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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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라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과는 다른 책이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저자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비스한 분위기의 글이었다. 한 지역이나 시대를 기준한 저자의 다른 책 대신 김정희라는 인물의 생애를 따르며 그가 남긴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책이라 생각되었는데, 책을 후반까지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본래 저자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연구하였던 주제였던 완당 김정희론이, 추사가 두 차례에 걸쳐 스스로의 저작을 불태워버려 남긴 저술이 많지 않고 서신정도만 남아있을 뿐이고 기존 완당선생선집에 후학들의 실수로 추사의 글이 아닌 것이 끼워져 있는 등, 학위를 심사받을 정도의 소재로 평가되지 않아, 저자 스스로 김정희의 인간상이나 작가상에 더욱 주목하는 문학작품으로 변경하여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문화비평서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4 대명필에 들어가고, 만약 단 한 명을 뽑는다면 추사 김정희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이 책에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실린 글 (서예작품)을 보면서 잘 쓴 글씨라거나, 명필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서문에 실린 정명 임창순 선생의 자기 멋대로 쓴 글씨체가 추사체라거나 추사와 동시대의 문인 유최진의 잘 모르는 사람은 그의 글을 괴기한 글씨로만 볼 것이라는 말이 무척 공감되었다. 책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글씨체가 고정되지 않고 꾸준히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유최진은 글씨의 묘를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되지 않는 법이라 하였는데, 서예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내가 보기에도 여러 작품사조를 거치다 입체파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만들어낸 피카소가 연상될 정도로 다양한 필체를 보이다가 최종적으로는 서예로 글을 쓰면서 그림을 그리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 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의 작품에서 예술미를 발견하려면 좀 더 많은 훈련과 안목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조금은 유치한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135쪽의 <소영은>이다. 추사가 귀양살이로 고생을 하기 전, 패기가 남아있던 시기의 작품이다.

추사의 인생역정에 따른 작품의 감상에 더불어 추사의 인간상에 대해 아주 깊은 이해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추사가 몇 차례의 귀양살이를 살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몰랐었다. 우리나라 5천년 역사에서 4대 명필로 뽑힐 정도의 인물이 이렇게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니 충격적이기도 했고, 최근의 미술가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세계적인 미술가의 삶이 비참했던 것을 생각하면 추사 김정희 역시 그 범위에 벗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삶 속의 고난으로부터 그의 예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추사는 북경에 가서 여러 명가들과 교류하고 배웠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런 이유일까 그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무척 냉정한 평가를 하고 시종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취하여 많은 적을 만들기도 하였던 것 같다. 그러던 그가 수차례의 귀양살이를 하면서 겸손해지고 지난 시절 자신이 무시했던 사람들에게도 사죄를 하는 등,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과정을 겼으면 그의 글씨도 변화를 겪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구속을 벗어난 듯한 자유로운 필체의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물론 글의 주제도 불교나 자연 속을 유유자적하는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뛰어난 재주를 가졌던 자신만만했던 젊은이가 뜻하지 않게 고난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은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마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높은 벼슬에 올라 정치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신 그가 겪은 고난을 통해 그보다 훨씬 위대한 예술작품을 남길 수 있었으니 그가 겪은 고난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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