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나이 환상문학전집 38
안드루스 키비래흐크 지음, 서진석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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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대화가 가능한 (문명 이전의) 숲 속 사람들과 마을에 사는 (문명화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마을 사람들의 경우 성에 사는 기사와 수도원 등이 등장하는 중세 시대가 배경이나, 숲 속 사람들의 경우는 우리나라 단군신화처럼 사람과 동물이 서로 대화하고 결혼까지 가능한 고대설화 같은 분위기이다. 에스토니아의 환상 문학이라 이 나라가 과거에 겪었던 기독교가 퍼진 사회와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이 나라의 고유 문명에서 사는 사람들의 갈등을 표현한 이야기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이야기 자체는 주인공 소년 레메트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의 가족과 그가 사랑한 두 소녀 등이 모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담고 있어, 읽는 내내 안타까운 느낌이 강하게 들고 레메트가 각성한 후의 모습이 폭력적(또는 야만적)이고 잔인하여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다. 또한 레메트가 겪는 비극의 원인이 숲 속 정령이나 기독교를 맹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된 비극이라는 점에서 미신 또는 종교에 의한 패악(민중의 고통)을 풍자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숲속의 정령을 위해 자신을 딸을 희생하는 모습이나 성의 기사들이나 수도승들의 만행 등을 마을 사람들이 무조건 숭상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속한 체제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의식이 이 이야기의 주된 주제라고 생각한다. (다른 내용에 비해 이야기 속에서 미신이나 종교의 폐해가 상당히 자세히 나와서 그런 결론을 얻었다)

 

숲 속 정령과 연관된 미신이나 마을이 믿는 기독교 중세문화, 그리고 레메트의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야만성 등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3가지 가치체계가 모두 부정적이라 에스토니아의 과거를 회고한다기보다는 어리석인 자신들의 모습을 들쳐내어 각성을 촉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뱀의 말을 통해 동물과 교류하는 것으로 표현된 에스토니아의 고유 문화가 시대의 변천을 통해 사라지게 된 것을 은유하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뱀과 곰이라는 2종류의 동물이 등장하여 우리나라 단군신화같이 각각의 동물이 이 나라 문화에서 상징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뱀의 경우는 성경 등에서 등장한 것과 연관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기독교 문명 이전의 고대 인류가 가진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비극적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2번에 걸친 레메트의 사랑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왔고, 전체 이야기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사랑 이야기의 결실을 보고 싶어 상당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읽었는데 비극적 결말이라 다소 안타까운 면이 있다. 문명 비판 요소가 강하게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복잡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판타지 문학의 장점인 재미를 충분히 갖춘 책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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