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각해보니까 언제부턴지 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 것 같다. 책 읽는 양은 큰 차이가 없는데, 최근에는 소설보다는 에세이, 경제, 신화, 인문학 쪽의 책을 주로 읽고 있다.
아마 몇 년 전, 인디라이터 강좌를 들으면서 생긴 습관인 것 같다.
그래도 소설이 좋은 건 일단 재미있다는 거다. 다른 분야의 책은 읽으면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책장도 넘어가지 않아서 중간에 도로 책을 덮기도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런 적이 없는 것 같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얼마 전에 읽었다. 2008년 11월에 초판이 발행되었다고 한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어권 국가에도 번역 출간되어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뒤늦게 책을 구입했다. 확인해보니 2011년 8월, 182쇄란다. 3년여 만에 182쇄를 찍었다니 도대체 얼마나 많이 팔려나간 것일까?

 

워낙 유명한 소설이다 보니 어떤 내용인지는 대강 알고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 것이 처음부터 눈에 띈다. 주인공의 직업도 그렇고 작가의 말에서도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며 썼다고 말한다.

 

이 책은 참 슬프다.
평생 자식 뒷바라지만 하던 엄마가 어느 날 사라졌다. 그것도 자식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가 이야기하듯 한다. 자식들 하나하나에게, 남편에게, 모든 이들에게 마치 작별인사를 건네듯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결국 찾지 못한 엄마는 그렇게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펼친 책의 첫 문장이 참 가슴을 때린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그리고 책 말미, 에필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 개월째다.”

 

결국 찾지 못한 엄마, 다시는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만 엄마...
이 책을 읽으며 처음부터 내 눈길을 끈 부분은 우습게도 잃어버린 엄마의 생년월일이었다.
생년은 내 아버지와 같고, 생일은 나와 같다.
그래서였을까?
책 읽는 내내 조금은 더 몰입하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원래 사람은 자신과 무언가 연관이 있을 때 더 관심을 갖게 되는 존재니까 말이다.

 

2년 전, 아버지께서 구안와사를 앓으신 덕분에 지금도 얼굴 오른쪽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연로하셔서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셔서 얼핏 보면 잘 모르지만 이야기를 하실 때, 음식을 드실 때는 무척 불편해 하신다.
구안와사를 앓으신지 정확하게 일 년 일주일이 되던 날, 뇌졸중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문제는 상당히 경미한 수준이어서 아버지 당신도 조금 이상하다고만 하실 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토요일 아침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자꾸 오른쪽 손발이 저리고 걸음을 못 걷겠다고 하셨다. 한의원에 다녀오고, 다음 날은 일요일이니까 그냥 넘어갔다. 월요일이 되니 오른쪽을 아예 쓰지 못할 지경이 되셨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뇌 이상이 의심된다며 빨리 큰 병원으로, 응급실로 들어가라고 한다.
부랴부랴 종합병원에 들어갔다. 뇌졸중이라고 하니 응급처치를 하려다가 이틀 전에 이상이 왔었다고 했더니 바로 중단하고 만다. 너무 늦었다는 거다.
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보름을 있었다. 정밀검사 결과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고 수술이나 기타 치료 없이 약을 복용하면서 상태를 지켜보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봄부터 아버지께서는 왕복 3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다니신다. 동네 노인문화센터엘 다니시는데 교통편도 애매하고, 사실 걸음걸이가 불편하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더 힘들다. 그래서 걷기 시작하셨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회복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상당히 좋아지셔서 겉으로 보기엔 전혀 뇌졸중을 앓았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다.

 

우리집 아래층에는 70이 채 안되신 할아버지께서 사신다. 이 분은 꽤 술을 많이 드셨고, 덕분에 간이 무척 나빠졌다고 한다. 게다가 치매증상을 보이신다. 집 근처 골목길에서 집을 못 찾아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하셨고, 배고프다며 음식을 준비하시다가 깜빡하는 바람에 불을 낼뻔 한 적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아버지를 떠올렸다. “만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뭐랄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렇게 조금씩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슬픔? 종국에는 자기 자신마저 놓아버리는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며 갖는 불안감, 죄스러움, 그리고 목울대를 치는 슬픔...
이 책을 읽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정말 끝없이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라도 무언가 해드리고 싶고 곁에 함께 있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값은 충분하다.

