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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화실 -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선물로 만드는 12주의 그림 여행
정진호 지음 / 한빛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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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준비물을 완벽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시작도 못해보고 끝내버린 꿈들이 많은데,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꿈이었다.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지, 어떤 연습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같은 것.  


 <행복화실>은 초심자로써는 알 수 없는 쓰기 좋은 종이와 펜과 같은 문구들, 채색을 할 때 좋은 여러 가지 재료들에 대한 세세한 지목이 있어 좋았다. 화구들을 구하기 위해 들어가보아야할 인터넷 사이트라던가 화구상의 위치라든가 하는 것도 적혀 있었는데 뭔가 안심하게되는 느낌이었다. 


 그림은 재능 있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그릴 수 있는 것, 뭔가 다가가기 어려운 "예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책 중간 중간 실려 있는 사람들의 수기는 어딘지 모르게 응원 받는 기분을 주었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았어도,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더라도 그림을 시작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확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더라도 두려워할 것은 없다는 자신감이 자라났다.  


 해외여행을 가서 보는 낯선 풍경이나, 특별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것에서 가치를 찾는 그림. 스스로의 즐거움 뿐만 아니라 나누는 기쁨까지 알게 해주는 그림. 내가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나는 이제 그림을 그려볼 것이다. 나의 일상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 것이다. <행복화실>을 찾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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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 PARK 2016-06-14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수기`가 실려있다는 부분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네요.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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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은 3인칭 화자가 '오오바 요조'라는 인물의 사진 세 장을 볾으로 시작한다. 요조의 이야기는 제 1수기, 2수기, 3수기로 이어지며 요조 1인칭 시점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머리말

 

나는 그 남자의 사진을 세 장 본 적이 있다.

이 서두로부터 시작되는 문장은 유년 시대·학생시절·기괴한 사진의 "세 장"의 사진을 봐 비교한다. 그 모습이 제삼자의 시점에서 쓰여져 있다.

제1의 수기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나"는 남과는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어 그 때문에 혼란스럽다. 게다가 온전히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는 "나"는, 인간에의 마지막 구애로서 익살짓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본성은 가정부나 하인에게 범해진다는 잔혹한 범죄를 말하지 않고 힘 없게 웃는 인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서로 속이는 인간들에 대한 난해함 끝에 고독을 선택한다.
제2의 수기
중학교 시절, "나"는 익살꾼이라는 자신의 기술이 간파될 것 같아 두려워 한다. 그 후 구 제국고등학교에서 인간에의 공포를 감추기 위해서 나쁜 친구 호리키에 의해  담배 매춘부 좌익 사상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들은 모두, "나"에게서 추악한 인간사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급격하게 환경이 바뀌는 것에 따라 여러가지 속박으로부터 피하기 어려워져, 결과적으로 유부녀와의 따뜻한 하룻밤 뒤에, 그녀와 동반자살을 기도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혼자 살아남아, 자살 방조죄를 추궁받는다. 결국, 부친의 거래경험이 있는 남자를 인수인으로서 석방되지만, 혼란한 정신 상태는 계속 된다.
제3의 수기
죄를 추궁받은 것을 계기로 고등학교를 퇴학이 되어, 한때 인수인의 남자의 집에 체류하게 되지만, 남자에게 장래에 어떻게 할 건지 추궁받아 "나"는 가출을 한다. 그것을 계기로 아이 딸린 여자나, 바의 마담 등과의 파괴적인 여성 관계에 몰두하게 되어, "나"는 한층 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 끝에 마지막으로 원했던 순결한 여자가, 근처 상인에게 범해지고, 지나친 절망에 술에 절어 지내다가, 마침내 어느날 밤, 우연히 찾아낸 수면제를 이용해, 발작적으로 다시 자살미수를 일으킨다.
어떻게든 살아났지만, 더욱 몸이 쇠약해져 한층 더 술독에 빠지게 되어, 어느 눈 오는 날 밤 결국 객혈(喀血)을 한다. 약국에서 처방된 모르핀을 사용하면 급격하게 상태가 회복됐기 때문에, 거기에 맛을 들여 몇 번이나 사용하게 되다가 결국 모르핀 중독에 걸린다. 모르핀을 너무 원한 나머지 몇번이나 약국으로부터 외상으로 약을 사다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가 되어, 마침내 약국의 부인과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그 자신의 죄의 무게에 참을 수 없게 되어, "나"는 친가에 상황을 설명해 돈을 원한다는 편지를 보낸다.
이윽고, 가족의 연락을 받은 것 같은 인수인의 남자와 호리키가 와서, 병원에 가라고 말한다. 행선지는 요양소라고 생각했더니 뇌병원에 입원 당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미친 사람으로서 평가를 받아진 것을 느끼고, "나"는 이미 인간을 실격했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인간 실격.

