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 1 - 관 속에서 만난 연인
앤 포티어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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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짜 줄리엣은 따로 있었다. 베로나의 캐플릿가문이 아닌 시에나 톨로메이가문의 줄리에타 톨로메이가 그녀였다.

지금까지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머릿속에서 태어난 이야기라 철썩같이 믿어 왔던 나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이미 세익스피어 이전에 이탈리아의 작가 마수키오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에 살짝 배신감마저 들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한 세기도 더 전에 탄생했던 두 원수 가문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를 비틀어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연인의 로맨틱한 이야기로 승화시킨 것은 세익스피어의 능력이지만 그럼에도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온전한 그의 작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자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더군다나 이 안타까운 연인이 창작의 산물이 아닌 실존하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책 속에나 등장하는 현실성없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줄리에타 가문의 일대기를 그린 생생한 다큐처럼 다가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한 권의 책으로 두가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크게는 현재의 줄리에타가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숨겨진 줄리엣의 보석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덤으로 또다른 줄리엣의 이야기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줄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서기 1340년의 줄리에타의 이야기에 더 매혹되었기에 덤이라 표현하기가 망설여지지만 어찌되었건 모든 사건은 줄리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역시 현재의 줄리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줄리는 로즈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비밀에 맞닥드리게 된다. 언제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쌍둥이 동생 제니스 몰래 줄리에게만 전달된 유언장에는 할머니가 숨겨왔던 줄리의 비밀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유언에 따라 이탈리아로 향한 줄리는 그곳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어머니의 유품을 손에 넣는다. 줄리의 어머니는 생전에 무언가를 애타게 찾아다녔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딸 줄리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줄리엣의 저주를 풀고 딸을 지키려했던 어머니의 뜻을 알게 된 줄리는 직접 줄리에타 톨로메이와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고자 과거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줄리가 찾아낸 엄마의 책에는 줄리에타 톨로메이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었다. 이 오래된 책을 사이

에 두고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독자를 시에나의 거리로 안내한다.

이야기는 서기 13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면무도회 같은 로맨틱한 만남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이들의 만남은 로미오가 관 속에 누워있는 줄리에타에게 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살림베니의 손에 온 가족을 몰살당한 줄리에타는 홀로 살아남아 먼 친척의 집으로 피신하게 된다. 로렌조 수사의 도움으로 관 속에 누워 시신인 척 위장하지만 순탄치가 않다. 곤경에 빠진 그녀를 로미오가 도와주는데 이후 로미오는 관 속에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아른 거려 시신인줄 알면서도 그녀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빼앗은 이가 시신이 아닌 살아있는 여인임을 알게 되자 환희에 차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온통 가족을 죽인 원수 살림베니에 대한 증오로 가득차 있던 줄리에타는 로미오에게 자신을 대신해 살림베니에게 피의 복수를 해달라 부탁하고 로미오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복수를 다짐한다.

 

세익스피어가 로미와와 줄리엣이라는 어린 연인에게 대부분의 이야기를 할애했다면 앤 포티어의 줄리엣에는 줄리엣과 로미오 외에도 살림베니라는 인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존했던 인물인 살림베니가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며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줄리엣가문의 원수가 로미오가 아닌 바로 살림베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원수로 등장하는 두 집안은 로미오의 몬테규가문과 줄리엣의 캐플릿가문이다. 철전지 원수인 두 가문의 아들 딸이 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하지만 끝내 죽음으로써 사랑을 이룬다는 이 이야기에서 파리스 백작은 둘의 애타는 사랑을 돋보이게 할 단역에 불과했다. 그러나 실은 로미오보다 더 주연급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어쩌다 살림베니라는 인물이 파리스백작 같은 작은 역할로 전락해 버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스릴러가 아닌 로맨틱한 사랑이야기로 끝맺을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파리스 백작에 비할 수 없이 악랄하고 잔인하며, 징그럽기까지 한 이 위인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 한결같이 밉상 짓을 골라하며 내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살림베니가 있었기에 줄리엣의 이야기가 비로소 극적인 스릴러로 완성되었으니 마냥 불평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갖 만행을 저지르며 로미오와 줄리엣을 갈라놓기 위해 악행을 서슴지 않는 살림베니는 줄리엣의 가족을 몰살시킨 장본인이다. 줄리엣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소설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극악무도한 짓을 일삼아 독자를 경악케 한다. 나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둘째치고, 저 인간 좀 어떻게 안되나....하는 심정으로 이들의 사무치는 사랑을 지켜봤다.

