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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그동안 국내의 문학소설에는 많이 무심했던 편이라 처음 만나게 된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정용준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는 그들의 문장이 낯설다. 마치 소개팅이라도 주선받은 기분인데 이게 또 제각기 다른 사람인지라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해마다 나오는 것인데 독자로 하여금 좋은 만남을 주선해주는 장이 되어주는 것 같다. 일단 내 경우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한낮'이란 어떤 시간일까. 햇볕이 강해져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이 올라가는 시간? 아니면 우리가 가장 좋았던 시절, 청춘? '너무'라는 부사는 어딜 수식하고 있는 걸까. 한낮일까, 연애일까.
필용의 현재는 누구나의 것이다. 힘든 가정형편에 공부를 했고 유학을 꿈꾸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이성과 사랑인듯 사랑 아닌 것을 나누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시선을 낮춰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일. 만사가 잘 되는 것도, 잘 되지 않는 것도 아닌, 큰 후회는 없지만 그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는 그런 삶. 지난 날을 회상하며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저랬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누가 날 좋아했는데 하며 자존감을 높여보기도 하고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삶.
필용의 감정을 따라 그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여행하다 보면 우리는 문득 느끼게 된다. 우리는 늘 어찌어찌 삶을 버텨내왔고 그것이 당연했고 살아 가는 일이 아닌 살아 내는 일이 정상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자기 위안을 했다. 마음에 아무리 공허가 들어차도, 근원 모를 슬픔이 고독이 외로움이 자리해도 쏟아버리고 비워버리기보다 고이고 고여도 그저 지나쳐버리고는 했다.
그러나 필용을 만나고, 필용의 양희를 만나고 양희의 부조리극에 함께하고 나서야 그제야 깨닫는다. 아, 울어도 되는구나. 쏟아내도 비워버려도 되는 구나. 굳이 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구나. 비움으로 인해, 그 공란으로 인해 존재하는 있음의 가치도 있는 것이구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삶이라고 느꼈지만 그것 조차도 삶에 그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 어떠한 있음 이었구나.
기준영「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풍족하고 지적인 중년 남성인 '나'는 스물 다섯의 아름다운 아가씨 H를 사랑한다. 사랑을 하는 것인지 욕망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늘 친절하고 성숙한 인간형을 연기하며 H를 대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간보는 H에 대한 불만과 H에 대한 연민, 그 밖에 수많은 감정들이 회오리친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기도 한다.
화자인 '나'는 어른의 가면을 쓰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인물인지 모른다. 그의 문은, 그의 빗장은 H를 따라, 진을 따라 두드려지고 또 두드려진다. 이 소설은 문 안에 안온하느냐, 문 밖으로 나가느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용준「선릉 산책」
정신 지체, 혹은 자폐로 추정되는 청년과 '나'의 함께하는 하루. '나'는 선배의 제안으로 그가 하던 돌봄 아르바이트의 대타로 들어간다. '나'는 한두운과 시간을 보내며 그와 조금씩 교감한다. 교감의 과정은 일로써 시작된 것이고 지극히 그 둘만의 것에 불과했다. 한두운과의 헤어짐을 아쉬워까지 하던 '나'는 보호자의 사정으로 인해 한두운을 맡기로 한 시간이 길어지게 되자 점자 좋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한두운에게 쏟아지는 타인들의 시선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폭력성. 결국 한두운은 그 스스로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과연 타인과 타인으로 만나 교감한다는 것은 어떤 일인걸까. 나는 그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지 않다. 그사람 역시도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엔 늘 거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거리가 존재해야 하기 마련이다.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확인만 존재할 뿐.
장강명「알바생 짜르기」
읽으면서 사실주의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 생 혜미와 중간 관리자인 과장 은영, 사장의 입장 그 모든 것이 절묘하게 잘 짜여진 거미줄이다. 그들의 입장은 지극히 구조적인 문제를 함의한다. 사장으로써 혜미와 은영을 바라보는 입장도 그가 사장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들이고, 은영이 혜미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혜미가 퇴사를 권고 받고 은영으로부터 합의금과 수정된 경력증명서를 필요로 하는 이유도 모두가 구조적이다.