 

수개월의 입원 생활 후, 고향에 간 "나"는 거의 폐인이 되어, 불행도 행복도 없고, 단지 지나 갈 뿐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 출처 : 위키백과 






 '요조'를 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인간 불신과 그로 인해 이어지는 가면의식이랄 수 있다. 그는 누구나와도 잘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와도 관계 맺지 못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사회화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조는 반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_공생인, 더불어 사는 인간)이고 반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_공감하는 인간)이다. 사회화가 이성의 영역이라면, 한 나라의 제도 또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요구받는 것이 사회화라면, 그는 사회화에 이탈된 인간이며 이성보다 감정의 지배 하에 있는 인물이랄 수 있다. 

 주변의 타인들에 비해 요조가 남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러한 까닭이며, 이는 요조를 사회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 공간, 한 시간에 자리했으면서도 그로 부터 배격되어지는 요조의 모습은 그 자신을 어쩔 수 없는 자기 파괴의 추동으로 몰아간다. 

 요조에게 예비된 것은 이방인의 자리. 이방인은 공동체 내에서 두려움의 존재로 거부되거나 신비, 매혹, 미스터리함의 상징이 된다. 요조가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그의 곁을 스쳐지나간 여러 여성들의 존재는 그런 요조의 모습을 더욱 확실시 해주는 근거이다. 요조는 운이 좋아 수차례에 걸친 자살 시도에서 목숨을 건지지만 그녀들 중 몇은 목숨을 잃고, 불행을 당하고, 혹은 살던 대로 살아간다. 

 생의 말미, 요조는 스스로를 인간실격이라 칭하지만 이것은 사회화된 어떤 규범의 문제일 뿐, 기실 요조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떠한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은 야성의 무엇, 자유로운 인간. 비록 그의 자유는 구조적 억압과 강제로 꺾여버리고 말지만 날 것의 인간, 그 극한에 요조는 존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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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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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의 문학소설에는 많이 무심했던 편이라 처음 만나게 된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정용준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는 그들의 문장이 낯설다. 마치 소개팅이라도 주선받은 기분인데 이게 또 제각기 다른 사람인지라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해마다 나오는 것인데 독자로 하여금 좋은 만남을 주선해주는 장이 되어주는 것 같다. 일단 내 경우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한낮'이란 어떤 시간일까. 햇볕이 강해져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이 올라가는 시간? 아니면 우리가 가장 좋았던 시절, 청춘? '너무'라는 부사는 어딜 수식하고 있는 걸까. 한낮일까, 연애일까.


 필용의 현재는 누구나의 것이다. 힘든 가정형편에 공부를 했고 유학을 꿈꾸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이성과 사랑인듯 사랑 아닌 것을 나누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시선을 낮춰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일. 만사가 잘 되는 것도, 잘 되지 않는 것도 아닌, 큰 후회는 없지만 그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는 그런 삶. 지난 날을 회상하며 이랬더라면 어땠을까, 저랬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누가 날 좋아했는데 하며 자존감을 높여보기도 하고 자괴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삶. 


 필용의 감정을 따라 그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여행하다 보면 우리는 문득 느끼게 된다. 우리는 늘 어찌어찌 삶을 버텨내왔고 그것이 당연했고 살아 가는 일이 아닌 살아 내는 일이 정상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자기 위안을 했다. 마음에 아무리 공허가 들어차도, 근원 모를 슬픔이 고독이 외로움이 자리해도 쏟아버리고 비워버리기보다 고이고 고여도 그저 지나쳐버리고는 했다.  


