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 당신을 잊은 사람처럼
신용목 지음 / 난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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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집 『아무 날의 도시』가 출간된 지 4년이 지났고, 신용목은 세월을 거스른 듯한 모습으로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를 들고 돌아왔다.


 이 글은 시인 신용목이 수년에 걸쳐 순간순간 메모해둔 것이 정리되어 짧게 쓰이거나 길게 쓰였고, 몇몇은 시로 고쳐지기도 한 글이다. 두어편의 글이 지나면 갈피로 사진과 한줄의 짧막한 시(나는 이를 시라고 표현하고 싶다)가 들어가는데 시인은 여기에 쓰인 사진 역시 우연히 제게 온 것이라는 표현을 한다. 여기저기 오가며 찍었고 나누는 안부에 딸려 들어온 사진들이라고 말이다. 


 사랑이되 사랑이 아닌 모든 것, 전부이되 전부가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시이자 산문, 에세이이다. '누구나 수백 가지 이유를 버리고 단 한가지 이유로 서로 사랑'하고 '누구나 수백 가지 이유를 지우고 단 한 가지 이유로 서로와 헤어'지는 일에 대한, 그런 '생의 쓸쓸한 진실'만을 말하는 글은 아니다. '생이 모든 비밀을 안고 침몰하는 곳, 사랑'의 이면을 엿보는 글이기도 하다.  


 내가 기억했던 그의 문장은 황량한 폐허의 도시를 차분하게 맴도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에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들끓음 같은 것이 있어, 고통을 쓰다듬을 때는 다정하고, 삶을 외면하고플 때는 마음을 다시 불러일으켜 세우는 어떠한 운동성 같은 것이 있었다. 지표면 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열기만큼은 훈연한 공기를 느낄 수 밖에 없게 하는, 마그마가 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4년 만에 다시 만난 신용목의 시들은, 에세이는, 산문은 그리움과 망각의 거미줄에 얽힌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이는 사랑도 미움도, 고통도 세상도 끊임없이 잊어버리고 끊임없이 그리워 하고, 그러다 그리움을 잊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계속 반복하는 순환의 서사를, 자신이 순환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반복의 서사를 가졌다. 


 그리움을 잊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을 잊어버리는 일은 늘 증명되지 않기 마련이라서, 그이는 증명되지 않는 삶을 살고, 증명할 수 없는 삶을 버티는 일로 이렇게 살아간다. 당신을 잊은 사람처럼, 나를 잊은 사람처럼. 


 나는 그렇게 끊임없이 잊어버리고 잊음을 잊어버린 사람의 말에 위안을 얻고 안도하고 한정없이 침잠해갔다. 말의 흐름에 마음을 맡기고 깊이깊이 내려앉자 평안이 찾아왔다. 고요가 찾아왔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간간이 생각날때마다 들춰보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이련지도 모르겠다. 글 속의 문장이 당신에게 닿았을 때 어떤 비밀스런 일들이 비춰질지 모르겠다. 내게 그리움과 망각을 반복한 누군가가 와닿은 것처럼, 그로 인한 평안과 고요가, 위안과 안도가 내 손을 잡은 것처럼 아마도 또 다른 문장과의 만남이 당신의 삶을 살게 하고 버티게 하고 살아내게 할 것이다. 


 우린 이렇게 살 것이다.    





_2016.08.31, PM 19:30, 위트앤시니컬

_4년 전에 만났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현재의 그는 더 어려진 것같고 댄디해보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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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 - 거대한 그린란드상어를 잡기 위해 1년간 북대서양을 표류한 두 남자 이야기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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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내가 살던 곳은 온통 논밭이었고 산이었으며 바다는 텔레비전으로 보거나 가족 여행 같은 걸 통해 이삼년에 한번이나 갈까 말까한 그런 곳이었다. 어린이인 나는 가을이면 수확이 끝난 논에서 볏단으로 성을 쌓아 놀이를 하거나 겨울이면 잔뜩 언 수로, 수로의 경사를 따라 미끄럼틀을 즐기며 놀았었다. 봄이면 엄마는 집 주변에 자란 쑥이며 냉이를 뜯었다. 나는 엄마 주변을 빙빙 돌며 알지도 못하면서 나물 뜯는 일을 돕곤 했다. 뭣도 모르고 따라한 일이라 지금도 나물 보는 눈이 없다. 입으로 맛을 볼 줄은 알지만. (웃음)

 그래서 지금도 나는 바다가 낯설다. 바다로 둘러 싸여 어디를 보아도 물이고 눈을 감으면 바다 내음이 나는 그런 풍경은 익숙하지 않다. 나는 바다를, 바다의 일을, 바다의 생명들을 알지 못한다.