 

책을 좋아하시는 어머님께 이 책을 드렸다.
다 읽고 내려놓으시며 눈가를 훔치신다. 그러며 이런 말씀을 하신다.
“다 두고, 어찌 가누? 눈에 밟혀서 걸음에 채여서...”
내가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듯, 어머니께서는 제 자식들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으신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격 파괴의 저주
고든 레어드 지음, 박병수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가격 파괴의 저주
고든 레어드 / 박병수 / 민음사 

 ‘고든 레어드는 세상에서 가장 해박한 사람으로 꼽히는 저널리스트’라는 저자 소개글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풍요의 왕국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으며 월마트로 대변되는 가격할인점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와중에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미국인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부는 할인 매장 밖의 세계라는 제목이다. 가격할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이렇게 값싼 제품이 매장에 걸리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교역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지 조명한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물질이라고 볼 수 있는 플라스틱의 위험성과 중국으로 대변되는 값싼 인력시장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3부는 기회비용이라는 제목으로 무언가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선 나의 생활을 돌아봤다.
나 역시 싼 가격에 열광한다. 남들처럼 천 원짜리 닭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서는 대열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입고 먹고 마시는 대부분은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는 집 근처 홈플러스 매장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이런 매장들은 단순히 물건만 팔고 있지 않다. 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갖가지 강좌를 진행하고 있고, 이 강좌들 역시 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설 학원에 비해 엄청 싼 수강료를 자랑한다.
지난봄부터 나는 이 문화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 기타를 배운다. 그리고 매주 한 번 찾아가는 문화센터 덕분에 모든 생활필수품의 구입은 그곳 매장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가까워서, 편해서, 없는 게 없어서 이용한다.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가격이 싸니까 더 찾는다.

이곳 매장에서 만나는 그 수많은 물건들, 그것들은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마데인차이나!
내가 강의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클리어파일, 필기를 위해 사용하는 값싸고 잘 써지는 볼펜, 핸드폰을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케이스, 집 앞 산에 오를 때 입기 위해 산 등산복과 등산화, 컴퓨터 작업을 위해 구입하는 메모리와 프린터의 잉크, 복사지, 입는 옷을 보관하는 서랍장, 책상 위에 놓여서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하는 스피커, 또는 휴대용 이어폰...
심지어 우리 집에서 말썽꾸러기 막내노릇을 톡톡히 하는 말티즈 강아지까지... 모두 집 앞 홈플러스를 통해 내게 왔다.
그리고 그렇게 내 일부가 된 그 것들의 대부분은, 적어도 80% 이상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사진 한 장이 생각난다. 여성들이 머리를 묶기 위해 사용하는 색색가지 고무줄, 겉의 피복을 벗겨내자 놀랍게도 그 안에는 사용하고 난 것임이 틀림없는 콘돔이 들어있었다.
내구성이 뚝 떨어져서 한 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온갖 소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두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싸구려 노동력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갖는 중국에서 건너왔다.
이런 싸구려 제품들이 우리 일상을 파고들어서 이젠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를 단단히 점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은 결코 합리적이지도 않고, 적절하지도 않으며 정당하지도 않다. 적어도 이 책에서 밝히는 내용에 의하면 그렇다.

