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1 - 르네상스의 거장
세르주 브람리 지음, 염명순 옮김 / 한길아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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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1, 2 - 세르주 브람리, 임명순 역 / 한길아트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뭐냐면..., 07년에 읽은 책 [인디라이터]의 본문에 이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 잠깐 등장한다.
밀라노의 군주 앞으로 보내기 위해 쓴 그의 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는 편지에서 번호까지 매겨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열거하고 있다.
가볍고 쉽게 운반할 수 있는 다리 모델에 관한 내용, 공성전에 사용되는 공격과 수비 작전에 필요한 능력, 요새나 진지를 무너트릴 수 있는 방법, 돌을 발사할 수 있는 포에 관한 내용, 해전에서 유용한 기구들과 군함의 제작에 관한 내용, 땅 파기, 전차 제작, 화기의 제작, 다연발 화살포, 게다가 평화 시에는 오락과 건축으로, 조각과 회화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능력이 뛰어남을 알리는 내용이다. 이런 편지의 목적이야 당연하게도 ‘나를 귀하께서 채용하여 주시옵소서.’하는 내용일 것이다.

[인디라이터]에서 이 인용문을 읽으면서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 유명한 화가, 모나리자 단 하나만으로도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는 주인공, 심지어 그를 주제로 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
그런 역사적 인물이 사실은 군주에게 ‘나 좀 써 주세요.’라는 편지를 써야 했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 호기심에 구입했지만, 1권 앞부분을 조금 들춰보고는 바로 흥미를 잃었다.
빽빽한 활자와 딱딱한 문체, 게다가 온통 이탈리아의 중세 역사와 관련된 용어 투성이인지라 쉽게 읽을 수 없는, 멋대가리 없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집중이 되지 않아서 한 번에 많이 읽어야 몇 십 페이지 이상 넘기질 못했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책이 있다면 단연코 이 책이다.
또 하나, 내가 이 책에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중간 중간 눈에 띄는 오타였다. 그 덕분에 이 책 두 권을 읽는 데에 걸린 시간이 아마 두 달은 넘은 것 같다.
중간 중간 다른 책을 읽기도 하고, 읽다가 영 재미없으면 그냥 처박아두기도 하고...
그렇게 두 달 정도가 지나니 어쨌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이 책은 르네상스의 거장이라고 일컫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탄생에서 시작해서 그가 눈을 감는 시기 직후까지, 결국 그의 일생을 담은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그가 태어나서 자라고 활동했던 시기에는 원래 그런 일들이 만연했는지 모르지만, 다빈치는 그의 아버지의 정식 부인이 아닌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그 덕분에 제대로 정규 학습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일찌감치 공방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예술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 눈을 감을 때, 그는 자신의 마지막 후원자인 프랑수아 1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고 한다.
물론 그의 생 자체가 엄청난 변화와 쉽게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사건들로 점철되기도 했지만, 정식 부인의 자식이 아닌,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서출로 태어난 그가 왕의 품에 안겨 죽었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삶이 평탄하거나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을 워낙 오래도록 읽었고, 보는 내내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그도 그다지 성공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의 수보다 훨씬 많은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평생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작품을 시작했지만 그의 손으로 끝을 낸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항상 호평만 받았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계약금을 받고도 일을 하지 않아 송사를 당하기도 하고, 노년에는 젊은 미켈란젤로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주위에서 “도대체 그 사람이 제대로 끝을 낸 작품이 무엇이냐?”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방면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림뿐만 아니라 조각, 건축, 도시계획, 온갖 기계와 기구류, 심지어 상당수의 인체를 해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관심은 그가 직접 남긴 온갖 메모와 편지 등의 기록물로 남아서 증거가 되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위안을 얻은 한 가지는 이런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만큼 천재적인 인물도 결국 사기꾼 소리도 듣고, 협잡꾼 소리도 듣고,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지을 줄 모르는 성질 급하고 변덕이 심하다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인물도 그러할진대, 나 같은 보통 사람이야 오죽하랴 싶다.

중세 시절, 특히 문화와 관련된 분야에서는 이탈리아가 그 중심에 있었나 보다. 내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 대부분 그 시절의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게다가 미술사에서 배운 미켈란젤로와 같은 사람들도 결국 같은 시절의 인물들이 아닌가?