 이 에세이는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냉동 생선 너겟을 먹지 않은 아티스트 후고와 그의 친구이자 이 책의 저자인 모르텐이 그린란드 상어를 전통의 방법으로 잡아보기로 마음먹음으로 쓰여졌다. 

 후고의 아버지는 후고가 여덟 살 때부터 고래를 잡았고, 심해에서 올라온 그린란드 상어가 손질 중이던 고래의 비곗덩어리를 먹어치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포경이나 어업이 생업이었던 곳에서 나고 자라 아버지나 주변의 입으로 듣게된 이야기들은 후고로 하여금 판타지를 길러주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바다 동물을 한 번씩은 직접 보았지만 그린란드 상어만은 직접 보지 못했던 후고는 모르텐에게 제안한다. 그린란드 상어를 잡자. 그린란드 상어를 보자. 

 후고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나고 자란 모르텐 역시 바다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바다의 신비에 대해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의 그린란드 상어 프로젝트는 시작한다.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여러 세대를 건너뛴 갈망이 스스로에게 유전된건지도 모른다고 주억거리면서. 

 "좋아, 바다로 나가 그린란드 상어를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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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베스트피오르(Vestfjord) 구글링 이미지 


 이들의 프로젝트는 7월, 10월, 해를 갈아 3월, 5월에 거쳐 진행된다. 그들이 1년 내내 대서양을 표류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다에 나가기도 하고 저마다 개인적인 생활을 하기도 하고, 축제를 준비하기도 하고, 다양한 일상을 보여준다. 이 에세이가 풍요로울 수 있는 까닭은 그런 덕분이다. 직접적으로 상어를 잡으려 바다에 나간 이야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 바다 생물들의 생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 그들의 일상과 역사, 모르텐과 후고의 입을 빌어 전해지는 노르웨이 어업에 관련한 부분들, 베스트피오르의 아름다운 풍광과 문학, 철학에 대한 사유들이 적재적소에 녹아들어 있다. 

 나는 아시아 문화권의 사람이고, 그중에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바다와는 거리가 먼 생활배경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런 나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오는 무언가가 이 글에는 있다. 그곳 사람의 눈으로, 그곳 사람의 감각으로만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이 글에는 있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위협적인 르포텐 파도의 울음 같기도 하고 강한 힘으로 소용돌이 치는 조류의 손길이기도 하고, 가장 멀리, 가장 바깥에 있는 툴레(Ultima Thule)의 심연, 그 바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무언가에 대한 탐색은 '상어'를 잡는 일로 표현되어진다. '상어'는 그저 상어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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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상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뒷표지에 실린 물음이다. 

 나의 삶도 후고와 모르텐과 같을 것이다. 나의 상어를, 나만의 상어를 찾아서 사는 삶. 나는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고, 친구를 만나고, 주변의 것들에서 문득문득 배움을 얻기도 하겠지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상어를 찾아서 끊임없이 헤매일 것이다. 르포텐의 바다보다 아름다울런지는 알 수없지만. 내가 사는 일상, 나의 바다에서, 나의 상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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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Morten A.Stroksnes)


 1965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현재 북유럽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 모험가, 역사학자, 사진작가, 저널리스트이다. 노르웨이 최고의 대학인 오슬로 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다. 다양한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 르포를 기고하고 있으며, 특유의 모험가적 기질로 멕시코와 중동에 대한 여행기를 쓰기도 했다. 아프리카 콩고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고 취재해 집필한 《콩고에서의 살인》A Murder in Congo 은 그의 저서 3권과 함께 문학적 르포르타주로 찬사를 받았다. 