중국에서는 초기 산업화 시절에는 주로 항구가 가까운 곳에 이런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었다고 한다. 이제는 중국도 많이 발전해서 항구 근처에서는 조금 더 값비싼, 첨단의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로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가격할인의 전초기지는 계속 중국내륙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쉽게, 너무도 쉽게 싼 제품을 구입한다. 그리고 그 제품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적어도 내 생활을 편하게 해줄 것은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딱 거기까지...
그 제품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 나와 우리 사회에 어떤 불행이 들이닥칠지 생각할 마음이 없다.
여유가 없다. 우리의 마음은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불편하지만, 씁쓸하지만 그런 부분을 생각하라고 한다. 과연 우리가 지불하는 물건 값이 정당한지, 그 물건이 내 시간을 잘 쓸 수 있게 해주는 만큼 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우선 생각해볼 부분은 가격의 적정성이다. 우리는 제품에 달린 꼬리표에 적힌 그 금액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입한다. 하지만 그 가격에는 적어도 중국내에서 생산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공해, 자연파괴 물질에 대한 비용은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다. 만일 우리가 제대로 환경에 관한 비용까지 지불한다면, 지금 중국은 저렇듯 오염된 공기로 인해 골치를 썩이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공기청정기마저도 다른 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뉴스에 등장했었다. 그렇게 심각한 환경은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봄철 황사를 무서워한다. 모래바람이어서가 아니라 함께 섞여서 날아오는 중금속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물건은 컨테이너에 담겨서 거대한 화물선을 타고 세계로 퍼져나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의 바다는 엄청난 양의 중국산 물건들을 싣고 달리는 배로 인해 시끄럽다. 이 시끄러운 화물선 소리는 심지어 돌고래의 번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돌고래의 음파는 바닷속에서 꽤 멀리까지, 적어도 몇 백Km정도 퍼져나가면서 짝짓기를 할 상대를 찾는데, 화물선의 시끄러운 소음은 돌고래의 음파를 상쇄하고, 그에 따라 돌고래가 짝짓기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고 한다.

단순히 시끄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화물선이 움직이기 위해 사용되는 석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 및 기타 환경파괴물질들...
항구에서 내려진 물건들은 거대한 트럭에 실려 다시 곳곳의 매장으로 향한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탄소가 배출되고 도로가 파손되고, 그 먼지는 우리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알게 된지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 플라스틱은 거의 대부분의 제조물품의 표면으로 사용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제품은 다시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담겨서 진열된다.

그렇게 전 세계의 생활권은 과도하게 한 나라의 값싼 인력에 매달려 불안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싼 가격에 노동을 파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러면 이렇게 싸게 구입하는 물건이 정말 우리를 풍요롭게 할까?
나, 가족, 친구, 한동네 사람들이 다니던 회사가 제조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한다. 당연히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던 그들은 실업자가 된다. 그리고 중국으로 이전한 그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정말 싼 가격에 할인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즉 가격은 싸졌을지 모르지만 우리 주위에 실업자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대형 할인점은 팔지 않는 것을 꼽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모든 것들을 다 판다. 특히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빠짐없이 진열해두고 있다.
예전, 그냥 동네 구멍가게, 시내의 상점을 돌아다니며 사야 하던 그 물건들을 한 곳에서 더 싸게 구입하기 위해 우린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삶은 결코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
경제는 그렇게 가격 하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아닐까?

원자력을 포기하고 태양광으로 대변되는 재생 에너지를 선택한 독일인, 그들은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했다. 더 비싼 에너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안락함 대신 약간의 불편을 선택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지금까지 우리는 한 번도 안락함을 포기하고 불편을 선택한 적이 없다. 따라서 그 선택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이제 한 번 선택해봐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은 밤
김유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유진 / 문학동네

책을 선택하게 되는 기준은 참 다양하다. 주변에서 누군가 읽고 있는 책의 표지를 보고 궁금해서 주문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 해서 사게 된 책이 최근 읽기 시작한 축의 시대이다

서점에서 무심코 집어든 책이 마음에 들어서 사게 되기도 한다.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그렇게 구입했다

