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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세피아빛 초상’은 ‘영혼의 집’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칠레 역사 속에서의 한 집안의 이야기를 다룬 3부작 중 하나로서 ‘영혼의 집’ 이전 세대의 이야기에 해당된다. ‘영혼의 집’이 영화화된 작품을 예전에 감상하였고, 개인적으로 우리 역사와 유사한 면이 많은 칠레 쿠데타를 다루고 있어 무척 관심 깊게 보았다면 이번 작품은 아옌데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이나 남미 문학 특유의 마술적 분위기와 어우러진 가정사가 흥미있어 읽게된 작품이라고 하겠다.
3부작 중 ‘운명의 딸’이나 ‘세피아빛 초상’은 연결고리가 있지만, 그 다음 세대에 해당되는 ‘영혼의 집’과는 연결고리가 약하고, 정치적 태도도 ‘영혼의 집’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작가가 ‘영혼의 집’에서 다루었던 소재들을 변형시켜 유사한 소재를 다른 시대에서 변주시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묘사되는 여성이 갑자기 죽게 되는 것이나 등장인물 중 카리스마 있는 등장인물이 사업수완을 발휘하여 대단한 성공을 이루는 것, 정치적 격변 속에서 학살이 벌어지는 장면 등 (칠레 쿠데타 이전에도 정치적 갈등으로 칠레에서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학살이 벌어진 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영혼의 집’에서 사용된 소재들이 다른 시대에서 새롭게 이용된 내용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영혼의 집’과는 달리 남미 문학 특유의 마술적인 분위기가 거의 없었고 (그 이전 세대임에도 물구하고), 수동적이고 희생적이었던 여성 주인공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독립적이고 자신의 주장이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 ‘세피아빛 초상’은 여성주의 문학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다만 전체적인 내용이 다양한 집안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주인공의 자각을 다뤄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흥미로운 이야기였고 삼부작의 나머지 이야기 ‘운명의 딸’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