 2015년 아티스트 휴고 오스요르(Hugo Aasjord)와 함께 그린란드 상어를 잡기 위해 북대서양에 머물렀던 기나긴 여정을 기록한 《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을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노르웨이 최고의 문학상인 '브라게 상'(Brage Prize)과 '비평가 상'(The Critics Prize)을 동시 수상했다. 2016년 '레인 오드 상'(The Reine Ord Prize)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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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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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테드×유스턴(TED×Euston) 강연 내용을 다듬은 책이다. 테드×유스턴은 아프리카를 주제로 한 연례 행사로 다양한 분야의 연사들이 아프리카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는 짧은 강연을 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는데, 유투브에 올라온 치마만다의 강연이 250만 뷰를 기록하자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강연 내용인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말고도 「여성스러운 실수」와 『미즈』MS.에 실린 자넬 홉슨과의 인터뷰 「이야기꾼」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세 편을 모두 합쳐 100쪽도 되지 않는 글이지만 이 글들이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며 여기에 더 더할 것도, 뺄 것도 존재치 않는다. 이 작은 책은 자체만으로도 완벽하다. 


 나는 치마만다의 소설을 읽어본 일이 없는 상태에서 이 글을 접했다. 그녀의 문법은 굉장히 쉽다. (번역이 잘 된 까닭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들은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흑인이자 여성, 이주민의 삶을 살아오며 겪은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읽는 내내 놀란 것은 그녀의 경험이 나 자신이 여성으로서 겪어온 일들, 보게된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자들이 겪는 세상은 남자들과는 다르고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생물학적 차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인식, 그로 인해 파생된 관습과 문화적인 배경이 그들에게는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며, 이미 습관화되어 자신이 받고 있는 불평등한 대우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케냐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의 말처럼 "높이 올라갈 수록 여자가 적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의 임금이, 승진의 문제가 왜 그토록 차이가 나는 지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특정 직업군에 특정 성별이 몰려 있는지, 성별에 따라 해야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할 행동, 해야 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에 대해 학습되어지는 문화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같은 인간이다, 라고 표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남성의 분노에는 정당화를 부여하고 여성의 분노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남성의 성욕에는 본능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여성의 성욕은 음란하다고 한다. 남성에게는 과묵하고 진중하며 힘 있고 지적이길 바라면서 여성에게는 적당히 양보하고 웃고 애교를 부리는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요구된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남성도, 여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혐오적이다. 나는 그러한 혐오의 양상이 그동안 쌓여온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여성 쪽에 더 무게가 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도 여자도 여자를 혐오한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살고 있었고, 이제야 그런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근래 사회과학 서적 판매량의 상위권을 모두 페미니즘 서적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해주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혐오는 대놓고 "난 널 혐오해"라고 말했을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이러한 것은 사소한 말과 사소한 행동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이를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치마만다는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보다 좀더 공정한 세상을, 스스로에게 좀더 진실함으로써 좀더 행복해진 남자들과 좀더 행복해진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요청하자"고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위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가 아니다. 그렇다고 남성을 혐오하자는 것도 아니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젠더들에게 자유를 허자는 것이다. 남자라도 치마가 입고 싶으면 입을 수 있는 자유, 여자라도 브래지어를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자신의 젠더적인 성향을 공개 커밍아웃해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 어떠한 차별도 멸시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그밖에 남자라서, 여자라서, 남다른 젠더를 지녀서 받게 되는 어떠한 행동에 대한 강제, 불평등한 인식, 차별적 대우를 벗어나자는 것이다. 


 나 역시도 공정한 세상과 행복해질 사람들을 위한 치마만다의 의견에 동의한다. 내면화된 젠더의 교훈들을 벗어버리고 우리 스스로가 개개인의 인간으로서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사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가치 실천을 위한 훌륭한 입문서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접근하고 싶지만 기존의 책들이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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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3종은 민음사 모던 클래식으로 번역출간 되어 있다. 


아메리카나 /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 숨통


추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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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정의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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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발표된 앤 레키의 첫 장편 소설 『사소한 정의』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평단과 독자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 냈다. 네뷸러상과 휴고상, 영국판타지문학상, 아서C.클라크상, 로커스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하며 2014년 폭스 TV에 드라마화 판권이 팔리기도 했다.


