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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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책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선택한 책이 읽을 만한 그 작가는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라고 말이다.
이번에 조정래 선생님의 황토를 읽게 된 것도 꼭 그랬다.
어느 날, 자주 가는 인터넷 서점의 신간 안내에서 조정래 선생님의 황토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 소개를 보는 순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주문을 했다. 마침 구입하고 싶은 책이 몇 권 있어서 함께 주문을 했고, 요즘은 정말 책배송이 빠른 덕택에 바로 다음 날 손에 넣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다 읽었다.
사실 그리 두껍지 않은 한 권짜리 소설인데다가 조정래 선생님의 글 잘 넘어가게 풀어쓰시는 문체이니 책장이 빨리 넘어갔다.

이 책은 일제, 625전쟁 그 이후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한 여자가 살아남은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세 남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이 책은 원래 중편으로 발표되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개작하여 장편으로 내놓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이 이야기가 과연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걸까?
어머님께 책을 드렸다. “어머니, 조정래 선생님께서 책을 새로 내셨네요. 황토라는 소설인데, 짧아서 책장이 잘 넘어가요. 한 번 읽어보세요.”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께서 책을 돌려주셨다. “다 읽었다. 그런데 좀 아쉽다. 조금 길어도 좋을 것 같은데...”
흠,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한 권의 분량에 모두 담아내기엔 너무도 큰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렇게 한 권으로 마무리 지으신 걸 보면 조정래 선생님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주인공 점례, 그녀가 낳은 세 남매는 모두 아빠가 다르다. 사실은 아빠의 국적이 모두 다르다. 첫 아들의 아버지는 일본군 장교, 둘째 딸, 그리고 너무도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또 하나의 딸의 아빠는 같은 조선인, 그러나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결국 전쟁 통에 헤어지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녀는 미군의관의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홀로 그 세 남매를 끌어안고 억척같이 살아남는다. 아니, 제법 잘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어디 잘 사는 모습일 수 있을까?

그 고난의 세월을 살아내는 그녀는 그대로 한국의 역사이자 자화상이다.
조선의 무지한 농민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말 그대로 우리 서민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녀의 지아비를 자처하던 세 남자.
그들은 일본인, 공산주의 한국인, 그리고 미국인까지... 지금 우리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운 나라, 이 땅의 지형을 만드는 데에 일등공신들이다.
그들은 힘으로, 사랑으로, 돈으로 그 녀의 주인 행세를 한다. 그러나 모두 그녀를 떠났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일본인 남편이 떠났고, 625전쟁이 끝나가면서 한국인 남편이 떠났다. 마지막으로 돈 많은 미군의관 역시 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혈육을 끌어안고 가는 이는 없었다.

이 책은 분명 점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땅,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슬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점례는 공책 한 권과 펜을 든다. 딸에게 글을 남기기 위해서...
굴곡지고 눈물나는 자신의 이야기, 한반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이 한 권으로 끝난 게 참으로 아쉽다.
한 세 권쯤? 좀 더 넉넉하게 하자면 다섯 권 이상으로 발표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조정래의 황토.
책장에 꼽혀있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 태백산맥... 그 대하소설의 엄청난 분량과 비슷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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