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뭔데 -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현장이야기
고상만 지음 / 청어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제대로 된 르포가 없다고?

 

요즘 한겨레 21을 펼쳐들면 계속해서 눈에 띄는 것이 '제 1회 한겨레21 르포상 공모'다. 한국에 존경받는 르포 작가가 있습니까? 라는 다소 도전적인 말투의 이 공모 광고는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당시 활약했던 '존 리드'와 같은 르포 작가가 한국에는 없다며 한탄?한다. 현장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 독자로 하여금 현장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진짜 르포 그것의 부재를 아쉬워한다.

 

내가 읽은 책은 어쩌면 '르포'가 아니다. 적어도 르포라는 것이 반드시 '존 리드'처럼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의 다큐멘터리적 문학 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니가 뭔데..."의 저자 고상만은 글을 쓰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이도 아니요, 더구나 문학적 효과를 고려해가며 글을 쓴 것은 더더욱 아니다 - 물론 이것이 내가 저자의 글쓰기 실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인권운동가 고상만의 글은 자신이 인권운동가로서 살면서 겪은 일들 사회의 부조리와 힘 없는 자의 서러움을 그의 가슴을 통해 솔직하고, 거침없이 뱉어낸다. 의문사 유족들, 인권을 박탈당한 장애인 등의 이야기를 그들의 처지에서 이해하려 하고 그들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본 그의 사회에 대한 진술들은 말 그대로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현장이야기", 생생한 르포가 될 수 밖에 없다. 한겨레 21 매 호가 나올 때마다 꾸준히 구입해 보는 애독자지만 적어도 "우리나리에 훌륭한 르포가 없다"는 말은 '실언'일 수 밖에 없다.

 

평생의 약속

 

자신이 인권운동가의 길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계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그의 대학생 시절의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학재단의 비리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 시절. 그는 당시 평생의 빚을 짊어 주는 한 선배를 만난다. '김용갑' 자신보다 4년 선배인 그는 사학재단의 비리에 맞서 투쟁을 하고, 총학생회 입후보를 하게 된다. 당시 학교의 재단은 지방의 폭력배를 동원해 학생운동을 하는 이들을 억압했다. 때문에 입후보 과정에서부터 그 후까지 무수한 억압을 받게된다. 결국 김용갑은 총학생회장을 맡게 되었지만. 학교 측은 건달을 학교 교직원으로 임용해 김용갑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총학생회장직에서 사퇴하지 않으면 차로 갈아버리겠다"는 위협과 함께. 그리고 얼마 뒤 위협은 단순히 위협으로 끝나지 않았고,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처리된 김용갑의 시신만이 싸늘하게 돌아왔을 뿐이었다. 김용갑의 살인 사건을 추궁하던 그는 결국 학교에서조차 제적당하고... 가슴에 김용갑의 뼛가루를 묻고 다짐한다. "평생 형이 못 다한 꿈을 위해 살겠노라"고.

 

이 한 번의 약속을 고상만은 평생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후 10여 년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천주교 인권위원회 상근 간사 등 수 많은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힘 없는 자들을 위해 한 달에 30만원 씩의 기부금만을 받으며 자신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 와중에 많은 일을 겪었다. 민주화 대통령인 김영삼이 정권을 잡고난 후 벌어진 연대사태에서의 여대생 성추행 사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벌어진 김훈 중위의 의문사. 그리고 사법부의 불성실로 인해 불거진 무죄인의 죄인 탈바꿈 사건 등. 그 모든 일들은 다 그들이 '힘 없는 약자' 였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묵인 받은 것이고 지금도 어디선가 은폐되고 있다고 고상만은 말한다. JSA에서 벌어진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의 경우 아버지가 쓰리 스타인 장성이었음에도 국가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았다. 쓰리 스타마저 국가 앞에서 무능력한 마당에 그보다 약한 자들의 경우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모든 일들을 그는 현장에서 지켜보았고 약자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읽는 이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이 책의 제목인 "니가 뭔데..."는 그러한 두려움의 근원이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 분개해 분신한 장애인의 죽음. 그리고 그 주검마저 약탈해가려는 경찰에 맞서 병원안으로 들어가려 했던 고상만이 경찰에게서 들었던 "니가 뭔데..."라는 한 마디는 권력으로부터 개개인의 인권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정확하게, 가슴아프도록 정확하게 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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