바극적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랑이라 말하기에는 비극도 너무 비극이다. 베로나의 줄리엣 캐플릿이 겪은 시련은 시에나의 줄리에타 톨로메이가 겪은 일들에 비하면 시련 축에도 못드는 것이었다. 세익스피어가 왜 원형에서 많은 부분을 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도 그럴것이 살림베니의 악행을 고스란히 담았다가는 그 잔인함에 출간이 정지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톨로메이 가문의 줄리에타는 줄리 자신인 동시에 과거에 존재했던 비운의 줄리에타이기도  하다. 이 연결고리는 과거의 현재를 잇는 비밀스런 인물들의 등장으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곳곳에 즐비한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묘미라 할 수 있는 로맨스 역시 빠지지 않는다. 스릴러와 로맨스가 부드럽게 조화되며 적당히 완급을 조절해주는 듯 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엄청난 스릴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것이 이 책의 단점이 되지는 못한다. 예측 가능한 부분들도 분명 있으나 내 예상이 맞았다고 해서 긴장이 풀리거나 김이 새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줄리에타의 비밀을 풀기 위해 작가가 던져준 단서들을 조합하하는 즐거움, 베일에 싸여있던 과거가 하나 둘 씩 벗겨지는 순간의 희열을 맛보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장에 도달했다.

줄리가 힘든 여정 속에서 찾아낸 것은 보석보다 값진 진정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줄리에타와 같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긴 여운을 안고 책을 덮었다. 부디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만큼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줄리엣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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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메이어
앤드류 니콜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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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같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같은 동화'다.

이 책이 다분히 현실적인 어른들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동화처럼 느껴지는 건 선량한 시장 티보 덕분이다. 요즘말로 어장관리 종결자라고 할 수 있는 유부녀 아가테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티보를 보면서 그 답답함에 불쑥 화가 날 정도였다. 요즘같은 세상에 저렇게 우직하고 한결같이 한 여자를 바라보며, 조건없는 사랑을 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흔히 말하는 '참 좋은 사람'이란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동화에서나 존재할 법한 사람 좋은 티보는 한 남자로서 뿐 아니라 시장으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한다. 마음으로 시민을 살피며 공정하고 정확하게 일을 판단하려 노력한다. 권력에 굴복하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저버리지도 않는 그야말로 모범시장인 셈이다. 이렇듯 도트시의 모든 이들이 선량한 시장이라 칭송해 마지 않는 반듯한 성품을 지닌 그는 시장으로서 뿐 아니라 한 남자로서도 모범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상대가 유부녀라는 점만 빼고 말이다. 거리낄 것 없는 그에게 단 한가지 약점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여비서 아가테를 향한 마음이다. 사실상 처음으로 그의 마음에 사랑의 불씨를 지핀 이가 하필이면 유부녀인지..자신의 마음을 들킬까 안절부절 못하는 그가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 없다. 애써 그녀를 향하는 감정을 추스리려 노력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시선은 늘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하고, 하물며 그녀가 점심을 먹으로 나가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내다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소심해보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선량한 시장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런 선량한 사내의 사랑을 받는 여인은 아이를 잃고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진지 오래인 아가테다. 멀어진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번번히 헛수고에 그치자 그녀 역시 남편의 등만 바라보는 삶에 점점 지쳐간다. 결국 오랜시간 자신을 향해있던 티보의 마음을 확인하고 만남을 이어가지만 티보와의 사랑도 그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티보와의 사랑이 정신적인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답답했던 그녀는 어느날 남편의 사촌인 헥토르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한마디로 나쁜남자의 표본인 헥토르는 그날 이후 본색을 드러내며 아가테에게 돈을 요구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지만 한순간의 욕망으로 바보같은 선택을 하게 된 그녀는 그 길이 잘못 된 길인 줄 알면서도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그저 묵묵히 헥토르의 요구를 들어줄 뿐이었다.

 

 

"제가 인생에 대해 아는 건 이겁니다.

세상에 우리가 낭비해도 될 만큼의 사랑은 없다는 걸 전 알게 되었어요.

한 방울의 여유도 없지요.

사랑을 찾는다면, 어디에서 찾았든 소중히 보관하고

여력이 닿는 한 오래도록, 마지막 입맞춤까지 누려야 합니다."

 

 

선량한 시장 티보의 사랑에 장애가 된 것은 상대가 유부녀라서가 아니었다. 바로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를 배려하고 소중히 여기는 그의 태도로 인해 그녀를 잃게 된 것이다. 어렵사리 이룬 사랑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던 티보는 사랑을 갈망하는 아가테의 몸과 마음을 충족시키자 못하고 결국 그녀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든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님을 다시금 상기 시키는 순간이었다. 티보가 하루만 더 일찍 마음을 먹었더라면, 아니 아가테가 그날 밤의 유혹을 뿌리쳤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테지만 결국은 그 역시 아가테가 자초한 결과였고 하룻밤의 달콤한 사랑의 댓가로 그녀는 선량한 티보를 잃었다.

