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예수 - 개정판
칼릴 지브란 지음, 박영만 옮김 / 프리윌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현대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로만 보고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못 보는 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함석헌 님께서 쓰신 머리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 예수를 이야기하기에, 부활이나 기적을 행하는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 예수의 이야기가 그를 목격한 다양한 사람들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됩니다. 예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일부 나오지만, 주된 내용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주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기존의 성경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는 데, 왜 다시 썼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책의 마지막에 실린 레바논에서 온 사람 (저자를 말하는 듯합니다)이 쓴 <그로부터 1900년 후>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의 이름으로 사원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높다란 모든 곳에 당신의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 마음대로 걸어가는 발걸음의 표시와 상징일 뿐,
 당신의 기쁨으로 가는 길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과 닮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너무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예수님을 숭배할 뿐, 예수님이 알려주신 삶을 따르지도,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 이 책은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기에 추가하여, 그리스 시인 루마노가 쓴 <시인으로서의 예수>라는 글도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의 아름다운 것들 사랑하고, 바다와 하늘의 모든 것을 통찰하는 시인이셨다는 이야기는 예전에는 접하지 못한 이야기라서 참신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디옥의 사바가 쓴 <다소의 사울에 관하여>라는 글도 인상적입니다.
- 예수의 담론은 그 초점이 우리에게 맞춰져 있었고, 사울의 설교는 그 초점이 자신의 주장에 맞춰 있었다. 나사렛 예수는 자신의 담론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하면 열정과 환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그 길을 틔워준 반면, 다소의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통해 우리가 아무 탈 없이 살아가려면 왜 율법을 준수하고 체제에 순종해야 하늕, 본인의 주장을 강조했다. 


1~2년 전부터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의 말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비슷한 내용을 이 책에서 보게되어 이 부분에 대해서 더욱 고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책 후반부에서 급작스럽게 앞부분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매우 강한 주장이 담긴 글이 쓰여 있어, 이 책이 첫인상과는 달리 무척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