삼국지에서 주유가 제갈공명을 보고 이런 장탄식을 했다고 한다. “하늘은 주유를 내셨으면서 어찌 공명을 함께 내셨단 말인가?”
이탈리아에서는 어찌 같은 시대에 이렇게 유명한 예술가들이 함께 있었는지...
어쩌면 그들이 동시대에 존재했기 때문에 서로 라이벌이 되어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 이렇게 유명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죽어서도 그다지 조용하게 쉬지 못한 것 같다.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결국 그의 무덤은 훼손되고 그의 유골은 유실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라고 꼽을 만한 한 사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일생을 주욱 훑어본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갖게 된 제일 큰 불만을 말하자면...
이 죽일 놈의 오타!물론 그 오타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다른 책들이 완벽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이 오타를 가끔 드러내니 책 읽기에 더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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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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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작성하기 전에 먼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야겠다. 
가끔 한 작가의 도서 여러권, 또는 같은 주제의 도서 여러권을 한꺼번에 리뷰를 쓰기도 하는데, 리뷰에서 상품을 달랑 하나만 선택하게 되어있다보니 참 아쉽다. 
혹시라도 알라딘 관계자께서 이 리뷰를 보신다면(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중선택이 가능하도록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눈먼 자들의 도시 / 눈뜬 자들의 도시 /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포르투갈 태생의 소설가이며, 1998년 95번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고 한다. 이 작가의 작품 특징을 꼽자면, 위의 네 권에 국한된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선, 마침표와 쉼표를 제외하고는 전혀 문장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읽다보면 이게 등장인물간의 대화인지, 작가의 설명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는다. 그냥 남자, 여자, 군인, 대통령, 총리, 장관... 이런 식으로 지칭한다. 위에 언급한 네 권의 책 중에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만이 유일하게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나마 주인공의 이름뿐이다. 작가의 이름과 같은 주제씨...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름을 갖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도 이름이 없다.
소설 속에서 그 흔한 이름도 얻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심심한 위로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

우선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이야기해보자. 이 책은 얼마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줄거리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가 시력을 잃는다. 그리고 마치 전염병처럼 온 도시로 퍼져나간다. 나라에서는 이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수용소를 만들어 그들을 강제 수용하지만 급속도로 번져가는 실명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전 국민이 실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당연히 수용소에 지급되던 식량이며 모든 보급품은 언제부턴가 중단된다.
딱 한 명만 멀쩡하게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한다.
수용소 안에서, 모두 앞을 볼 수 없는 상황과 날마다 줄어드는 보급품의 양은 결국 그 좁은 공간에서의 권력싸움, 종속관계를 만들어낸다. 모두가 초보 시각장애인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날 때부터 원래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유리하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무기를 갖고 있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 몇이 모여 보급품을 독점하고 보급이 아닌 거래를 요구한다. 값어치가 나가는 물품들과 한 끼 식사를 교환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자들과의 섹스를 교환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
실명하지 않은 여인이 주도하여 반란도 일으키고...
그런 와중에 보급이 중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수용소 밖으로 탈출한다.
그렇게 거리를 헤매며 여자는 모두를 이끌고 이전에 자신이 살던 집으로 간다. 집단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모두 정상시력을 되찾는다.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가장 중요한 사건이 생기게 되면 그 사건이 왜 생겼는지 정도는 간단하게 설명을 하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런 친절을 기대할 수 없다.
어느 날 그냥 사람들이 눈이 멀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그리고 그냥 사람들이 원래의 시력을 되찾았다. 끝.

앞서 언급했듯이 호흡을 고르기도 어려울만치 그냥 주루룩 나열된 문장, 꽤 읽기 어렵다. 게다가 이야기도 상당히 뜬금없다. 그런데... 잘 읽힌다. 재미있다.

두 번째로 읽은 작품은 [눈뜬 자들의 도시]이다. 이건 앞서 언급한 [눈먼 자들의 도시]의 속편 격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등장 인물간의 감정변화, 생활의 변화와 같은 일상적인 영역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이 이야기의 비중이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로 간다.
눈이 멀었던 원인도 찾지 못하고 그냥 시간은 흐른다. 4년이 지난 어느 날,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확인을 하니 80% 이상의 유권자가 백지투표를 했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긴장할 수밖에 없는 비상사태임을 의미하게 된다.
결국 무고한 시민들의 뒷조사와 계엄령 선포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쥔 손을 놓기 싫어하는 그들의 허무맹랑한 몸부림은 계속된다.
마지막에는 세발의 총성과 함께 [눈멀지 않았던 여인]의 죽음이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자신을 따르는,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의 눈과 귀, 입, 손, 다리가 되어주었던 여자는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두 권의 책은 따로 따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결코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다. 눈이 멀어버린 세상에서 오직 단 한 명의 눈뜬 이는 모두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그녀는 구원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다시 ‘눈뜸’의 기쁨이 주어진 이후 그들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 한다. 보통의 시민들은 권력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도록 강요받게 되고,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도록 강요한다.
강요를 하기 때문에 강요받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강요받도록 되어있는 것인지 그 선후는 불분명하다.

