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스파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스파이 소설과 스릴러 소설 혹은, 미스터리 소설이 어떻게 다른지 선뜻 구분이 가지 않았다. 무지한 생각인지 몰라도 스파이 소설이라 함은 미스터리 소설의 범주에 들어가거나 등장인물이 스파이인 스릴러 소설 정도가 아닐까 생각할 따름이었다. 책을 읽기 전 막연하게 생각했던 스파이 소설에 대한 정의를 책을 읽은 후인 지금도 명확하게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이 책을 통해 '아,스파이소설이 이런거구나' 하는 감은 잡게 되었다.
스파이소설의 초석을 세웠다고 하는 이 작품은 1962년에 쓰여졌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에 이 세상에 나온 작품이니만큼 요즘의 추리소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배경 역시 1960년대의 베트남으로 당시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났으나 남과 북으로 분열된 혼돈의 시기였다. 누구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던 시절, 하루에도 몇 명씩 실종되거나 신원 모를 사체가 발견되어도 딱히 놀라지 않을만큼 무감각해진 사람들이 서로를 향한 의심의 눈을 빛내는 이 어지러운 상황이 스파이라는 신분을 가진 채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를 담기에 충분해 보였다.
한 무역회사의 평범한 사원인 일본인 사카모토가 베트남으로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동료였던 가토리의 갑작스런 실종 이후 가토리의 업무를 이어받고 사라진 가토리를 찾기 위해 이 곳에 온 사카모토. 그는 베트남에 도착한 날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옆방에 머무리는 토와 득은 사카모토에게 살갑게 대하며 다가오지만 어쩐지 속내를 알 수가 없고 길을 걷다가 누군가 뒤따라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던 길을 멈추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사카모토 앞에서 한 남성이 살해당한다. 죽어가던 순간 그는 사카모토를 향해 의문의 한마디를 건넨 후 숨을 거둔다.
"고메스의 이름은...?" 이란 뜻 모를 말을 남기고 죽은 현지인은 누군지 왜 사카모토를 향해 이같은 말을 남겼는지, 또 범인의 정체는 누구인지... 그리고 고메스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일들이 사카모토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살해당한 남성이 사카모토 대신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현지경찰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일에 말려든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베일에 싸여있는 가토리의 실종과 그의 행적을 쫓아갈수록 위협을 느끼는 사카모토에게 현지에서 기자일을 하는 모리가키는 더이상 가토리를 찾지 말라고 충고한다. 귀국을 앞둔 가토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를 납득할 수 없어 계속해서 그를 찾아나서는 사카모토와 그를 막는 정체모를 인물. 그리고 사카모토의 주변을 배회하는 베트남 사람들. 가토리가 살아있는지 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한 사카모토의 방에서 가코리의 실종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 했던 훈이 교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 책에는 사카모토를 중심으로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번잡스럽지 않다.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다 모든 인물들이 결국에는 한 곳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하나씩 나타나는 단서와 후반부에 들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반전 덕분에 추리소설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청난 반전은 아니지만 잘 맞물린 이야기 구조가 추리소설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잔인한 묘사도, 숨 막히는 범인과의 두뇌게임도 없었지만 충분히 긴장감이 있었던 까닭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당시 베트남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듯 하다. 후반부에 가까워질 수록 급박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가토리의 실종을 두고 진실을 찾아가는 사카모토의 이야기가 짜임새있으면서도 진지하게 이어져서 지루할 새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오래전 작품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던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첫 스파이 소설로 탁월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