 지니는 함의는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소위 명망과 인기를 한껏 누리고 있다는 많은 정치인들의 개인적인 모습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치부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망각한 행동에 기인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만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들인가? 날로 심각해져가는 환경 그리고 그 환경의 역습을 조금씩 체감하는 지금, 어쩌면 우리 모두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망각해 온 것은 아닌가?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해 왔다. 다시 말해 스스로 귀족인 양 행세하면서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을 열등한 존재로 내려다보았을 뿐 아니라 착취(exploit)해 왔다.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자연 만물에 대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 기억해야만 한다.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아가 다른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나아가 그 다른 존재들에 대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 가운데 인간의 탈색된 올바름과 정의로움은 새로운 환경의 색을 입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