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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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작성하기 전에 먼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야겠다. 
가끔 한 작가의 도서 여러권, 또는 같은 주제의 도서 여러권을 한꺼번에 리뷰를 쓰기도 하는데, 리뷰에서 상품을 달랑 하나만 선택하게 되어있다보니 참 아쉽다. 
혹시라도 알라딘 관계자께서 이 리뷰를 보신다면(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중선택이 가능하도록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눈먼 자들의 도시 / 눈뜬 자들의 도시 /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포르투갈 태생의 소설가이며, 1998년 95번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고 한다. 이 작가의 작품 특징을 꼽자면, 위의 네 권에 국한된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선, 마침표와 쉼표를 제외하고는 전혀 문장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읽다보면 이게 등장인물간의 대화인지, 작가의 설명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는다. 그냥 남자, 여자, 군인, 대통령, 총리, 장관... 이런 식으로 지칭한다. 위에 언급한 네 권의 책 중에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만이 유일하게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나마 주인공의 이름뿐이다. 작가의 이름과 같은 주제씨...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이름을 갖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도 이름이 없다.
소설 속에서 그 흔한 이름도 얻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심심한 위로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

우선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이야기해보자. 이 책은 얼마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줄거리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가 시력을 잃는다. 그리고 마치 전염병처럼 온 도시로 퍼져나간다. 나라에서는 이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수용소를 만들어 그들을 강제 수용하지만 급속도로 번져가는 실명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전 국민이 실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당연히 수용소에 지급되던 식량이며 모든 보급품은 언제부턴가 중단된다.
딱 한 명만 멀쩡하게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한다.
수용소 안에서, 모두 앞을 볼 수 없는 상황과 날마다 줄어드는 보급품의 양은 결국 그 좁은 공간에서의 권력싸움, 종속관계를 만들어낸다. 모두가 초보 시각장애인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날 때부터 원래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유리하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무기를 갖고 있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 몇이 모여 보급품을 독점하고 보급이 아닌 거래를 요구한다. 값어치가 나가는 물품들과 한 끼 식사를 교환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자들과의 섹스를 교환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
실명하지 않은 여인이 주도하여 반란도 일으키고...
그런 와중에 보급이 중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수용소 밖으로 탈출한다.
그렇게 거리를 헤매며 여자는 모두를 이끌고 이전에 자신이 살던 집으로 간다. 집단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모두 정상시력을 되찾는다.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가장 중요한 사건이 생기게 되면 그 사건이 왜 생겼는지 정도는 간단하게 설명을 하게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런 친절을 기대할 수 없다.
어느 날 그냥 사람들이 눈이 멀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그리고 그냥 사람들이 원래의 시력을 되찾았다. 끝.

앞서 언급했듯이 호흡을 고르기도 어려울만치 그냥 주루룩 나열된 문장, 꽤 읽기 어렵다. 게다가 이야기도 상당히 뜬금없다. 그런데... 잘 읽힌다. 재미있다.

두 번째로 읽은 작품은 [눈뜬 자들의 도시]이다. 이건 앞서 언급한 [눈먼 자들의 도시]의 속편 격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등장 인물간의 감정변화, 생활의 변화와 같은 일상적인 영역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이 이야기의 비중이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로 간다.
눈이 멀었던 원인도 찾지 못하고 그냥 시간은 흐른다. 4년이 지난 어느 날,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확인을 하니 80% 이상의 유권자가 백지투표를 했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긴장할 수밖에 없는 비상사태임을 의미하게 된다.
결국 무고한 시민들의 뒷조사와 계엄령 선포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쥔 손을 놓기 싫어하는 그들의 허무맹랑한 몸부림은 계속된다.
마지막에는 세발의 총성과 함께 [눈멀지 않았던 여인]의 죽음이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자신을 따르는,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의 눈과 귀, 입, 손, 다리가 되어주었던 여자는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두 권의 책은 따로 따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결코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다. 눈이 멀어버린 세상에서 오직 단 한 명의 눈뜬 이는 모두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그녀는 구원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다시 ‘눈뜸’의 기쁨이 주어진 이후 그들의 눈은 진실을 보지 못 한다. 보통의 시민들은 권력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도록 강요받게 되고,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도록 강요한다.
강요를 하기 때문에 강요받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강요받도록 되어있는 것인지 그 선후는 불분명하다.

