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는 "뱀을 즐겨 그리는 그......"라고 칭찬(?)조로 내가 소개되는 일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연실색하는 것이다. 그것뿐인가. 학교에서 돌아온 애로부터.
"엄마, 니네 엄마는 집에다 뱀을 기르느냐고 그러던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질문까지 받게 된다.
나는 그래 뱀을 그린 일이 있는 나보다도
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뱀을 즐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뱀에 대한 관심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을 느낀다.
10여 년 전에 뱀을 스케치해서 '유리 케이스 속에든' 작품을 한 일이 있다.
동기는 오직 인생에 대한 저항을 위해서였다.
그걸 사람들은 야릇한 호기심으로 대하는 것 같고
나는 지금까지 전설처럼 '뱀을 즐겨 그리는 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저러나 뱀은 분명히 매력이 있는 동물이다.
늦가을 어느 날 들길을 거닐 때
서릿발같이 차고 슬기로운 광채를 발하는 뱀 한 마리가 내 발 옆을 스르르 지나가서 놀랐다.
뱀을 그린 지도 얼마 안 되는 때인 만큼 '인과(因果)다?'라고 생각되어 줄달음질을 쳤던 것이다.
그러고 난 한참 후 무슨 심리 작용이었던지
먼 친척이나 사돈네를 만났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며 혼자 고소(苦笑)했던 것이다.
요즈음 나의 작품 주제는 '꽃'이 많고 '여인'이 많다.
"꽃과 여인을 즐겨 그리는 그......"
라고 칭찬(?)받을 시절이 올 것인지 모르지만
그때가 오면 나는 그야말로 에덴 동산에서 이브를 홀려 인간으로서의 슬픔과 기쁜,
그리고 고뇌를 맛보게 했다는 창조의 요술사, 요기로운 광채와 지성의 뱀님을 한 번 더 그려 볼까 한다.



1996.01./자유문학사/천경자 <꽃과 색채와 바람> 중에서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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