마지막에 죽게 되는 여자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 소모품이 되어야 하는 역할? 게다가 그 소용이 다하는 순간에는 결국 폐기처분되고 마는 것?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두 눈이 멀쩡하더라도 누군가의 손가락 끝만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래서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과연 ‘볼 수 있다’는 것과 ‘보지 못 한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다음으로는 제목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를 이야기하자.
다른 리뷰에서도 같은 점을 지적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국내 출판사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발상]에서 붙은 제목이다. 원 제목은 All the Names, ‘모든 이름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법하다. 하지만 [~ 자들의 도시]라는 그 연장선상에서 독자들의 구매를 강요하기 위해 지어진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앞의 두 권과 전혀 공통점이 없다.
궂이 공통점을 찾자면 역시 쉼표와 마침표만으로 정리한 주제 사라마구의 독특한 문장 구성 정도?
게다가 이 책은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비록 주인공 한 명뿐이기는 하지만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주제씨는 중앙 호적 등기보관소에서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오십줄에 접어든 독신남이다.
모아둔 재산도 없고, 사는 집마저도 등기소 건물에 붙어있는 일종의 관사에 불과하다.
그는 특별한 목표도, 삶의 열정마저도 모조리 사그라진 초라한 인생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딱 하나 나름대로 열정을 갖는 취미가 있다. 유명인사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을 모으는 것.
다섯 명 정도의 기록을 수집하고 있는 중인데, 그의 취미는 중앙 호적 등기보관소라는 그의 직장과도 잘 어울린다. 적어도 출생에 관한 기록, 그리고 죽고 난 후에 받게 되는 사망신고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여자의 기록이 눈에 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다섯 명의 기록을 뒤지던 중에 딸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호기심은 점차 커져서 욕망이 되고, 그는 그 여자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이웃들에게 적당히 거짓말을 해가며 방문조사를 하기도 하고, 그 여자의 출신학교에 몰래 들어가서 기록을 훔쳐 내오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여자의 기록은 그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죽음의 중지]를 이야기하겠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이 오히려 [~자들의 도시]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내용도 그렇고, 전개도 그렇고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보다는 훨씬 [~자들의 도시]에 어울리는 것 같다.
[죽음을 잃은 자들의 도시] 정도면 어떨까?
[죽지 않는 자들의 도시]라던가...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 책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아니 모든 생명체의 역사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죽지 않는 것,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죽음을 슬픈 것, 아픈 것, 괴로운 것으로 인식한다.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의 기저에는 ‘누구나 다 죽는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한 번 상상해보자.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 세상, 과연 행복할까?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첫 날, 이 나라에서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의학적 상식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죽었어야 마땅할 사람들이 죽지 않는 것이다. 아니 죽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죽어야 하지만 죽지 못하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 고통을 겪기 시작한다. 죽음이 사라지면서 많은 변화가 생긴다. 우선 장의사들이 타격을 입고, 보험업계가 고민하게 된다. 병원에서도 병실이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지고, 의학적으로 죽었어야 하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들을 강제 퇴원시키면서 환자의 가족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어느 시골의 한 가족이 있다. 벌써 죽었어야 할 할아버지가 고통스럽게 죽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몸이 약해서 벌써 죽었어야 할 그 집의 아이 하나도 그렇게 연명하고 있다.
견디다 못한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불러 이런 말을 한다.
나를 국경 너머로 데리고 가다오. 그 곳에는 여전히 죽음이 있다. 이 나라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죽고, 남은 가족들은 슬퍼하며 살고 잇다.
단지 이 나라에서만 죽음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 죽음을 되찾는 사람들, 그들을 국경까지 데리고 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단지 ‘죽어야 할 사람’을 데리고 국경을 살짝 넘었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국경을 넘어 죽음을 맞게 하는’ 사업이 거대 이권사업이 되어 마피아의 돈벌이가 되고, 국경수비대와의 갈등도 빚어진다.