 어릴적부터 열성적인 SF 독자였으나 실제로는 중년이 되어서야 작품 쓰기를 시작한 앤 레키는 2005년 지역 글쓰기 모임에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첫 장편소설인 『사소한 정의』를 완성하는데 6년이 걸렸다고 한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지도를 받으며 글쓰기를 하는 앤 레키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듯 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멀고 먼 미래, 정복과 확장으로 3천 년간 우주를 지배해온 라드츠 제국이다. 라드츠 제국의 중심엔 복제를 통해 수천 개의 몸으로 존재하며 제국의 3천 년을 지배해온 절대 군주 아난더 미아나이가 있다. 


 라드츠 사회는 보호-피호 관계를 바탕으로 한 위계질서가 작용하며 그것은 개인과 개인, 가문과 가문 간에 사회적, 재정적 울타리와 부양제도로 기능한다. 이러한 보호-피호 관계는 새로이 '병합'된 지역이 기존의 유력 라드츠 가문으로부터 피호권을 제공받음으로 온전히 라드츠 사회에 포섭되게끔 하며, 전체 라드츠 제국을 이루는 기본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즉 먹이사슬 최종 끝, 라드츠 우주의 모든 가문을 피호민으로 거느린 것이 아난더 미아나이인 것이다.)  


 라드츠 제국은 이러한 신분제 말고도 '정의, 공정, 이익'을 실현하는 군주에 대한 신뢰와 '병합'을 통해 인류를 문명화 시켜야 한다는 사명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제국에서 장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한 지위이다. 인류 문명화를 위한 '병합'을 실행한다는 점에서, 또 새로운 행성계에서 새로운 가문들과 접촉함으로 가문의 부와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를 창출해낸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띈다. 


 라드츠 제국의 전함은 세 종류로 나뉘며 자체 관문을 형성하여 빛보다 빨리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저스티스급은 병력 수송선이고 실제 전투의 주축은 소드급이 맡는다. 가장 규모가 작은 머시급은 주로 초계함으로 쓰인다. 


 이러한 함선들에는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들이 탑재되는데 함선의 인공지능은 인간 장교들의 몸에 이식된 삽입장치들을 통해 그들의 모든 정보를 전달받으며 일거수일투족을 살필 수 있다. 또 과거 병합 과정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의 몸을 생명중지 상태로 보관, 비축해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꺼내 인공지능의 보조체로 이용한다. '효과적으로 죽어 있는' 보조체들의 몸은 인공지능의 수족이 되고 또다른 몸이 되어 이곳 저곳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보조체는 인간이 아니며 함선에 부속된 장비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렇다고 인공지능이 인간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브렉은 2천년 간 병력 수송선으로 존재하다 파괴된 저스티스 토렌 호의 인공지능이 남긴 단 하나의 조각(보조체)이다. 


 그는 온전한 하나의 저스티스 토렌이었던 시절 그 스스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어떠한 사건을 통해 본체인 함선 저스티스 토렌과 제각기의 보조체간 연결의 차단을 경험하게 되고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스스로가 어떤 사건에 휘말렸는지도 모른 채, 분리된 '아난더 미아나이'들의 상충된 명령으로 자신이 가장 아꼈던 장교 '오온'을 죽이고, 자신으로 하여금 '오온' 죽이게한 '아난더 미아나이'에게 총을 쏜다. 그 결과 저스티스 토렌은 파괴되고, 그에 부속된 보조체였던 제 1에스크 19번만이 저스티스 토렌의 명령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자신의 나머지들이 파괴되던 순간을 뒤로 한 제 1에스크 19번은 스스로에게 브렉이라는 이름을 주고 자신을 파괴하고 오온을 죽게한 '아난더 미아나이'의 존재 자체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이 소설은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복수를 준비하는 브렉, 과거 오온과 그들을 둘러싼 사건에 대해 이야기 된다. 2부는 아난더 미아나이를 죽이기 위한 무기를 구하는 브렉과 1부에서 그가 구해낸 장교 세이바든과 브렉의 관계 변화, 두 사람의 라드츠 제국으로의 입성 등이 그려진다. 3부에서는 브렉의 존재를 알아차린 아난더 미아나이들과의 접전, 아난더 미아나이들의 분열로 인한 내전이 시작된다.   


