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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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 정도에 유시민의 알릴레오 북스에 현기영 작가님이 나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쁜 마음으로 방송을 기다리고 청취하였는데, 학창 시절 작가님의 순이삼촌이나 변방에 우짖는 새를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변방에 우짖는 새를 더 좋아했는데 순이삼촌은 단편으로 일상의 단면을 통해 43항쟁의 비극을 전달한 반면, 변방에 우짖는 새는 장편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기승전결의 꽉 채워진 이야기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순이 삼촌을 통해 4.3항쟁을 알게 되고 그 이후로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사건의 발단 등은 듣기는 했지만 사건 전반에 대한 내용은 잘 몰랐던 것 같다. 다만 엄청난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현기영 작가님이 출연하신 방송 말미에 작가님의 새로운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하였고 마침내 읽게 되었는데 3권이라는 분량으로 4.3항쟁의 진실을 담은 대 작품이었다.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갈 때 아이가 역사를 좋아해서 삼별초의 몽고 항전지나 4.3 평화공원을 찾아가기는 했지만, 4.3 항쟁이 발생한 곳의 실제 지명은 정작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업무 출장으로 제주도를 왕래하면서 접한 지명이 조천리, 함덕리가 그 역사의 현장인 것을 알게 되었고, 역사의 비극이 일어난 곳과 가까운 곳이 업무와 연관이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제주도에서 진행된 학회 참석을 하면서 숙박한 호텔 맞은 편에 있던 관덕정과 그 부근이 4.3 항쟁의 발단이 된 3.1 기념행사 장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명에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게다가 관덕정은 변방의 우짖는 새의 배경이 되는 이재수의 난에도 등장하는 곳이기도 했다.


소설은 3인칭이면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긴 한데 일반적으로 접한 소설들보다는 책을 읽는 독자와 소설 속 인물 간의 거리가 조금 먼 느낌이 있었다. (먼 발치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보는 느낌이랄까?) 작가가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자와 등장인물과의 거리가 있어서 이야기 속의 비극이 어느 정도는 무르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무나 가슴이 아파 적어도 2~3달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현기영 작가님의 거의 모든 작품은 제주도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결국 본격적으로 4.3항쟁을 다룬 이 작품을 발표하신 것을 보면 그 분의 운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해방의 기쁨을 맞이한 순수한 제주도민들이 새로운 조국에 대한 희망을 제대로 키워보기도 전에 소위 해방군이라는 미군의 정책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 일정이 진행됨에 따라, 순수하게 이념이 아닌 민족을 우선으로 하는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던 제주도민들이 어느 순간부터 폭도로 몰리고, 과잉진압에 항의하면서 산 속에 들어가게 되면서 투쟁하게 도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전 3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중 1권은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조국의 해방을 기다렸고 기뻐했던 순박한 사람들이었나 모사하고 있다. 이어지는 2-3부에서는 이러한 제주도민들의 순수한 의견 표현을 억압의 대상으로 만 본 미군정이나 한국 관리들로 인하여 과잉 진압과 이에 따른 무력 충돌로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다루는 비극적인 장면 장면은 그리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이야기하여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한 국가, 한 민족 내부의 갈등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야기의 비극성과 별개로, 소설을 읽으면서 이 비극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가장 큰 원인이 미군정이 우리 국민들을 해방을 성취한 민족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관리 편의를 위해 기존 일제 관리, 군경을 그대로 쓴 것을 보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미군이 승리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아군이 아니라 전쟁 결과에 따른 전리품이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반면 우리는 그 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해방된 민족으로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미군뿐만 아니라 육지에서 온 한국 관리나 군경들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해방된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도 달랐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는 우리 국민들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또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마음 속에 너무나 강한 증오의 마음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 비극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역시 현재까지 남아 있으면서 국민들의 단결을 막고 있는 것 같다. 즉, 우리 내부적으로 시민 혁명과 조국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해방을 맞은 부채가 너무 커서 4.3을 비롯한 6.25, 광주의 비극을 거치고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이리라.


결국, 4.3항쟁에 대한 진실과 비극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이 이러한 차이를 없애는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현기영 작가님의 새 작품 제주도우다가 이러한 생각의 골을 메워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많은 분들의 일독을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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