 

사실 둘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그럼에도 아가테를 향한 티보의 짝사랑이 너무도 측은해보여 그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랐건만 아가테의 그릇된 행동에 벌컥 화가나 티보는 그녀에게 과한 남자라며 혼자 분통을 터뜨렸다.

 

선량한 시장이지만 사랑 앞에서 너무나 조심스러워 소심했던 티보가 무너져가는 아가테를 위해 행한 일들은 분명 선량한 시장의 역할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장이기 이전에 잃어버린 사랑 앞에 용기를 낸 남자의 변화 앞에 그를 비난하기가 어려웠다.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참 많이 달랐고, 또 요즘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한심할만큼 어리석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서툴고 어리석은 모습들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 온 것도 사실이다. 사랑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일은 동화보다는 현실에서 더 자주 일어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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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리젬 명작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야센 기젤레프 그림,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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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이야기가 독특한 삽화를 만나 새롭게 탄생했다.

전세계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동화 이상한 나라는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판본으로 새롭게 출간되며 어린이를 비롯해 어른들까지 사로잡은 이 이상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하다. 

 

이 책은 그동안의 앨리스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껏 만나왔던 앨리스가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그림이였다면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다소 기묘한 느낌이다.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기 보다 마치 어른을 위한 앨리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묘한 그림들이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앨리스만의 환상적인 내용과 제법 잘 어울린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앨리스가 회중시계를 들고 헐레벌떡 달려가는 말하는 토끼를 따라 무작정 굴 속으로 뛰어드는 것으로 이 신비한 모험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그대로지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새로운 그림 때문이었다. 오즈의 마법사와 이상한 나라의 앨르와 같은 환상동학을 좋아하는 나는 그동안 다양한 버젼의 앨리스를 만나왔다. 백과사전을 방불케하는 두께를 자랑하는 주석달린 앨리스부터 파스텔풍의 삽화가 실린 작은 앨리스까지 여러 앨리스를 만났었지만 이번 앨리스는 참 독특했다. 책에서 그림이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크구나 싶을 만큼 신선했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나를 반겨주는 그림들은 알록달록한 색감을 자랑하지도, 인형처럼 귀여운 외모로 시선을 끌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새로웠다. 동화라고 하면 흔히 디즈니 풍의 컬러풀하고 예쁘장한 그림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이 책에 실린 앨리스는 투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다소 어둡고 딱딱해보였다. 그러나 그 투박함이 이 책의 매력이었다. 갈색톤의 일정한 색상 안에 그려진 배경과 인물들이 처음에는 동화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섬세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삽화들은 자세히 볼수록 깊이가 느껴졌다. 앨리스 앞에 펼쳐질 신비한 세계가 더이상 신비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이야기여서 이야기자체보다는 그림에 몰입해가며 책을 읽어갔는데 그야말로 뻔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앨리스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경험하는 환상적인 일들을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어른스러운 삽화들은 여러 상을 수상하며 그 독특함을 인정받았다.

 

보통 아이들이 읽는 동화는 알록달록해야 다양한 색상을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평범함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맛보게 해 준 앨리스처럼 앞으로도 신선한 그림으로 태어날 동화들을 다양하게 만나봤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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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 이어령 바이블시학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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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영원한 베스트셀러 성경.

종교를 떠나서 인생의 진리와 삶에 대한 깨우침을 얻기 위해 한번쯤 읽어봐야 할,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이야기...스스로 모태신앙임을 밝히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믿음이 부족한 나는 종교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새해가 될때면 해마다 성서공부를 계획에 넣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참 신기하게도 내 손에 들어온 책..내가 원했다기 보다 책이 나를 원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어쩌면 이 또한 하늘의 뜻일지 모른다.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내게 기회를 주고 싶으셨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이 책이 내 몫인 것 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고자 마음을 열었다.

 

이 책은 딱딱하게 설교를 늘어놓는 책이 아니었다. 만약 이 책에 종교를 강요한다거나 믿지 않는 이를 꾸짖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면 내 삐딱한 성격이 발동해 가차없이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애초에 염려했던 믿음에의 강요는 그다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잔잔히 이야기를 들려 줄 뿐이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성경말씀을 쉬운 비유와 편안한 문체로 전하며 그 속에 저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녹여내고 있었다.