 세계관의 구성이며 인물들의 구성이 무척 섬세한 소설이다. 앤 레키는 정말이지 전혀 새로운 우주와 전혀 새로운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작가의 섬세함이 가장 빛을 발하는 지점은 라드츠 문화에 있다. 라드츠인들은 성별 지칭하는 대명사를 '그녀'로 통일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라드츠 인들은 특정 성별을 지칭하지 않으며 대명사로 지칭할 때에는 여성으로 생각되는 대명사 '그녀'를 쓴다. 이것은 무척이나 모험적인 시도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남성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를 여성형 대명사로 지칭할 때 독자였던 나는 당혹스러웠고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젠더적인 측면에 대해 그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기법으로서 사용되는 이러한 대명사는 무척이나 특별하다. 


 또한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것이 너무 재밌다. 


 인공지능에 불과했던 저스티스 토렌, 그리고 그에 소속되었던 제 1에스크(어차피 둘은 하나인 '나'이지만)가 특별히 아꼈던 '오온'대위를 자신의 속성(아난더 미아나이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절대적 정의, 가치)으로 인해 살해하고, 마찬가지로 그러한 속성 때문에 아난더 미아나이(아난더 미아나이의 정신체는 분리된 상태이었으므로)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 일어났던 존재론적인 고민. 오온을 죽였다는 데에서 오는 스스로를 향한 분노, 상충된 명령을 내린 아난더 미아나이의 존재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를 해갈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브렉. 


 '세이바든'과 브렉의 관계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세이바든은 저스티스 토렌의 장교였으나 이후 다른 함선의 함장으로 전출된 인물이었다. 저스티스 토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장교. 함선을 잃고 생명중지 되었다가 1,000년만에 깨어 났고 낯선 닐트에서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브렉에게 구조된다. 브렉의 입장에서 보자면 원래 좋아하지도 않았던 인물이지만 자신의 본체 저스티스 토렌을 떠올리게 하는 세이바든은 저도 모르게 구했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존재. 세이바든의 입장에서는 1,000년전엔 유력가문의 인물이었으나 생명 중지 상태에서 깨어나니 자신을 아는 존재들은 다 죽었고 가문도 사라졌다. 그 어디에도 의지할 끈 따위 없던 상태, 그런 와중에서 브렉의 도움으로 그의 곁에 있게 되면서 초반에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브렉을 대하는 태도와 감정이 호감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인물관계를 바탕으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로맨스 코드는 아난더 미아나이와 라드츠 우주를 둘러싼 음모의 판을 조밀하게 엮어주는 끈이 된다. 오온과 브렉, 브렉과 세이바든. 내가 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이 소설을 직접 읽어 본다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소한 정의』 를 흐르는 로맨스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사소한 정의』는 라드츠 3부작의 첫번째 권이다. 2014년 『사소한 칼』, 2015년 『사소한 자비』로 완결이 났다. 한국에서는 아직 시리즈의 첫 권만 번역 출간된 셈이다. 이것은 그저 먼 미래의 우주와 AI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안에는 음모와 애정, 전혀 새로운 우주의 문화 등이 굉장히 잘 짜여진 건축물처럼 존재한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했다. 다음 권이 읽고 싶다고. 

 『사소한 칼』과 『사소한 자비』는 되도록 동시출간 되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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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
한지희 지음 / 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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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1920년대 '모단 걸'부터 현대에 '이효리','소녀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중문화 속에서 비춰져온 소녀상(여성상)의 계보를 보여주며 이러한 계보가 어떠한 사회적 맥락과 권력구조 안에서 만들어지고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해설서이다.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소녀' 개념은 어떻게 탄생하였고 '진정한 소녀성의 신화'는 어떠한 경로로 만들어졌으며, 신화적 소녀성이 육체에 투사되며 이루어지는 생산, 유통, 소비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제시한다. 이러한 소녀의 계보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교 대조를 이룬다. 비교대조의 과정은 특정 방향성을 지시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마다 차이를 보여주는 여성성을 다루는 방식과 여성성을 대하는 공통점에 대한 사료로 기능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우리가 자라오면서 미디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향유해온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의 이해에 대해 점검하게 되었다. 특히 여성 연예인, 거기에 더 나아가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연예인들에 대해 우리가 가져온 이중적 잣대, 혹은 기준에 관하여 이보다 더 명확하게 그 시원을 설명해 주는 텍스트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학술서로 쓰였기 때문에 간혹 어휘의 사용이나 현대 철학 이론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주석이 잘 되어 있어 철학이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은 총 7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앞 뒤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더하고 있다. 


