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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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로 접한 정보라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저주토끼를 읽은 느낌으로는 SF 또는 공포물을 쓰는 김동식 작가나 정세랑 작가와 비슷한 계열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 고래를 읽으면서 거기에 덧붙여 우리 사회와 환경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가라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장을 읽기 전까지는 외계 생명체의 정체가 감질나게 등장하는 X-Files의 블랙 코메디 버전이라고만 보았는데, SF로 포장된 소설의 진짜 내부 이야기는 해양 오염과 기후 위기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바다의 생명체의 절규 (당신들의 바다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항하라) 그리고 이러한 외침을 억압하는 권위적인 정부와 동조자들을 향한 저항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작가님 개인사에 기반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작가의 글에 실린 저자의 경험을 보면, 저주토끼 등의 문학보다는 우리사회를 조망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글이 더 맞을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이 작가의 맛깔나는 개성과 사회를 보는 치열한 철학이 절묘하게 만난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설의 내용 중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 중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굴종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이 무척 인상적인데, 그 글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치고 싶다.

 

절망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포기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포기하고, 자유를 갈구하거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도 포기한다. 그리고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뭔가 지향성을 가지 고 삶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갈구하는 사람들을 질투하여 스스로 나서서 탄압하기 시작한다. 자유 나 희망 따위는 없다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시도는 주 변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그들은 숨 막히는 공포사회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가져오려는 사람들을 정부나 비밀경찰보다 먼저 나서서 짓밟는다. 사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렇게 절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너는 왜 나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아? 너는 왜 불행해지지 않아?' 그들은 사회 전반적인 절 망과 불행의 원인이 독재자와 그를 비호하는 정권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주변의 건강한 사람들을 불행하고 망가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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