어느 날, 스스로를 죽음이라고 소개하는 한 통의 편지가 나타난다. 그 동안 사람들의 죽음을 집행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다시 정상적으로 죽음을 집행하겠다는 내용이다. 단, 지금까지처럼 어느 날 갑자기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전에 미리 우편으로 죽음으로 통보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죽기 일주일 전, 자주색 봉투에 담긴 죽음 안내문을 받게 된다.
여기에도 역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냥 맘 편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지인들과 이별을 하고, 법적 분쟁이나 세금과 같은 문제를 정리하라며 죽음 안내문을 발송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와는 관계없는 일주일을 보내게 된다. ‘어차피 죽을 것!’ 따라서 흥청망청대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갑자기 죽음을 의인화시키고, 또 다른 사건으로 전개하는 것이 영 마뜩찮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시 엉뚱하게 방향을 잡는다.

죽음의 사신은 어느 날, 반송우편을 발견한다. 49세에 죽어야 할 첼리스트에게 보낸 ‘죽음통보 우편물’이 반송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보내는 족족, 번번이 말이다.

죽음은 여자로 분장하고 첼리스트를 찾아간다.
그의 무대를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 죽음은 자신이 원래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 책은 다시 이 문장을 제일 마지막에 등장시킨다.
처음 등장하는 문장에서의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의 의미와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의 의미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무겁다. 불편하다. 어렵다.
어쩌면 주제 사라마구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 휙휙 대며 책장을 넘기는 것, 가볍게 읽어버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문장부호 따위에 신경 쓰기 싫어서일지도...
그도 아니라면 등장인물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고, 문장부호에 신경 쓰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며 글 쓰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상당히 내공이 두터운 장난꾸러기일 수도...

목차도 없고, 소제목도 없고...
없는 것 투성이인 그의 책이 이렇게 재미있고,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어쩌면 너무 쉽고 친절하기만 한 세상에 대한 주제 사라마구와 독자들의 반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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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임신했다
임선경 지음 / 살림Life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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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임신했다 - 임선경 / 살림Life 

이 책이야 뭐, 내가 인연의 끈을 맺은 인디라이터 2기 선배의 작품인데다가, 특강이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사서 읽었다.
사실, 인디라이터 동문들의 책은 모두 읽어봐야 하는데 천성이 게으른지라 제대로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동문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뜻을 표합니다.)

우선 프로필을 훑어봤다.
응? 인간이 달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찍었던 것과, 그 날도 아니고 일주일이나 지나서 태어난 게 뭔 연관이 있지?
어쨌든 ‘딸’이 아니라 ‘또 딸’로 태어나셨단다.
프로필을 보면서 존경스러운 한 가지, 30년이나 일기를 쓰고 있다고 당당히 밝힐 수 있다는 것. 사실 일기쓰기만큼 어려운 게 없는데...

이 책은 임신일기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매일의 기록은 아니지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날 며칠 전부터 시작해서 병원에서 아기를 낳고 그 아기의 힘찬 심장박동을 느끼는 순간 끝이 난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받게 되는 충격 그리고 작은 변화들, 아니 어쩌면 정말 큰 변화들을 잘 펼쳐놓았다.
몸의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다양한 일들...
나는 십여 년 전에 딸아이의 탄생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어느 집이건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집은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집안이 유지되고 세대가 이어지는 것이다.
내 방 책장 위에 노끈으로 꽁꽁 묶어서 쌓아둔 상자 어딘가 내 딸 수민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돌 전후까지의 기록과 용품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꽤나 꼼꼼하고 부지런한 수민이 엄마가 그 시절을 그냥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제일 먼저 큼직한 스프링 노트를 한 권 구입했다. 그리고 꼬박꼬박 신체의 변화며 병원에서 검진 받은 내용을 기록했고, 초음파 사진을 붙여두었었다. 수민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사용하던 용품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때가 되면 큼직한 상자에 하나씩 둘씩 넣어두었었다.
언젠가 수민이가 커서 ‘나 아기 때는 어땠었어?’하고 물어보면 꺼내어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수민이의 타임캡슐’을 만들어 두었었다.
그 때는 똘똘이라고 불렀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부터, 나중에 이름을 지을 때까지 우리는 똘똘이라고 불렀다.