혜미가 좀더 싹싹하고 밝은 모습의 알바생이었다면 사장은 그녀를 자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혜미를 자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녀가 쌩뚱하고 살갑지 않은 알바생으로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은 사장이므로 직접 짜르기보다 은영을 중간에서 이용하길 바란다. 은영은 처음엔 비정규직 처지인 혜미를 동정했으나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사장에 의해 혜미를 잘라야 하는 처지,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느냐는 억울함, 노력하지 않는 혜미에 대해 자라나는 반감 등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게 되고, 종래에는 혜미의 모든 행동과 말들이 계획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갖게 된다. 혜미는 어떤가. 원거리에서 직장을 다니느라 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아둥바둥, 고질적으로 아픈 무릎은 수술을 해야할 지경이고 회사는 자르겠다고 하고, 의지할 사람은 없고, 하나라도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것을 받으려고 애쓴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일이라 할지라도, 물질적인 보상이라도 챙겨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런 태도 양상들을 보이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아니 사실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그들의 사회적 자리, 그들을 그런 자리로 만든 사회의 구조, 그들을 그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게 많드는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기에 장강명의 소설은 구조의 문제와 그에 파생되는 영향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현시해내는 형식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솔「유럽식 독서법」
이 소설의 매력은 이국적인 공간을 지극히 낯익게 불러오는 것 같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세헤라자데인 소녀, 그리고 그녀의 아내. 주인공이 일하는 초콜릿 공장이나 밤 사이 빈 차들을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간도 시간도 모든 것이 이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한국이 아닌게 당연한 지명들과 사건들은 경계를 지우지 않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유럽식 독서법, 이라는 이름으로.
최정화「인터뷰」
소설의 내용은 어느 한 지식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도중 실수로 인해 자신을 인터뷰하던 기자를 상해하고 실명에까지 이르게 만든다. 자숙의 시간을 거친 주인공은 이제야 막 자신의 명성, 자신의 자리를 회복해 나간 참이다. 아내와 장인과 함께 나선 외출, 그는 자신의 성공을 가족들과 함께 축하 하지만 가족들은 삼년 전 있었던 사고가 그의 실수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이 못 견디게 싫다. 믿음을 받고 싶다. 인정 받고 싶다. 주인공은 초면인 부부와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이해한다, 모두가 그런 순간을 겪는 다는 둥의 위로를 받는다. 그들의 온정어린 말들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따뜻한 말을 계속 듣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말을 하면 할수록 주인공의 과거는 확실한 전력이 되어가는 것 같다.
타인들의 환심을 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는 인물들, 그들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불안 같은 것은 현재의 인간상을 담고 있는 가장 실질적인 인물상이다. 최정화의 문장은 3인칭의 자리, 조금 더 객관적인 위치에 선채로 적나라한 폭로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 폭로에는 어떠한 정리도 해답도 있지 않다. 그런 까닭에 최정화의 인물과 문법은 유니크하다.
오한기「새해」
내용은 크게 낯설지 않다. 자신의 문학 작품을 위해 그 어떠한 일이라도 해내는 작가에 대한 서사는 흔한 클리셰이다. 「새해」가 남다른 점은 화장실에서 아기를 주운 한상경이 원본이고, 소설의 화자는 한상경의 시뮬라크르로써 작용한다는 점이다. 아기는 한상경의 피츠제럴드이고 화자의 친친나트가 된다. 이 아기만 곁에 있다면 그 어떤 문학적 성취라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 미신처럼 한상경과 화자의 주변을 두른다.
( ) 납치나 해볼까.
로 시작됐던 화자의 사고 변화는 한상경에 이르러 구체화 되고 피츠제럴드를 떠맡게 된 이후 실재화 된다. 화자가 화자의 친친나트를 아내에게 선보였을 때, 아내는 피츠제럴드도 친친나트도 아닌 아기를 안고, 안심시킨다. 그제야 아기는 아기가 된다.
오한기의 말은 어딘지 쉽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다. 화법의 차이일까. 납치라는 흔한, 심심한 모티브를 주체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어투는 유쾌하고 권태롭지만 재기발랄하다. 이러한 화자 특유의 말투는 아마도 독자로 하여금 좀더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