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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
한지희 지음 / 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1920년대 '모단 걸'부터 현대에 '이효리','소녀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중문화 속에서 비춰져온 소녀상(여성상)의 계보를 보여주며 이러한 계보가 어떠한 사회적 맥락과 권력구조 안에서 만들어지고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해설서이다.
한국 대중문화사에서 '소녀' 개념은 어떻게 탄생하였고 '진정한 소녀성의 신화'는 어떠한 경로로 만들어졌으며, 신화적 소녀성이 육체에 투사되며 이루어지는 생산, 유통, 소비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제시한다. 이러한 소녀의 계보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교 대조를 이룬다. 비교대조의 과정은 특정 방향성을 지시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마다 차이를 보여주는 여성성을 다루는 방식과 여성성을 대하는 공통점에 대한 사료로 기능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우리가 자라오면서 미디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향유해온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의 이해에 대해 점검하게 되었다. 특히 여성 연예인, 거기에 더 나아가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연예인들에 대해 우리가 가져온 이중적 잣대, 혹은 기준에 관하여 이보다 더 명확하게 그 시원을 설명해 주는 텍스트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학술서로 쓰였기 때문에 간혹 어휘의 사용이나 현대 철학 이론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주석이 잘 되어 있어 철학이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은 총 7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앞 뒤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더하고 있다.
목차를 살펴보자면
프롤로그 소녀, 유청년문화 그리고 페미니즘
제 1장 현대 정보기술사회와 상업주의 B급문화의 부상
제 2장 근대 소녀의 탄생과 잉여적 존재성
제 3장 순진열렬한 소녀의 탄생과 진정한 소녀성의 신화
제 4장 순진열렬한 소녀의 병리적 징후와 원귀적 존재 양식
제 5장 현대 명랑 소녀와 탄생과 육체없는 몸의 존재
제 6장 아이돌 소녀 상품의 기획과 소녀의 소외
제 7장 소녀 되기와 소녀 문화의 가능성
에필로그 소녀를 부탁해
로 구성되어 있다. 저서에서 다루고 있는 사료들은 굉장히 다양하다. 1908년대 최남선의 『소년』지, 이인직의 『혈의 눈』, 이광수의 『무정』과 같은 문학 작품부터 시작하여, 일본의 '모던 갸루'와 『나오미』같은 작품, 당대 조선의 직업 여성들의 신문 기고문, 현대의 드라마와 영화 작품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컨텍스트를 다룬다.
일단 나의 입장을 빌자면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문근영이나 김민정과 같은 배우, 그 배우들이 연기했던 작품들과 배역, 소녀시대, 현아, 이효리에 이르는 예인 소녀들의 상품성과 그에 대한 소비 경향, 그녀들이 부른 노래 가사의 해석 등은 무척 친숙한 것이어서 훨씬 더 편안하게 저자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었다.
페미니즘 서적 중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의 경우 대중문화를 실 예로 많이 들어 이론을 설명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미국 저자이다보니 해당 국가의 문화적인 트랜드가 많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 한지희의 『우리 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은 한국식의 『나쁜 페미니스트』로 불려도 무방하리라는 판단이 든다. 이 책은 그만큼 각 시대시대를 지배한 문화적 트랜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현대의 가부장적인 문화 생산자들과 문화 소비자들 틈에서 자신의 주체성과는 다른 이미지를 부여받으며 무존재적으로 지워져 그 어떠한 자기만의 목소리도, 정치적인 발언도 금지된 '소녀'들에 대하여, 작품들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저자는 시인 아드리안 리치의 말을 빌어 이런 말을 한다.
리치가 제안하는 대로 우리는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여자의 몸에 책임을 지고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여성으로서 생애주기의 첫 문턱을 넘는 10대 소녀들에게 자신의 여성적 존재성과 삶의 조건에 대해 사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여러 가지 시선들 중에서 여성주의의 시선을 한 가지 유용한 도구로서 습득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연습을 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들이 여자의 몸으로 사유하고, 보다 나은 삶, 보다 인간적인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설명들에서 침묵을, 부재를, 이름 없는 것을, 말해지지 않는 것을, 코드화되어 있는 것을 듣고 보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들이 여자의 몸에 책임을 지는 우리를 보고 그들이 맞이하게 될 여성의 존재와 삶의 양식에 겁을 먹지 않도록 말이다. 그들이 그들의 삶에 주도권을 잡고 장어처럼 유연하게, 양배추 심처럼 옹골지게 남자들이 조직해 놓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BIG(Bold Intelligent Girl)이다"라고 외치며 살아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말이다 .
남성들이 부여한 PIG(Pure Innocent Girl)의 자리에서 벗어나 BIG의 자리를 만들어 가길, 하나의 인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 또한 같은 것을 소망한다. 우리의 뒤를 책임질 다음 세대의 소녀들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좀더 나은 삶을 사는 상상을 현실로 이루길 소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모두의 것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