임신한 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새벽에 추어탕 먹고 싶다고 해서 차 몰고 새벽시장엘 뛰어가고, 어디어디서 파는 튀김, 그 중에서도 오징어 튀김, 고구마튀김과 계란말이만 사다달라고 콕 집어서 말하는 바람에 퇴근길에 사서 들고 갔었다. 사들고 들어가면 영락없이 입맛이 달아났다며 밀어내어서 모두 내 차지가 되었고, 그 덕에 임신부와 함께 나란히 몸무게가 불어나는 심각한 문제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뜨거운 여름이 되면서 기체조를 배운다고 한 아파트 사는 임신부들끼리 모여서 낑낑대며 땀 뻘뻘 흘리며 다녀오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발길질을 해대는 통에 배가 아프다고 투덜대는 걸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하고...

한 층 위에 사는 부부는 남편이 새벽시장에서 일을 했는데, 수민이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했었다. 어느 날인가 새벽에 진통이 오는데, 남편은 자리에 없고... 결국 새벽 세시에 내가 병원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결국 그 날 아기가 태어났고, 병원에서 아기 아빠로 오해를 사기도 했었다.

아파트에 살면서 친해진 몇 몇 집들이 죄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는 바람에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나 역시, 일 때문에 외출한 상태에서 다른 집에서 급하게 아이엄마를 병원에 데려다 주기도 했고, 나도 서너 번 같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위에 적은 것처럼 대신 데리고 가서 출산까지 이어진 건 딱 한 번이다.

그 며칠 후 똘똘이도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엄마에게서 탈출했다.
열여덟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꼬박 옆에 붙어서 같이 호흡을 했고, 그 덕에 지금도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으면 목부터 쉰다.
남자가 이럴진대 산모는 오죽할까?
수민이 엄마는 결국 허리를 다쳐서 디스크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 간호사가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 보여주었을 때, 시뻘건 몸뚱이에 군데 군데 얼룩이 묻은 아기를 보며 첫 인사를 이렇게 했다.
“안녕? 네가 똘똘이구나.”
수민이는 내출혈과 황달증세가 있어서 3주 정도 입원을 했었다.
강남의 산후조리원에서 모유를 얼려주면 퇴근길에 그걸 들고 화곡동의 미즈메디 병원으로 달려갔다. 간호사에게 한주먹도 안 되는 노란색의 얼린 모유를 건네고, 젖병에 담아 먹이는 걸 보고 집으로 가는 생활을 했었다.

흠...
읽은 건 분명 임선경 작가의 [아내가 임신했다]이고, 지금 쓰는 것도 분명 [아내가 임신했다]의 리뷰인데, 온통 내 딸 태어나기까지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아마도 임신에서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대부분 비슷하고 사회문화적 환경이 비슷한 까닭이 아닐까?

오늘 뉴스를 들으니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꼴찌란다.
1.2명이 채 안 되는 수준이고 세계 평균 2.26명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의 어딘가는 7.4명으로 1위라고 한다.
물론 출산율이 높다는 것이 무조건 긍정적이지는 않다.
출산율 1위라는 나라는 기대수명이 55세 정도라고 하고, 우리나라는 남자 76세 여자 82세 정도라고 한다.
다시 말해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은 낮고 기대수명은 높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1.2명이라면 심각한 수치라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를 하나 낳는다는 것은 참 많은 걱정과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외국에 살아보지 않아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자녀 하나를 키우는 데에 들어가는 부담은 실로 엄청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키우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분수에 맞게 키워도 어쨌든 아이는 자란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절대적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가난하다거나, 어렵다는 건 모두 상대적이다.
전부 가난하게 쩔쩔매며 사는 나라에서는 삼시세끼 밥 굶지 않고 살수만 있어도 상대적으로 부유하다. 하지만 온통 돈으로 쳐 바르고 사는 나라에서는 그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결국 그 아이의 인성에 영향을 미친다.
힘들게 아이를 낳아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기이해진 인성을 갖고 살게 하느니 낳지 않는 게 낫다.

제발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좀 어이없는 이유이지만, 다 읽고 난 지금...
이 땅의 모든 임신부와 그의 남편은 모두 이 책을 일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온 집집마다 언젠가 현실이 될 [아내가 임신하는]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 필히 구비하라고...

