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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된 잔
로버트 잭슨 베넷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5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오염된 잔>은 안락의자 탐정이 주인공인 추리소설이지만, 특이하게도 판타지 세상을 다루고 있다. 설정이 매우 매력적인데, 사건을 추리하는 여성 수사관 아나는 눈을 가리고 다니는 은둔형 수사관으로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이고, 그녀를 돕는 시그넘은 뛰어난 기억력과 전투력을 가진 보조 수사관이다. 이 작품에서는 특별한 시술은 받고, 특별한 가스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 밖에도 개인의 능력을 증폭할 수 있는 다양한 시술을 받은 존재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이러한 시술을 할 수 있는 세계라면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만, 다른 과학 기술은 거의 발전하지 않은 중세에 가까워, 마법이 통하는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판타지 소설로 분류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다의 레비아탄이 호시탐탐 침입을 시도하는 설정인데, 이는 중세 판타지의 용과 같은 역할이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는 무조건 두려워한다기 보다는 현대의 과학기술과 유사한 방위시스템을 활용하는 등, 색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CCTV나 DNA 유전자 감식 등 현대과학기술을 범죄수사에 이용하게 되면서 추리소설이 차지할 수 있는 위치가 많이 줄어드는 등,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오염된 잔>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증폭하는 기술 이외에는 다른 과학기술은 언급되지 않아 추리소설, 특히 안락의자 탐정이 활약할 수 있는 좋은 배경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다만, 세계관이 익숙지 않아 탐정과의 페어 플레이 승부를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탐정에게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아쉬운 면이 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보조 수사관은 뛰어난 기억력과 전투 능력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여 (예를 들면,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양기가 더욱 흥미로왔다.
중세 마법에 등장할만한 살인 방법이나, 레베아탄의 습격에 대배하는 세계관을 통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 시리즈가 앞으로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할지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