 목차를 살펴보자면 


프롤로그 소녀, 유청년문화 그리고 페미니즘 

제 1장 현대 정보기술사회와 상업주의 B급문화의 부상 

제 2장 근대 소녀의 탄생과 잉여적 존재성

제 3장 순진열렬한 소녀의 탄생과 진정한 소녀성의 신화 

제 4장 순진열렬한 소녀의 병리적 징후와 원귀적 존재 양식 

제 5장 현대 명랑 소녀와 탄생과 육체없는 몸의 존재

제 6장 아이돌 소녀 상품의 기획과 소녀의 소외 

제 7장 소녀 되기와 소녀 문화의 가능성  

에필로그 소녀를 부탁해


 로 구성되어 있다. 저서에서 다루고 있는 사료들은 굉장히 다양하다. 1908년대 최남선의 『소년』지, 이인직의 『혈의 눈』, 이광수의 『무정』과 같은 문학 작품부터 시작하여, 일본의 '모던 갸루'와 『나오미』같은 작품, 당대 조선의 직업 여성들의 신문 기고문, 현대의 드라마와 영화 작품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컨텍스트를 다룬다. 


 일단 나의 입장을 빌자면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문근영이나 김민정과 같은 배우, 그 배우들이 연기했던 작품들과 배역, 소녀시대, 현아, 이효리에 이르는 예인 소녀들의 상품성과 그에 대한 소비 경향, 그녀들이 부른 노래 가사의 해석 등은 무척 친숙한 것이어서 훨씬 더 편안하게 저자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었다. 


 페미니즘 서적 중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의 경우 대중문화를 실 예로 많이 들어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미국 저자이다보니 해당 국가의 문화적인 트랜드가 많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 한지희의 『우리 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은 한국식의 『나쁜 페미니스트』로 불려도 무방하리라는 판단이 든다. 이 책은 그만큼 각 시대시대를 지배한 문화적 트랜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현대의 가부장적인 문화 생산자들과 문화 소비자들 틈에서 자신의 주체성과는 다른 이미지를 부여받으며 무존재적으로 지워져 그 어떠한 자기만의 목소리도, 정치적인 발언도 금지된 '소녀'들에 대하여, 작품들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저자는 시인 아드리안 리치의 말을 빌어 이런 말을 한다. 


리치가 제안하는 대로 우리는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여자의 몸에 책임을 지고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여성으로서 생애주기의 첫 문턱을 넘는 10대 소녀들에게 자신의 여성적 존재성과 삶의 조건에 대해 사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여러 가지 시선들 중에서 여성주의의 시선을 한 가지 유용한 도구로서 습득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이 여자의 몸으로 사유하고, 보다 나은 삶, 보다 인간적인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설명들에서 침묵을, 부재를, 이름 없는 것을, 말해지지 않는 것을, 코드화되어 있는 것을 듣고 보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들이 여자의 몸에 책임을 지는 우리를 보고 그들이 맞이하게 될 여성의 존재와 삶의 양식에 겁을 먹지 않도록 말이다. 그들이 그들의 삶에 주도권을 잡고 장어처럼 유연하게, 양배추 심처럼 옹골지게 남자들이 조직해 놓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BIG(Bold Intelligent Girl)이다"라고 외치며 살아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말이다 .


 남성들이 부여한 PIG(Pure Innocent Girl)의 자리에서 벗어나 BIG의 자리를 만들어 가길, 하나의 인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 또한 같은 것을 소망한다. 우리의 뒤를 책임질 다음 세대의 소녀들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좀더 나은 삶을 사는 상상을 현실로 이루길 소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모두의 것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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