사족...
편집상의 오류, 또는 실수가 눈에 띈다.
9월 16일 금요일 <산후조리를 둘러싼 골치 아픈 문제들>의 172~173페이지에 보면 일곱 개의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네 번째 해결책이 없다!
해결책 셋 다음에 바로 해결책 다섯으로 건너뛴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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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101가지 시리즈
곽윤섭 지음, 김경신 그림 / 동녘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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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 곽윤섭 지음, 김경신 그림 / 동녘 

이글루스 레츠리뷰에 이 책이 소개되었을 때 욕심이 났다.
3년 전 쯤, 흔히 DSLR이라고 말하는 렌즈 교환식 카메라와 번들렌즈를 구입해서 수도 없이 셔터를 눌렀다. 수없이 렌즈를 바꾸었고, 결국 바디도 한 번 바꾸었다.
한동안 새로 나오는 그 값비싸고 온갖 성능이 탑재된 카메라를 바라보며 침만 꿀꺽꿀꺽 삼켰었다.
언젠가부터 필름카메라에도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필름카메라도 둘러보기 시작했다. 왠지 필름카메라는 렌즈 교환식 보다는 흔히 똑딱이라고 말하는 자동카메라가 더 좋아 보여 두어 대의 자동카메라를 사고 팔았다.
그러는 와중에 쉽고 편하게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를 서너 대 사고팔았다.
우스운 건, 처음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구입해서 번들 렌즈 달랑 하나만 갖고 있을 때보다 더 셔터 누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갖기 위해 셔터를 누르는 척 했던 것 같다.

내 손을 거쳐 가는 카메라와 렌즈가 다양해질수록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기껏해야 2GB 용량의 메모리는 항상 여유 공간이 넉넉했다. 언제나 50%를 넘기지 못 하고 있었던 거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카메라와 렌즈도 잘 다룰 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걸 찾아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문득,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갖고 있던 카메라와 렌즈를 모두 팔았다. 지금 쓰고 있는 렌즈 교환식 카메라 한 대, 17-70 대역의 렌즈와 50mm 수동 렌즈 하나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오래되어서 팔리지도 않을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도 한 대 남겨두었다.
갖고 있던 필름 카메라도 팔 수 있는 건 모두 팔고, 오래된 구식 카메라, 그나마 작동도 되지 않는 놈 하나가 책상 위에 장식용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게 갖고 있던 카메라와 렌즈를 정리하고 나니까 셔터 누르는 횟수가 늘었다.
언제 어딜 가든 항상 갖고 다니는 버릇이 남았다.
길거리 지나다가 눈을 끄는 풍경은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가 제 몫을 해준다.
제법 먼 길을 나서게 되면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들게 된다.
이젠 제법 사진을 많이 찍게 된다.

사진을 많이 찍게 되면서 항상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과연 사진을 잘 찍고 있는 걸까?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부르지 않을까?
항상 내 곁을 지키는 카메라가 주인을 잘 못 만나서 쓰레기 사진만 양산하는 카메라로 전락해버린 건 아닐까?

누군가 내 곁에서 충고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이, 한 발만 더 앞으로 나가라고...”
“아니 아니... 그렇게 말고, 조금만 더 위로 올려봐!”
“빛이 너무 약하잖아. 노출 좀 확인하지?”

이런 조언을 해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싶었다.

서점에 들르게 되면 사진 서적 코너를 둘러보지만 마땅한 책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죄, 값비싼 장비 이야기를 하고,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남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디지털 카메라라는 이유때문인지 하나같이 후보정 이야기를 빼먹지 않고 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포토샵을 써서 후보정을 하건, 디지털 아트를 만들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뷰 파인더를 함께 보아 줄 친구가 필요했다.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 무심한 듯, 툭! 한 마디 던져줄 그런 친구 말이다.

이 책,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를 펼쳐들었다.
내용이라야 정말 읽을 것도 없다. 게다가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그 어디에도 사진은 없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삽화처럼 간결한 흑백 그림만 있을 뿐이다.

101가지의 이야기 중에서 첫 번째를 펼쳐봤다.
“지금 내가 무엇을 찍고 있는지, 주인공이 누군지 끊임없이 생각해라.”
음...
적어도 내가 찍고 있는 사진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건지 정도는 고민해봐야겠군.

서른일곱 번째...
“많이 찍어라.”
그래? 하긴 누군가는 매일 같은 장소를 몇 년 간 찍기도 했다더라. 빛의 변화, 시간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모두 담았다고 하더라.