 그러나 필용을 만나고, 필용의 양희를 만나고 양희의 부조리극에 함께하고 나서야 그제야 깨닫는다. 아, 울어도 되는구나. 쏟아내도 비워버려도 되는 구나. 굳이 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구나. 비움으로 인해, 그 공란으로 인해 존재하는 있음의 가치도 있는 것이구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삶이라고 느꼈지만 그것 조차도 삶에 그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 어떠한 있음 이었구나.

 



기준영「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풍족하고 지적인 중년 남성인 '나'는 스물 다섯의 아름다운 아가씨 H를 사랑한다. 사랑을 하는 것인지 욕망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늘 친절하고 성숙한 인간형을 연기하며 H를 대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간보는 H에 대한 불만과 H에 대한 연민, 그 밖에 수많은 감정들이 회오리친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기도 한다. 


 화자인 '나'는 어른의 가면을 쓰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인물인지 모른다. 그의 문은, 그의 빗장은 H를 따라, 진을 따라 두드려지고 또 두드려진다. 이 소설은 문 안에 안온하느냐, 문 밖으로 나가느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용준「선릉 산책 


 정신 지체, 혹은 자폐로 추정되는 청년과 '나'의 함께하는 하루. '나'는 선배의 제안으로 그가 하던 돌봄 아르바이트의 대타로 들어간다. '나'는 한두운과 시간을 보내며 그와 조금씩 교감한다. 교감의 과정은 일로써 시작된 것이고 지극히 그 둘만의 것에 불과했다. 한두운과의 헤어짐을 아쉬워까지 하던 '나'는 보호자의 사정으로 인해 한두운을 맡기로 한 시간이 길어지게 되자 점자 좋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한두운에게 쏟아지는 타인들의 시선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폭력성. 결국 한두운은 그 스스로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과연 타인과 타인으로 만나 교감한다는 것은 어떤 일인걸까. 나는 그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지 않다. 그사람 역시도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엔 늘 거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거리가 존재해야 하기 마련이다.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확인만 존재할 뿐. 




장강명「알바생 짜르기


 읽으면서 사실주의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 생 혜미와 중간 관리자인 과장 은영, 사장의 입장 그 모든 것이 절묘하게 잘 짜여진 거미줄이다. 그들의 입장은 지극히 구조적인 문제를 함의한다. 사장으로써 혜미와 은영을 바라보는 입장도 그가 사장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일들이고, 은영이 혜미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혜미가 퇴사를 권고 받고 은영으로부터 합의금과 수정된 경력증명서를 필요로 하는 이유도 모두가 구조적이다. 


 혜미가 좀더 싹싹하고 밝은 모습의 알바생이었다면 사장은 그녀를 자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혜미를 자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녀가 쌩뚱하고 살갑지 않은 알바생으로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은 사장이므로 직접 짜르기보다 은영을 중간에서 이용하길 바란다. 은영은 처음엔 비정규직 처지인 혜미를 동정했으나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사장에 의해 혜미를 잘라야 하는 처지,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느냐는 억울함, 노력하지 않는 혜미에 대해 자라나는 반감 등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게 되고, 종래에는 혜미의 모든 행동과 말들이 계획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갖게 된다. 혜미는 어떤가. 원거리에서 직장을 다니느라 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아둥바둥, 고질적으로 아픈 무릎은 수술을 해야할 지경이고 회사는 자르겠다고 하고, 의지할 사람은 없고, 하나라도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것을 받으려고 애쓴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일이라 할지라도, 물질적인 보상이라도 챙겨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런 태도 양상들을 보이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아니 사실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그들의 사회적 자리, 그들을 그런 자리로 만든 사회의 구조, 그들을 그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게 많드는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기에 장강명의 소설은 구조의 문제와 그에 파생되는 영향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현시해내는 형식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솔「유럽식 독서법


 이 소설의 매력은 이국적인 공간을 지극히 낯익게 불러오는 것 같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세헤라자데인 소녀, 그리고 그녀의 아내. 주인공이 일하는 초콜릿 공장이나 밤 사이 빈 차들을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간도 시간도 모든 것이 이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한국이 아닌게 당연한 지명들과 사건들은 경계를 지우지 않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유럽식 독서법, 이라는 이름으로.  