나는 가끔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걸 듣다가 책을 사기도 한다. “7년의 밤
그랬고
, “가격 파괴의 저주가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방송에서 소개하는 책은 대체로 평균 이상은 하는 것 같다. 소설은 대체로 읽기 쉽고 재미있었고, 에세이나 경제, 정치류의 책은 책을 읽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 숨은 밤 역시 라디오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듣고 구입했다. 밤늦은 시간, 야간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부드럽게 속삭이며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는 저자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 책의 제목 숨은 밤은 말 그대로 어두움 뒤에 숨어있는 밤이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이 책의 원래 제목을 모닥불 뒤에 숨은 밤이라고 지으려 했다던가

저자가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나에게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다음
, 나는 알라딘에서 이 책과 함께 다른 책 몇 권을 함께 주문하고 있었다

펼쳐들었다.
읽는 내내 고민을 했다.
나는 내가 이토록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딸리는지 정말 몰랐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책은 도대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을 읽었을 때보다 더 막막했다

생각해보니까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일 년 정도의 긴 시간동안 열권으로 된 백과사전 전집을 읽었었다. 그 당시 읽었던 백과사전보다 이 책을 이해하기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슬프다는 느낌도 들었다

책을 책장에 꼽았다가 이틀 만에 다시 빼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처음보다 더 오래 걸려서 한 번을 더 읽었다

...
모르겠다.

이 책을 다시 책장에서 빼든 것은 두 번째 읽은 지 열흘 정도 지나서였다

아무래도 이대로 넘기는 게 싫었다. 세 번쯤 읽으면 뭔가 알아낼 수 있겠지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그냥 읽어 내려갔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막 읽어나갔다

그렇게 막 읽어서 그런지 빨리 끝났다. 불과 두어 시간 만에 다 읽었다.
그리고 다시 첫 장을 펼쳤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왜 아침마다 눈에 돌 눈물이 맺혀서 딱딱하게 굳는지...
도대체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네 번을 읽고 나서야 나는 이 책, 숨은 밤을 포기했다.
그리고...
책은 읽는다고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처음 배웠다.
그리고 책과 독자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책, 숨은 밤은 나와는 지독할 정도로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이 책의 작가를 만나게 되면...
꼭 묻고 싶다

네 번을 읽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도대체 뭡니까?
사랑의 전조?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사라지는 감정?

그런 것들이 이 책, 숨은 밤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꼭 들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연애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8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내가 읽은 추리소설은 보통 하나의 사건을 두고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또는 사건을 저지르는 범죄자와 해결하는 해결자 사이의 두뇌싸움이던가...
따라서 추리소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상관없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  

사건 현장, 수사, 추리, 범인체포 수순일 경우에는 불과 며칠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조금 길다고 해봐야 몇 년 수준이다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몇 년 정도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더불어 추리소설은 일단 꽤 충격적인 사건현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참혹한 현장을 묘사하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밀실 사건이거나...
참혹한 현장을 묘사하는 책 중에서 최근 읽은 책은 일본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가 쓴 살육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이었다.
꽤나 잔혹한 묘사 때문인지, 그 내용 때문인지, 도서 중에서는 드물게 ‘19표시를 달고 있었고, 로그인을 해서 성인인증을 받지 못하면 책표지 이미지도 볼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이러한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을 다 피해가고 있다.

우선 이 책은 패전 직후의 일본이 무대가 되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혼조 기와무가 친척 집에서 기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의 어릴 적 이야기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한다. 비록 시골마을이 무대가 되지만,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의
패망
, 그로 인한 혼란과 주둔미군과의 사이에서 패전국 국민이어서 갖게 되는 자괴감과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 패전국민이라는 특징이 어쩌면 사건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혼조 기와무는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를 평생 잊지 못하고 독신으로 산다. 깜깜한 밤, 풋내나는 하룻밤을 보내고 사랑하던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서 잘 산다