일흔여섯 번째...
“사진은 시이며, 수필이다.”
그럼 사진만 잘 찍어도 시인이 되고, 수필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제일 마지막인 백한 번째...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모두 잊어도 된다.”
이런 젠장 심각하게 꼼꼼하게 고민하며 읽었는데 모조리 잊어버려도 된다니...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다.
“단 이것만은 기억하라. 가장 좋은 사진은 재미있는 사진이다.”
마지막 충고라고 제법 고민한 것 같아 보인다.
재미있는 사진이라...
그 사진을 찍은 본인은 물론이고, 함께 둘러앉아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함을 줄 수 있고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사진을 말하는 것이겠지?

이 책은 크기도 작고, 펼치는 면도 짧은 쪽이라 색다른 맛이 있다.
게다가 딱딱한 표지는 조금은 마구 굴려도 될 법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내가 자주 들고 다니는 카메라 가방 앞의 공간에 딱 맞게 들어간다.
제법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이 책은 책꽂이가 아니라 그 가방안에 넣어둘 생각이다.
사진 찍겠다고 나갈 때 깜빡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사진을 찍다가 담배 한 대 피울 때, 혹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마실 때...
휙휙 넘겨가며 들춰봐야겠다.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는 책이 아니다. 어쩌면 핵심만 깔끔하게 정리한 요점정리 노트같은 느낌이다.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는 말을 참 많이 아낀다. 달랑 짧은 한 문장만 툭 던져주고는 그 나머지의 여백은 나의 상상과 셔터를 누르는 손으로 직접 채워나가야 할 것 같다. 

(이 리뷰는 이글루스 레츠리뷰에 선정되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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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지만지 고전선집 372
현장 지음, 조기영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반야심경 현장(玄奘) 외 / 조기영 / 지만지 

이 책은 [지만지 고전선집] 리뷰어 활동 두 번째 미션으로 받은 책이다.
솔직히 내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르지 않았을 것 같다.
우선, 나는 불교인이 아니다. 따라서 불교 경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나는 한문과 별로 친하지 않다. 내가 군대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러니까 지금부터 대략 20여 년 전쯤에 동몽선습이니 하는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몇 권 구입했던 적이 있다. 물론 다 읽었다. 나는 책을 중간에 덮는 걸 극도로 싫어하므로...
하지만 다 읽고 나서도 내가 무얼 읽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사태를 경험하고부터는 가능하면 한문이 원전이 되는 책들은 그다지 가까이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달의 신간이라는 안내를 보다가 [반야심경]에 눈길이 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어머니도 그렇고 나이가 있으신 어르신들, 특히 불교를 믿는 분들은 반야심경을 입에 달고 사신다.
“마하반야바라밀다...”
그리고 이 구절을 보면 머릿속에는 향내 가득한 절이 떠오른다.

불현 듯 호기심이 넘실대기 시작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일까? 무슨 주문 같은데 무얼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까?
어차피 리뷰어로 선정되어서 책을 고르면 되니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지난 달 리뷰를 제일 빨리 올렸다는 이유로 [우수 리뷰어]로 선정되어 두 권을 고를 수 있다는 이유도 한 몫을 했다.
그리하여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와 함께 신청했다.

이 책을 받은 것은 지난 5월 말이었고 받자마자 펼쳐 들어 읽기 시작했다.
반야심경 한 권을 다 읽는 데에는 불과 두어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 능력으로는 한문으로 기술된 부분을 건너뛸 수밖에 없으니 절반 가까운 분량을 그냥 지나친 셈이다.
모두 134쪽으로 된 책에서 한문으로 기술된 부분이 적어도 50여 페이지 분량은 될 것 같고, 게다가 본문 역시 여백이 상당하다.
또한 본문보다 훨씬 긴 영역을 차지하는 각주도 있다 보니 분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해가 되든 말든 일단 한 번을 읽었다.
책을 덮고 나니 아니나 다를까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읽은 게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했다.
이번엔 각주도 꼼꼼히 봐가며, 한문으로 기술된 부분에서는 내가 아는 한자가 있는지 확인도 해가면서 말이다.
그렇게 두 번을 읽었다. 내용은 조금 기억나는데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한 번 더 읽을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 리뷰를 작성하기로 했다.
이 책의 내용이 그렇게 쉽게 이해되는 부분도 아닐 것 같고, 사실 내가 책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머리말을 읽어보니 반야심경이 워낙 종류도 많고 다양하다는 내용이 있다.
본문 중간 중간에 한문 표기가 다른 종에서는 다른 글자를 쓰고 있다는 안내가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옛날, 원본을 필사해서 책을 만들던 시절에 잘못 표기하기도 했던가보다.