 

성경구절에서 인용한 제목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저 일상에서 간식거리로 생각하는 빵이 아니라 삶을 지탱해주는 모든 것을 함축한 단어가 바로 '빵'인 것이다. 이렇듯 단어 하나하나에 성경의 의미를 담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는데 한편의 문학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총 21장으로 구성 된 말씀 중 17장의 '그래도'라는 한마디 말이 가장 가슴 깊이 와닿았다. 우리가 흔히 무언가를 갈망하거나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팍팍한 현실 앞에서 이 말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바라는 대로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 우리는 원망할 존재를 찾게 된다. '신'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담담히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지막에는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듯 시 한편을 읊조린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정성스런 시 한편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책에 담긴 성경 구절들과 저자의 마음이 담긴 시를 통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오랫동안 멀리했던 믿음과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P. 253

'비록......일지라도'는 고백하자면, 사실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무능할지라도, 내가 나를 어떻게 미워하랴. 나의 존귀함을 지켜야지. 내 마지막 프라이드를 지켜야지. 하나밖에 없는 내 생명인데, 이걸 헛되게 쓰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사는 겁니다. 이제까지 내가 타락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할 때도, 며칠을 굶어서 하늘이 노랗게 보여도 절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살하지 않았던 바로 우리말이. 문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분해서라도 이것을 글로 남기리라. 이 원통함을 글로 남기리라." 내가 절망 속에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저항의 문학을 쓰던 때가 그때였습니다. 그때 이미 하나님이 곁에 계셨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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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8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냥이 2012-02-23 06:44   좋아요 0 | URL
천주교인이 맞답니다^-^
성경이라고 표현한 것은 표지에 나와있는 저자분의 집필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그대로 쓴 것이나 하나님이란 표현은 제 기준에서는 바꿀 필요가 있을 듯 해서
하느님이라고 고쳐쓴 것이랍니다^^
 
공항의 품격
신노 다케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윌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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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공항을 뛰어다니는 엔도의 고군분투 스토리. 이 책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공항이란 매혹적인 장소에서 펼쳐지는 이 시대 직장인의 애환이 담긴 좌충우돌 이야기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늘 두근거리고 생기넘치는 생활을 할거라 짐작하기 쉽지만 실상은 생기가 넘치다 못해 매일매일 벌어지는 돌발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정신없이 공항 이곳저곳을 누비기 일쑤다. 이같은 생활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서 비롯된 거라면 당사자의 고충이 얼마나 심할지 상상이 간다. 주인공 엔도는 본사의 기획과에서 근무하던 중 완고한 성격대로 상사에게 바른 말을 내뱉었다가 졸지에 모든 사원들이 꺼리는 현장 즉, 공항으로 발령을 받는다. 말이 좋아 발령이지 아직 젊은 엔도가 나이든 사원들이 대부분인 공항으로 좌천된 것이나 다름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 의욕은 엔도에게 해당사항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여자친구는 엔도에게 마마보이라는 말로 이별을 고하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거기다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 유연한 상황대처 능력을 필요로 하는 현장에서 엔도의 다소 꼬장꼬장하고 직선적인 성격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러모로 공항과는 맞지 않는 성격을 지닌 엔도가 슈퍼바이저로서의 임무를 완수해나가는 모습이 현실감있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처음에는 자기 앞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우왕좌왕하기도 하지만 차츰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엔도의 모습을 바라보며 슬며시 웃음이 지어졌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로 주인공과 비슷한 직종에 종사했었다. 엔도는 공항에서 여객을 배웅했다면 나는 공연장에서 관람객의 입장을 도왔다는 차이가 있지만 어느 쪽이든 고객의 즐거운 목적지를 위해 돕는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어딜가나 소위 진상이라고 말하는 고객은 있게 마련인데 공항 역시 예외의 장소는 아니었다. 재입국 비자가 없는 소녀를 데리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겠다고 우기는 남성들이나 아이의 여권을 챙기지 않고 와서는 아이만 두고 여행을 떠나버리는 무책임하고 겁 없는 부모들까지..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손님들도 등장하지만 엔도는 그들 또한 고객임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자식을 보기 위해 일부러 취소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떠나지도 않을 티켓을 끊곤 하는 안타까운 할머니의 사연은 이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인간상을 만나게 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러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참으로 제각각이라 탑승시간 내에 주어진 상황을 모두 처리해야 하는 엔도가 다른 사원들과 힘을 합쳐 일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긴박하고 스릴있게 느껴져 마치 공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공항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여행의 출발점이자 또 다른 이에게는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을 위한 연결통로와도 같은 공항. 이 품격있는 장소에서 주인공 엔도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마치 내가 엔도의 도움으로 무사히 비행기에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낯선 여행지로 떠나는 경험은 당장에는 두렵고 내키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나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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