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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스펙터클 -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범죄, 자살, 광기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죽음의 스펙터클>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배경이 되는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사건이나 한국인이 가해자여서 더욱 충격을 주었던 조승희 사건, 또한 올해 봄 강남역에서 일어난 30대 남성의 생면부지의 여성에 대한 묻지마 살인 뒤에 있는 정신적 또는 내면적 배경에 대해 논한 책이다. 그 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의 극심한 생존경쟁 속에서 낙오되거나 또는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식으로 자신보다 사회적 약자이거나 무방비인 불특정 다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 생각해왔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보다 총기규제가 철저하여 대형사고가 나오지 않았을 뿐 초, 중, 고에서 학생들 중 가장 약자인 아이를 골라 왕따를 시키는 사회적 폭력을 한다거나 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에 대해, 심지어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이런 현상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하겠고, 나 자신도 국가나 사회적 문제라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아이를 비롯한 가족의 보호를 위해 이 책을 읽었는데,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어느 정도 설명하고 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으면서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롭게 알게 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보복심리를 가지고 가해를 하는 사람 이외에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수단으로 가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역시 경찰에 의한 자살을 위해 다수에 대한 폭력행사를 하는 경우가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강남역 사건의 범인이 반성이나 참회하는 모습은 전혀 없이 뻔뻔하게 구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새로운 종류의 사이코패스가 탄생한 듯한 충격을 주었는데, 이는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자신이 당한 고통을 화풀이한 것 이상의 정신적으로 무척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책에서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회적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가 경쟁자가 되어, 자신의 이익과 정치적 권리를 위해 스스로 조직하지 못하는 상황, 특히 사회적 유대가 약하거나 그것이 완전히 폐기된 상황에서는 불안한 자신의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나, 이미 사회적 유대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는 타집단에 대한 공격성을 기반으로한 정체성, 소속감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인데, ‘여성혐오’ 또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언어와 정서가 분열될 경우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지며 더 심각하게 발생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민가족의 일원으로 극도의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의 생활과 사용하는 언어와의 괴리가 있었던 조승희나 하루에 많으면 열여섯 시간씩 월드 오브 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등 인터넷에 빠져 살았던 아네르스 브레이크가 그 예이다.
저자는 <올드보이>나 <빈 집>같은 영화를 예로 들면서, 오늘날의 한국을 취약성과 폭력성이 공존하는 이 책의 주제인 총기사건이나 묻지마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꼽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사건의 가해자의 심리에는 자살을 원하는 심리가 있고, 이미 몇 년째 OECD국가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고, 인터넷이나 휴대폰에 빠져 현실과 격리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무척 많으니 이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무척 높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런 문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저자는 참여의 반대, 책임의 반대, 믿음의 반대를 이야기했고, 죽는 것과 노예가 되는 것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노예가 되지 말라고 하였다. 아마도 현 상태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연대하고, 개선하기위해 노력하라는 의미라고 생각되지만, 극심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한국현실을 생각할 때 나에게는 그 길은 애매한 저자의 말처럼 무척 멀고 힘겨워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