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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로드 - 처음 만나는 차 인문학
오월 지음 / 라의눈 / 2015년 10월
평점 :
홍차 로드- 처음 만나는 차 인문학
오월 (지은이) | 라의눈 | 2015-10-12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문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언젠가 블로그에 썼던 글 “우리는 왜 커피를 마실까?”에서도 문화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는 이런 거다.
우선, 문화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집단”이다. 이 조건은 어차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로 인해 해결된다. 철저하게 홀로 사는 인간은 없다.
이 “집단”이 무언가 남들과 다른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다양한 장치들이 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아주 고통스러운 성인식을 치른다고 한다. 군대도, 대학도, 심지어 동네 조기축구회에도 자기들만의 의식이 있다.
이런 의식이 만들어진 건 분명 다른 이들과 차별되는 우리만의 공동체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되었을 게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만 남고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이 독특한 의식은 이유도 모른 채 이어지게 된다. 물론 없어지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집단의 크기가 일정 규모 이상 커지거나 또는 유명세를 치르게 되면 이 의식 역시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이 의식에 무언가 그럴듯한 명분이 붙으면 문화가 되는 것 아닐까? 명분이 따르지 못하면 그냥 관습 정도가 될 것이고...
현대 사회는 지역이 무의미할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갈 통로가 만들어져 있고, 이를 통해 문화라는 이름의 의식은 널리 알려지고 공유하게 된다.
난 여전히 설탕, 커피, 프림을 섞는 인스턴트커피가 더 익숙하다. 하지만 원두커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맛있어서?
연말인 요즘, 커피 체인점에서는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신년 다이어리를 팔거나 쿠폰과 교환을 해준다. 다양한 악세사리를 팔기도 한다. 물론 꽤 잘 만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법 비싼 금액에 거래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게 단지 원두커피가 맛있어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종종 듣게 되는 “커피문화”라는 표현도 있다.
이 책, 홍차로드를 이야기하면서 어쭙잖게 문화를 서두에 언급한 건 홍차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국은 홍차의 나라다.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홍차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국에 의해 문화가 된 홍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왜 영국은 직접 차를 생산하지도 못하면서 차를 좋아하는지, 그 때문에 세계사는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모두 네 권의 홍차에 관한 책을 냈다.
인도 여행기, 홍차 체험기를 거쳐 이제는 홍차에 대한 역사와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엮었으니 홍차 전문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홍차의 역사, 영화, 소설, 시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지, 심지어 맛나게 마시기 위한 레시피까지...
다양한 홍차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아쉬운 점.
조금 더 깊고 상세하게 알려주었으면 어땠을까? 분량도 지금의 두 배쯤으로 늘리고 말이다. 마치 홍차 백과사전처럼...
이건 출판사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편집이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저자가 책에 소개한 방법으로 밀크티를 만들어 보았다. 무척 쉽다. 그리고 생각보다 훌륭하다.
중3인 딸아이가 무척 좋아해서 그 날 이후 매일 만들고 있다. 식어도 마실 만 하다. 딸아이는 아침마다 등교하기 전에 빵 한 쪽과 밀크 티 한 잔씩 마시고 나간다.
나는 차에는 문외한이다.
홍차를 마셔본 기억도 별로 없다. 아마 지난 일요일부터 지금까지 일주일간 마신 밀크 티의 양이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지금까지 마신 홍차의 양보다 많을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밀크 티는 무척 자주 마시게 될 것 같다.
이것만으로, 내가 밀크티를 마시게 되었고, 딸아이의 아침 식사 목록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 홍차로드의 가치는 충분하다.
앞으로는 제대로 된 홍차에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