마지막에 죽게 되는 여자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 소모품이 되어야 하는 역할? 게다가 그 소용이 다하는 순간에는 결국 폐기처분되고 마는 것?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두 눈이 멀쩡하더라도 누군가의 손가락 끝만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래서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과연 ‘볼 수 있다’는 것과 ‘보지 못 한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다음으로는 제목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를 이야기하자.
다른 리뷰에서도 같은 점을 지적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국내 출판사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발상]에서 붙은 제목이다. 원 제목은 All the Names, ‘모든 이름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법하다. 하지만 [~ 자들의 도시]라는 그 연장선상에서 독자들의 구매를 강요하기 위해 지어진 제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앞의 두 권과 전혀 공통점이 없다.
궂이 공통점을 찾자면 역시 쉼표와 마침표만으로 정리한 주제 사라마구의 독특한 문장 구성 정도?
게다가 이 책은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비록 주인공 한 명뿐이기는 하지만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주제씨는 중앙 호적 등기보관소에서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오십줄에 접어든 독신남이다.
모아둔 재산도 없고, 사는 집마저도 등기소 건물에 붙어있는 일종의 관사에 불과하다.
그는 특별한 목표도, 삶의 열정마저도 모조리 사그라진 초라한 인생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딱 하나 나름대로 열정을 갖는 취미가 있다. 유명인사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을 모으는 것.
다섯 명 정도의 기록을 수집하고 있는 중인데, 그의 취미는 중앙 호적 등기보관소라는 그의 직장과도 잘 어울린다. 적어도 출생에 관한 기록, 그리고 죽고 난 후에 받게 되는 사망신고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여자의 기록이 눈에 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서 언급한 다섯 명의 기록을 뒤지던 중에 딸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호기심은 점차 커져서 욕망이 되고, 그는 그 여자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이웃들에게 적당히 거짓말을 해가며 방문조사를 하기도 하고, 그 여자의 출신학교에 몰래 들어가서 기록을 훔쳐 내오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여자의 기록은 그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죽음의 중지]를 이야기하겠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이 오히려 [~자들의 도시]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내용도 그렇고, 전개도 그렇고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보다는 훨씬 [~자들의 도시]에 어울리는 것 같다.
[죽음을 잃은 자들의 도시] 정도면 어떨까?
[죽지 않는 자들의 도시]라던가...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 책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아니 모든 생명체의 역사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죽지 않는 것,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죽음을 슬픈 것, 아픈 것, 괴로운 것으로 인식한다.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의 기저에는 ‘누구나 다 죽는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한 번 상상해보자.
어느 누구도 죽지 않는 세상, 과연 행복할까?

이 책은 그렇게 시작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첫 날, 이 나라에서는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의학적 상식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죽었어야 마땅할 사람들이 죽지 않는 것이다. 아니 죽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죽어야 하지만 죽지 못하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 고통을 겪기 시작한다. 죽음이 사라지면서 많은 변화가 생긴다. 우선 장의사들이 타격을 입고, 보험업계가 고민하게 된다. 병원에서도 병실이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지고, 의학적으로 죽었어야 하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들을 강제 퇴원시키면서 환자의 가족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어느 시골의 한 가족이 있다. 벌써 죽었어야 할 할아버지가 고통스럽게 죽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몸이 약해서 벌써 죽었어야 할 그 집의 아이 하나도 그렇게 연명하고 있다.
견디다 못한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불러 이런 말을 한다.
나를 국경 너머로 데리고 가다오. 그 곳에는 여전히 죽음이 있다. 이 나라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죽고, 남은 가족들은 슬퍼하며 살고 잇다.
단지 이 나라에서만 죽음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 죽음을 되찾는 사람들, 그들을 국경까지 데리고 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단지 ‘죽어야 할 사람’을 데리고 국경을 살짝 넘었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국경을 넘어 죽음을 맞게 하는’ 사업이 거대 이권사업이 되어 마피아의 돈벌이가 되고, 국경수비대와의 갈등도 빚어진다.

어느 날, 스스로를 죽음이라고 소개하는 한 통의 편지가 나타난다. 그 동안 사람들의 죽음을 집행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다시 정상적으로 죽음을 집행하겠다는 내용이다. 단, 지금까지처럼 어느 날 갑자기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전에 미리 우편으로 죽음으로 통보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죽기 일주일 전, 자주색 봉투에 담긴 죽음 안내문을 받게 된다.
여기에도 역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냥 맘 편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지인들과 이별을 하고, 법적 분쟁이나 세금과 같은 문제를 정리하라며 죽음 안내문을 발송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와는 관계없는 일주일을 보내게 된다. ‘어차피 죽을 것!’ 따라서 흥청망청대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실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갑자기 죽음을 의인화시키고, 또 다른 사건으로 전개하는 것이 영 마뜩찮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시 엉뚱하게 방향을 잡는다.

죽음의 사신은 어느 날, 반송우편을 발견한다. 49세에 죽어야 할 첼리스트에게 보낸 ‘죽음통보 우편물’이 반송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보내는 족족, 번번이 말이다.

죽음은 여자로 분장하고 첼리스트를 찾아간다.
그의 무대를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 죽음은 자신이 원래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 책은 다시 이 문장을 제일 마지막에 등장시킨다.
처음 등장하는 문장에서의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의 의미와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의 의미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무겁다. 불편하다. 어렵다.
어쩌면 주제 사라마구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 휙휙 대며 책장을 넘기는 것, 가볍게 읽어버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문장부호 따위에 신경 쓰기 싫어서일지도...
그도 아니라면 등장인물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고, 문장부호에 신경 쓰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며 글 쓰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상당히 내공이 두터운 장난꾸러기일 수도...

목차도 없고, 소제목도 없고...
없는 것 투성이인 그의 책이 이렇게 재미있고,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어쩌면 너무 쉽고 친절하기만 한 세상에 대한 주제 사라마구와 독자들의 반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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