차례는 이렇게 구성되어있다.



먼저 해설의 내용을 잠깐 들여다보자.

해설
지은이에 대해
반야바라밀다심경
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
불설반야바라밀다심경찬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반야심경주해
반야심경 게송
옮긴이에 대해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 1권은 불교의 핵심적인 이치를 간결하고 명징하게 요약한 불교 경전의 정수에 해당한다. 특히 649년 현장(玄奘)이 황제의 조칙을 받고 종남산(終南山) 취미궁(翠微宮)에서 번역한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공(空)사상으로 대표되는 600권의 반야경전을 260자로 요약하여 돈탈(頓脫) 정각(正覺)의 대도를 설교한 대표적인 경전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반야심경> 또는 <심경>이라고 부르고 있다. (7P 해설 발췌)

라는 설명이 있다. 결국 반야심경은 600권의 경전에서 정수만 뽑아내어 260자의 한자로 정리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불교의 역사와 함께 원래 인도의 범어로 기록되어 전해오던 것이 불교를 받아들인 각 나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번역과 해석이 더해져 그 종류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마하’는 크다, 많다, 뛰어나다, 초월하다의 뜻을 갖고 있고, ‘반야’는 지혜, 깨달음, ‘바라밀다’는 저 언덕, 곧 열반에 이른다는 뜻이며, ‘’은 핵심, 진수를 말하고, ‘’은 성인의 가르침이자 피안으로 이르는 길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큰 지혜로 열반에 이르는 부처님의 진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야 불교신자가 아니니 부처님의 가르침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궁금한 것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이다.

<반야심경>은 지은이에 대한 소개도 만만치 않다.
현장당나라 시대의 승려삼장법사로서 <대당서역기>라는 인도 기행서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삼장법사? 귀에 익은 이름이다 싶었는데 서유기에 등장하는 그 스님 아닌가?
물론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는 이 사람을 모델로 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들여다 보니 각주로 삼장법사에 대한 설명이 있다. 삼장은 불교 경전을 총칭하는 것이고 이에 통달한 이를 부르는 명칭이 삼장법사란다.
그럼,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현장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네?

그 외에도 구마라습이라는 인도의 승려, 원측이라는 신라 승려, 중국 남북조 때의 보리달마라는 이름의 승려와 무구자라는 원나라와 명나라 이전의 인물로 추측되는 승려까지 소개하고 있다.

본문내용을 보면 전체적인 맥락은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법정스님무소유를 말씀하셨다던가?
불교의 경전인 <반야심경>을 들여다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생겨나지도 않았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글로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이 고뇌하고 번민하며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것은 바로 있지도, 없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았고 없어지지도 않을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리자에 대한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마음이 맑으면 이익이 도리어 많아진다-心淨利還多
글쎄, 감히 어쭙잖은 해석일지 모르지만 이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의 마음이 맑다는 것은 결국 진실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자신만의 이익을 좇아 거짓을 따르는 사람은 당장 눈앞의 이익은 많은 듯 보일지 모르지만 궁극에 가서는 진실한 사람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

이 말이 09년 6월의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권력의 정점에 섰다가 내려온 한 사람은 유명을 달리하고,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실을 보이지 못하는 한 사람은 그 꼭대기에서 사방으로 벽을 쌓고 있는데...
조금 더 지나보면 알 것이다.
과연 어떤 이가 더 큰 이익을 가질 수 있는지...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익은 물질적인 이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불교를 잘 모른다. 더구나 불교의 경전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반야심경>의 경우에는 자주 들은 기억도 나고, 한 때는 책 제목에 <반야심경>의 구절이 쓰인 적도 있다. 아마 영화로도 만들어졌었지?

어쨌든 이 책 <반야심경>으로 인해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글을 만나보았다.
뭐랄까?
선문답 같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약간 허탈해지기도 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용어까지...
책 두께에 비해 그다지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 나니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는 기분도 들고, 조금은 마음 편하게 살아도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몇 번 더 읽어볼만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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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니스 2009-11-12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노력하시는 그 모습이 아름답군요. 해외거주 동포

노랑잠수함 2009-11-12 14: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 블로그에 계속 올렸던 리뷰를 이번에 싹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