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일로나 예르거 지음, 오지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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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대의 과학을 이끈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과 현대의 사회과학을 이끈 공산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의 만난 이야기.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교양철학이나 교양과학 서적에서 이용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의 연구와 저술활동에 대해 토론하고 평가하는 책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소설인 것을 알고 다소 당황하였다. 책을 읽기는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되겠지만, 저자가 저널리스트로서 독일 <나투어>지 편집장 출신이라 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저술이 아닌 소설을 썼다는 것이 무척 의아하였다.

 

그런데 소설도 그냥 소설이 아니고 저자가 마르크스와 다윈이 노년에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으며, 서로의 저술에 대해서도 읽거나 또는 최소한 읽기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안 후 가능한 한 실제 있었던 사실과 근접하게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욱 인상적이다. 저자가 두 사람이 만났으면 어떠했을까하고 막연히 상상한 것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배경에서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약간의 허구적 상황을 만들어 놓아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시물레이션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두 사람이 가까운 위치에 산 시기가 두 사람이 노년이 접어들어 병치레가 많아,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은 무척 짧은 순간뿐이고 대화도 길지 못했다. 하지만, 서로의 저술에 대한 각자의 평가는 내 생각으로는 아주 정확하게 표현된 것 같다. 다윈의 저술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을 이끈 유물론적 사고의 기초를 만들어 준 만큼 매우 높게 평가하지만, 그의 생애 자체는 유산과 투자 등을 통해 유복하게 산 부르조아의 삶이기에 마르크스가 완전히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같은 이유로 다윈은 마르크스의 급진적인 사고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의 저술이 유물론 사고의 기초를 이루었지만 스스로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 자신의 연구활동을 스스로의 삶에 투영시킨 성찰 단계까지 못 간 것이 아쉬운 점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부유한 삶, 종교와 자신의 연구 결과의 충돌로 인한 갈등을 애써 외면한 듯이 서술되어 있는 것이 흥미롭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의 모순 점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가 주창한 공산주의는 이제 거의 사라지고 있으니 그의 저술 중 말년에 가장 주력하였던 계급투쟁 부분은 사실 상 폐기수준이니 다윈에 비해 그의 영향력은 앞으로는 더욱 줄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다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이 소설에서 두 사람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베케트 박사를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의 발언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데, 두 이론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인류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보다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앵겔스의 헌사가 특히 인상에 남는다. 그동안 진화론은 생존경쟁 등에 주목하여 시장에서의 경쟁, 적자 생존 등의 자본주의 논리의 근거로 많이 이용되었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반대로 진화론이 유물론의 근거로 언급되고, 모든 인류가 공통된 조상을 가지고 있는 평등의 이유로 설명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소설 상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쉽지만, 실제와 매우 유사하게 이야기를 구성하여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났으면 정말로 이러했으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저자가 이야기를 무척 정밀하게 구성한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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