최정화「인터뷰


 소설의 내용은 어느 한 지식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도중 실수로 인해 자신을 인터뷰하던 기자를 상해하고 실명에까지 이르게 만든다. 자숙의 시간을 거친 주인공은 이제야 막 자신의 명성, 자신의 자리를 회복해 나간 참이다. 아내와 장인과 함께 나선 외출, 그는 자신의 성공을 가족들과 함께 축하 하지만 가족들은 삼년 전 있었던 사고가 그의 실수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이 못 견디게 싫다. 믿음을 받고 싶다. 인정 받고 싶다. 주인공은 초면인 부부와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이해한다, 모두가 그런 순간을 겪는 다는 둥의 위로를 받는다. 그들의 온정어린 말들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따뜻한 말을 계속 듣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말을 하면 할수록 주인공의 과거는 확실한 전력이 되어가는 것 같다. 

 

 타인들의 환심을 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는 인물들, 그들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불안 같은 것은 현재의 인간상을 담고 있는 가장 실질적인 인물상이다. 최정화의 문장은 3인칭의 자리, 조금 더 객관적인 위치에 선채로 적나라한 폭로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 폭로에는 어떠한 정리도 해답도 있지 않다. 그런 까닭에 최정화의 인물과 문법은 유니크하다. 



  

오한기「새해

 

 내용은 크게 낯설지 않다. 자신의 문학 작품을 위해 그 어떠한 일이라도 해내는 작가에 대한 서사는 흔한 클리셰이다. 「새해」가 남다른 점은 화장실에서 아기를 주운 한상경이 원본이고, 소설의 화자는 한상경의 시뮬라크르로써 작용한다는 점이다. 아기는 한상경의 피츠제럴드이고 화자의 친친나트가 된다. 이 아기만 곁에 있다면 그 어떤 문학적 성취라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 미신처럼 한상경과 화자의 주변을 두른다. 


 (           ) 납치나 해볼까.


 로 시작됐던 화자의 사고 변화는 한상경에 이르러 구체화 되고 피츠제럴드를 떠맡게 된 이후 실재화 된다. 화자가 화자의 친친나트를 아내에게 선보였을 때, 아내는 피츠제럴드도 친친나트도 아닌 아기를 안고, 안심시킨다. 그제야 아기는 아기가 된다.   


 오한기의 말은 어딘지 쉽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다. 화법의 차이일까. 납치라는 흔한, 심심한 모티브를 주체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어투는 유쾌하고 권태롭지만 재기발랄하다. 이러한 화자 특유의 말투는 아마도 독자로 하여금 좀더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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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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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취향으로는 `나일 강의 죽음`과 `내부소행`이 제일 재밌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퀼 포와로와 미스 마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나일 강의 죽음`에 손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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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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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라는 제목은 나희덕 시인의 <봄길에서> "그 누가 안간힘으로/꽃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일까"라는 시 구절을 차용하였다.

 

 

 

우연찮게도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은 개강한 주의 월요일, 친구 가람의 손을 붙들고 희덕님의 연구동에 방문한 덕분이었다. 개강하기 이틀 전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두서없는 수다들로 시간들을 보내었던 듯 하다. 자신의 시를 제목으로 차용한 때문이라며 출판사에서 보내준 세 권의 책 중 두 권을 나에게, 그리고 가람이에게 한 권씩 건네주셨다. 옮긴이가 희덕님께서 고등학교 교사일을 하시던 시절의 제자였던 인연도 있다 했다.

 

 처음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교수님이 주신 책이니 읽는 시늉이라도 해볼까 하고 집어들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점점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지금으로써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현대판 노예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에 마음이 울컥울컥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인간은 인간의 값을, 그리고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다. 그러나 이 책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을 강제로 억압당한 채 수많은 눈물 속에 착취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일들이 그려져 있었다. 영웅들은 말한다.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관심이 그 시작이고 자그마한 일이 첫 걸음이 된다고.

 

정말 좋은 책이다.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씨앗을 품게 될 것이다.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고통 받는 꽃 한 송이를 발견 즉시 도울 수 있다는 자그마한 관심의 씨앗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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