먼 훗날 나기라 다다스라는 예명으로 화가로써 일본 전역에 명성을 떨치게 되는 그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간다.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 때로는 지루하고 소소한 삶의 끝에서 그는 일생을 마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법 그럴듯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추리소설을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읽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반전이 마지막에 등장해주니까 나름대로 추리소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분명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전개방식을 택했다.
한남자의 일대기를 담고 있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완전범죄를 끝까지 들키지 않고 끝내는 범죄라고 본다면, 이 책의 제목인 완전연애는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연애라는 단어는 원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둘이 함께 이루어 가는 사랑이라고 본다면 제목이 잘못된 것 아닐까

혼자 하는 짝사랑은 아예 시작도 못한 연애일테니 말이다

어쨌든 흔히 보는 짧고 굵은 호흡으로 긴박하게 달리는 추리소설, 오금이 저리고 긴장이 되어서 화장실에도 못 가고 빠져드는 것이 추리소설의 전형이라고 여겨왔던 나로서는 이렇게 길고 편한 호흡으로 한 남자의 일생, 그것도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사랑의 이야기를 추리소설이라는 관점으로 읽는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책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선택한 책이 읽을 만한 그 작가는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라고 말이다.
이번에 조정래 선생님의 황토를 읽게 된 것도 꼭 그랬다.
어느 날, 자주 가는 인터넷 서점의 신간 안내에서 조정래 선생님의 황토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 소개를 보는 순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주문을 했다. 마침 구입하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어서 함께 주문을 했고, 요즘은 정말 책배송이 빠른 덕택에 바로 다음 날 손에 넣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다 읽었다.
사실 그리 두껍지 않은 한 권짜리 소설인데다가 조정래 선생님의 글 잘 넘어가게 풀어쓰시는 문체이니 책장이 빨리 넘어갔다.

이 책은 일제, 625전쟁 그 이후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한 여자가 살아남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세 남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이 책은 원래 중편으로 발표되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개작하여 장편으로 내놓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이 이야기가 과연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걸까?
어머님께 책을 드렸다. “어머니, 조정래 선생님께서 책을 새로 내셨네요. 황토라는 소설인데, 짧아서 책장이 잘 넘어가요. 한 번 읽어보세요.”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께서 책을 돌려주셨다. “다 읽었다. 그런데 좀 아쉽다. 조금 길어도 좋을 것 같은데...”
흠,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한 권의 분량에 모두 담아내기엔 너무도 큰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렇게 한 권으로 마무리 지으신 걸 보면 조정래 선생님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주인공 점례, 그녀가 낳은 세 남매는 모두 아빠가 다르다. 사실은 아빠의 국적이 모두 다르다. 첫 아들의 아버지는 일본군 장교, 둘째 딸, 그리고 너무도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또 하나의 딸의 아빠는 같은 조선인, 그러나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결국 전쟁 통에 헤어지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녀는 미군의관의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홀로 그 세 남매를 끌어안고 억척같이 살아남는다. 아니, 제법 잘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어디 잘 사는 모습일 수 있을까?

그 고난의 세월을 살아내는 그녀는 그대로 한국의 역사이자 자화상이다.
조선의 무지한 농민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말 그대로 우리 서민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녀의 지아비를 자처하던 세 남자.
그들은 일본인, 공산주의 한국인, 그리고 미국인까지...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운 나라, 이 땅의 지형을 만드는 데에 일등공신들이다.
그들은 힘으로, 사랑으로, 돈으로 그 녀의 주인 행세를 한다. 그러나 모두 그녀를 떠났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일본인 남편이 떠났고, 625전쟁이 끝나가면서 한국인 남편이 떠났다. 마지막으로 돈 많은 미군의관 역시 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혈육을 끌어안고 가는 이는 없었다.

이 책은 분명 점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땅,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점례는 공책 한 권과 펜을 든다. 딸에게 글을 남기기 위해서...
굴곡지고 눈물나는 자신의 이야기, 한반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이 한 권으로 끝난 게 참으로 아쉽다.
한 세 권쯤? 좀 더 넉넉하게 하자면 다섯 권 이상으로 발표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조정래의 황토.
책장에 꼽혀있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 태백산맥... 그 대하소설의 엄청난 분량과 비슷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